“강간범죄 감형 받아드릴게요”···법률 시장으로 넘어온 성폭력

김송이 기자

‘성공사례 홍보’ 성범죄 전문 로펌 성행

‘성범죄 전문 법무법인’이라고 소개하는 곳의 우수 성공사례.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 크게보기

‘성범죄 전문 법무법인’이라고 소개하는 곳의 우수 성공사례. 홈페이지 갈무리.

A씨는 미성년자가 정신 장애인인 점을 이용해 간음한 죄로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받았다. ‘성범죄 전문’이라는 B 법무법인은 홈페이지에서 A씨의 감형 사례를 ‘성공사례’로 홍보하고 있다. “본 법무법인의 담당 변호사는 피해자 국선변호인을 최대한 설득했고, 합의하겠다는 의사를 받아낸 다음 진지한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며 “일반적인 성범죄보다도 더 큰 선처를 받을 수 있었다”고 소개한다.

C 법무법인은 ‘우수 성공사례’라며 만취해 항거불능인 동료에게 성관계를 시도한 준강간미수 사건에서 기소유예를 받게 했다고 소개한다. “행위 구체성이 너무 확실했으므로 피의사실을 부인하거나 하지 않고 확실하게 참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진행했다”고 홍보한다.

두 사례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가 가능하다는 점 혹은 범행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용서를 구하고 반성한다. 이처럼 성범죄 가해자에게 ‘감형 전략’을 제공하는 성범죄 전문 법무법인이 성행하고 있다.

지난 7일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범인 전주환도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 재판부에 3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의 가해자는 반성문을 19차례 재판부에 제출하는 동안 피해자 유족에게는 사과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김보화 젠더폭력연구소 소장은 책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서 성범죄 전담법인들이 내세우는 감형전략을 분석했다. 감경요소인 ‘진지한 반성’, 집행유예 참작사유인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공략하고, 가해자들이 법적 대응 방법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것이 주된 전략이다.

‘진지한 반성’의 일환으로 가해자가 성폭력지원센터나 여성단체에 기부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반성의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진지한 반성’은 형사재판 피고인의 형을 정할 때 고려되는 일반 감경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반성의 객관적 판단 기준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범죄 피해자지원단체들은 2017년부터 감형 목적의 후원 문제를 공론화해왔다. 여성단체들이 가해자의 후원을 모니터링해 거부하기 시작하자 기부 방법이 교묘해지기도 했다. 한소망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9일 “(가해자들이) 기부 수법이 유명하지 않던 2019년까지는 일시 후원을 고액으로 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수법이 유명해지고 나선 월 1-2만원 정기 후원 방식으로 눈에 띄지 않도록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가해자에게 ‘감형 전략’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이 성장하는 이면에서 피해자의 고립은 더해진다고 지적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양형 기준 안에 ‘진지한 반성’이 있다보니 피고인들이 이를 양형에서 챙겨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서 “문제는 재판정에서 피고인의 사정이 계속 얘기되는 동안 재판부가 피해자의 피해 상황과 처벌의사 등을 청취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백이나 반성을 양형에 반영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해자의 자백 유무에 따라 피해자가 받는 고통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은의 변호사는 “자백·반성문 등 피고인들이 감경받고자 노력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했는지 여부, 또는 형식적 반성에 그친 것은 아닌지 등 여러 상황을 유기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듯한 현재의 양형 구조가 근본적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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