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병원은 프리패스?…고령 택시기사 적성검사, 이대로 괜찮나

김현수 기자

교통안전공단보다 높은 합격률

검사 떨어져 영업 못할까 우려

돈 더 들어도 민간병원 찾아가

“검사 중 직원이 정답 알려줘”

서울의 한 지역에서 택시기사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의 한 지역에서 택시기사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택시기사 김모씨(70대)는 얼마 전 지인이 추천한 민간의료기관에서 ‘의료적성검사’를 받았다. 택시 운전대를 잡기 위해 때맞춰 받아야 하는 필수 검사이다. 김씨는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실시하는 ‘자격유지검사’를 받을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합격률이 낮아 민간병원을 택했다.

김씨는 “공단에서 진행하는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동료들이 더러 있다”며 “민간병원에서는 직원이 검사 도중 정답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에 떨어지면 당장 영업을 못하게 되니, (공단보다)비싼 검사비를 내고서라도 병원을 찾는 기사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나이가 많은 택시·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민간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의료적성검사가 도입 3년 만에 졸속 운영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병원 직원 상당수가 피검사자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등의 위법행위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교통안전공단은 2019년 2월부터 만 65세 이상 사업용 자동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자격유지검사를 시행 중이다. 이는 인지능력과 주의력, 공간 판단력 등 운전에 필요한 기능을 확인하는 검사다.

만 65~69세는 3년, 70세 이상은 1년마다 검사를 받아야 한다. 합격 판정을 받지 못하면 14일 뒤에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화물차와 택시 운전자는 2019년 11월부터 민간병원에서도 자격유지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은 병원에서의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택시 운수종사자의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적 장치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대구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한 관계자는 “공단 시험에 떨어지면 보름 동안 영업을 못 하게 되는데 이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라며 “(그렇다 보니)검사비가 비싸도 몰래 정답을 알려주는 특정 병원에 고령의 운전기사들이 몰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법인택시운송조합의 한 관계자도 “검사에 약 1시간30분이 걸려, 고령자의 경우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검사 시 병원 관계자가 정답을 귀띔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검사 모니터상 특정 차로에 순간적으로 차량이 깜빡이며 등장하면 검사장에 있는 병원 관계자가 어떤 차로에 차량이 나왔는지 알려주는 식이다. 이러한 ‘눈가리고 아웅’ 식의 검사 탓에 합격률은 100%에 가깝다.

최근 2년간(2021~2022) 공단 자격유지 검사 합격률은 97.67%(총 14만8535건 중 3449명 불합격)였지만, 민간병원 적성검사의 합격률은 99.78%(총 3만1529건 중 69명 불합격)에 달했다. 병원 적성검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령 운전자가 많은 개인택시 비중이 최근 2년간 각각 82.8%와 82.4%로 파악됐다.

실제 개인택시 업계에서는 합격률이 높다는 ‘입소문’에 비싼 돈을 주고 민간병원에서 적성검사를 받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에서 진행하는 검사비는 2만원인데 비해, 민간병원은 6만~8만원 선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택시 연령대별 종사자 수 및 교통사고 발생 현황 자료를 보면, 전체 택시 운수종사자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19.5%에서 지난해 43%(전체 23만7460명 중 10만1994명)로 7년 새 크게 늘었다.

이 기간 65세 이상 고령 택시 운수종사자의 교통사고 발생 비율은 18.4%에서 47.8%(전체 2626건 중 1254건)로 급증했다.

택시업계 한 관계자는 “2021년 국정감사에서도 민간병원에서의 비정상적인 합격률을 두고 지적이 나왔다”며 “하지만 100%에 가까운 합격률이 나오는 지에 대한 단속 등이 없다 보니 마구잡이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고령 운전자들에 대한 면허 유지 자격을 강화하는 의료적성검사 재표준화 작업을 진행해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공단은)민간 병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없어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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