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9주기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 그대로”···세월호 9주기 선상추모식

진도 | 김세훈 기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6일 9주기 선상추모식에 참석해 참사 해역에 떠 있는 노란 부표를 응시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6일 9주기 선상추모식에 참석해 참사 해역에 떠 있는 노란 부표를 응시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9년 전 바다도 이랬을까요.” 고 한정무군의 아버지 한상철씨(54)가 16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바다를 보며 말했다. 덤덤한 표정에서 지난 9년간 끌어안고 있던 슬픔이 배어 나왔다. 세월호가 침몰한 장소를 알리는 노란 부표가 물결 위로 흔들렸다. 유가족들이 손을 맞잡고 부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흐느끼는 유가족을 다른 유가족이 다독였다. 한씨는 “겉으로는 잔잔해 보여도 유속이 빨라 굉장히 무섭다.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올 때마다 미안한 마음만 든다”고 했다.

이날 오전 7시 전남 목포 앞바다의 물결은 잔잔했다. 세월호 유가족 23명이 세월호 9주기 선상추모식에 참가하기 위해 부두에 모였다. 1500t급 해경 1509경비함이 이들을 싣고 참사 해역으로 향했다.

한씨는 2015년부터 9년째 선상추모식에 참석했다. 시간과 함께 흐려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주변 사람들은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마저 ‘이제 다 끝난 일 아니냐’고 한다. 그럴 때마다 세월호가 잊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커졌다. 한씨는 “나도 사람인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도 느슨해지고 나약해진다”며 “매년 내려가며 마음을 다잡고 희생된 아이들에게 한 약속을 되새긴다”고 했다.

한씨의 ‘약속’은 희생된 아이들이 모두 함께 안치될 수 있는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무슨 욕심이 있겠나. 흩어져 있는 아이들이 한곳에 모여서 잠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19년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추모 시설을 갖춘 생명안전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상태다.

16일 참사 해역에서 9주기 선상추모식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아이들의 사진이 프린트된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416재단 관계자가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김세훈 기자

16일 참사 해역에서 9주기 선상추모식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아이들의 사진이 프린트된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416재단 관계자가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김세훈 기자

고 김빛나라양의 어머니이자 4·16단원고협의회 위원장인 김정화씨(55)는 올해 선상추모식에 불참하려다 마지막에 마음을 돌렸다. 그에게 침몰 현장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장소다. 바다를 마주할 때마다, 출렁이는 물결 사이로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때마다 김씨는 ‘바다에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고 했다.

김씨는 “이곳에 오면 모든 진이 빠질 때까지 펑펑 운다”며 “매년 ‘올해는 가지말자’고 마음먹지만 딸이 마지막으로 있던 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올 수 없다. 모든 부모가 똑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배는 3시간을 달려 오전 10시40분쯤 참사 해역에 도착했다. 추도식에 앞서 학생들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이 펴졌다. 김씨는 추도사에서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떠나보낸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사고해역에 왔다”며 “살아있었다면 어떤 청년들이 되어있을까,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갈수록 더욱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추도사가 끝난 후 희생자들이 한 명 한 명 호명됐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울음이 새어 나왔다. 유가족들은 국화 한 송이를 바다에 던졌다. 국화가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추모의 의미를 담은 뱃고동이 울렸다. 배가 부표에 가까이 다가가자 울음소리가 높아졌다. 고 이세현 군의 할머니는 “세현아 잘 있어라, 내가 곧 갈 테니 그때 만나자”라며 흐느꼈다. 다른 유가족은 망연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그 많은 아이들이 여기서 희생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열린 선상추모식에서 한 탑승자가 국화꽃을 헌화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열린 선상추모식에서 한 탑승자가 국화꽃을 헌화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참사 후 9년이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넘실거리는 진도 앞바다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씨는 “얼마 전 지인의 사소한 행동에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4월이 다가오고 있더라”며 “평소 슬픔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가도 4월만 되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한씨는 올해 조금 일찍 핀 벚꽃을 바라보다 눈물을 쏟았다. 9년 전, 아이들이 떠날 때도 벚꽃이 만개했다. 한씨는 “아들 또래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볼 때, 남은 가족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있을 때도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고 정다혜양 어머니 김인숙씨(60)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은 9년째 다혜양과 다혜양의 언니가 같이 찍은 사진이다. 김씨는 “아직도 수학여행을 간다고 들떠있던 다혜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며 “요즘도 딸(다혜 언니)이랑 만나 ‘다혜가 살아있었다면 뭘 하고 있었을까’ ‘잘 살았겠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이 멘다”고 했다.

고 이호진군 아버지 이용기씨(55)는 참사 이후 삶의 목표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씨는 “아들이 크면 내가 하는 소방설비 일을 알려주고 같이 일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참사 이후 불면증에 시달렸다. 선잠을 자다 새벽에 깬 뒤 뜬눈으로 지새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참사 후 7년간 술의 힘을 빌려 잠을 청했다. 이씨는 결국 병원에서 알코올성 당뇨를 진단받았다.

이씨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이 없다”며 “이태원 참사도 국가의 재난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그는 “세월호도 결국 해경 몇 사람 외에 처벌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책임 규명이 안 되면 유가족은 투사가 된다”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책임자 처벌이 분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선상추모식을 마친 유가족들은 목포 신항으로 이동했다.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의 모습이 보였다. 유가족들은 선체 앞에서 다시 짧은 추도식을 열었다. 이들은 “하늘에 있는 아이들이 ‘이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선체를 한 바퀴 돌면서, 한 유가족은 군데군데 녹슨 선체를 바라보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읊조렸다. 유가족들 뒤로 망망한 바다가 9년 전 이날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6일 목포 신항에서 추도식을 마치고 녹슨 세월호 선체를 돌아보고 있다 . 김세훈 기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16일 목포 신항에서 추도식을 마치고 녹슨 세월호 선체를 돌아보고 있다 .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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