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사형 ‘집행시효 30년’ 논란…사형제도 존폐 여부는?

정희완 기자

미집행 사형수 석방 가능성 두고 해석 분분

법무부, ‘집행시효 삭제’ 형법 개정안 입법예고

국회에서 사형제 존폐 진지한 논의 이뤄져야

사형 관련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사형 관련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주간경향] 원모씨(66)는 1993년 11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 원씨는 1992년 10월 강원 원주에 있는 특정 종교시설에 불을 질렀다. 15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원씨는 아내가 해당 종교에 빠져 가정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원씨는 최장기 미집행 사형수다. 올 11월이면 사형이 확정된 지 30년이 된다.

형법은 공소시효와 별개로 형의 ‘집행시효’를 규정한다. 확정받은 형이 일정 기간 동안 집행되지 않으면 그 형을 면제하는 것이다. 사형의 집행시효는 30년이다. 이에 따라 원씨가 오는 11월까지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 석방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무부는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사형의 집행시효 자체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현재 사형확정자는 원씨를 포함해 모두 59명(군 관리 4명)이다.

법무부가 이처럼 급히 대책을 내놓은 것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사형제도를 놓고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의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형제도의 존폐 문제도 함께 공론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형 집행시효 폐지 방안 추진

법무부는 지난 4월 14일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사형을 집행시효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다. 형법 제77조는 형의 시효가 완성되면 집행을 면제한다고 규정한다. 이어 제78조는 ‘시효는 형을 선고하는 재판이 확정된 후 그 집행을 받지 않고 일정 기간 지나면 완성된다’고 명시한다. 사형은 시효를 30년으로 한다.

법무부는 살인죄 등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2015년에 공소시효가 폐지됐지만, 사형수의 집행시효는 그대로 유지돼 불균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사형확정자가 사형집행 때까지 수용 기간 동안 사형의 시효가 진행되는 것인지를 두고 명시적인 규정이 없어 해석상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사형수가 교도소나 구치소에 구금된 상태에 있을 때, 이를 일련의 형 집행 과정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견해가 엇갈린다. 우선 사형수가 교정시설에서 대기하는 것도 사형집행 절차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면 원씨의 집행시효는 진행되지 않아 30년이 지나도 석방되지 않는다. 법무부의 입장도 이와 같다.

이런 해석은 형법에 사형의 집행시효 기간을 둔 건 사형수가 탈옥 등 도주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입법자가 이 조항을 만들 때 현재처럼 장기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치는 못했으리라는 얘기다. 일본의 최고재판소(한국의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 역할)는 1992년 사형수의 형 집행에는 구치도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일본은 2010년 4월 사형의 집행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으로 형법을 개정했다.

반대 해석도 맞선다. 사형 자체를 집행하지 않았다면 시효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즉 형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사형을 확정받은 지 30년이 도래하면 형이 면제되기 때문에 원씨를 석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무부의 해석은 변명에 불과하다”라며 “사형집행을 위해 대기하는 기간을 형 집행 기간으로 보려면, 최소한 법무부가 사형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번 형법 개정안을 두고 오는 5월 23일까지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법제처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친 뒤 대통령이 재가하면 국회에 제출한다. 법무부의 입법예고 직후인 지난 4월 17일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이 동일한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향후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를 현재 사형수들에게 소급적용하는 문제를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이유는

국내에서 사형의 집행시효가 논란이 된 건 사형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지난 26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서다.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 12월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했다. 사형제도가 있지만 10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국가를 일컫는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임기 말인 1997년 12월 30일 모두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게 마지막이다. 당시 법무부는 문민정부 출범 이전 형이 확정된 사형수를 집행 대상으로 했다고 밝혔다. 원씨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인 1993년 11월 사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제외된 것이다.

사형폐지범종교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22년 7월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형제도 공개변론’ 시작에 앞서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사형폐지범종교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22년 7월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형제도 공개변론’ 시작에 앞서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형사소송법을 보면 사형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법무부 장관은 사형집행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사형집행을 재개하지 않고 있는 건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사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사형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두 정부는 일부 모범 사형수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조치도 내렸다.

사형제를 폐지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외교적 파장 등도 사형 미집행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법무부는 사형집행을 검토했으나 외교부 등의 반대로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시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했다. EU는 사형제도가 있는 국가는 회원국으로 받지 않고 사형집행 국가와는 FTA도 맺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유럽평의회의 ‘범죄인인도에 관한 유럽협약’ 가입을 추진했다. 협약에 가입하면 유럽평의회 회원국 등에 있는 범죄인을 한국으로 송환할 수 있게 된다. 국회는 2011년 3월 협약 가입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협약 내용 가운데 ‘유럽에서 한국으로 송환된 범죄인에게는 한국 정부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조항이 논란이 됐다.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한국의 현행법과 상충된다. 정부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다른 범죄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졌다.

정부는 그러나 실질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는 데다 협약 가입에 따라 범죄인을 인도받는 것이 더 실익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형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이 협약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함에 따라 만일 사형집행을 재개하게 되면 국가가 승인한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것이 돼버린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인권기구는 지속적으로 한국에 사형제 폐지를 권고해왔다. 또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사회단체 등도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국내에선 사형제 존치 여론도 만만치 않다.

법무부는 사형집행과 관련한 주간경향의 질의에 “국내외 논의 동향, 형사정책적 관점, 국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최근 강력범죄의 발생 및 재범 추이, 이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여론동향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했다. 사형집행 가능성을 전면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시민들이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 등을 받는 정인이 양모와 양부에 대한 1심 법원의 선고공판이 열린 2021년 5월 14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시민들이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 등을 받는 정인이 양모와 양부에 대한 1심 법원의 선고공판이 열린 2021년 5월 14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공동발의하기도

사형제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 두 차례 오르기도 했다. 결과는 모두 합헌 결정이었다. 사형은 범죄 발생을 예방하고, 극악한 범죄를 대상으로 한 정당한 응보를 통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봤다. 또 다수의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범죄 등에 한정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과도한 형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합헌과 위헌 의견은 1996년 7 대 2에서 2010년 5 대 4로 위헌 의견이 늘어났다. 헌재는 현재 세 번째로 사형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지난해 7월 공개변론도 개최했다. 법무부는 사형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법무부도 2021년 1월 사형제 존치 입장이 담긴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사형제 폐지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어서 논란이 됐다.

헌재는 2010년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도 사형제도의 존폐 여부는 국회가 결정할 일이라고 못 박았다. 헌재는 “사형제도가 위헌인지 여부는 헌법 규범에 위한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며 “반면 사형제도를 법률상 존치시킬 것인지 문제는 사형제도의 존치가 필요하거나 유용한지 또는 바람직한지에 관한 평가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입법부가 결정할 입법정책적 문제”라고 밝혔다.

1999년 15대 국회부터 현재 21대 국회까지 사형제 폐지 법안이 지속적으로 발의되긴 했다. 특히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5년 7월과 2004년 1월에 발의한 법안에는 각각 국회의원 171명, 174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국회 의결정족수인 절반 이상이 사형제 폐지에 공감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비롯해 그간 발의된 법안들은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사형제 폐지 관련 국회 법안 발의 현황

사형제 폐지 관련 국회 법안 발의 현황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0월 발의한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형법 등 법률에서 규정한 사형을 삭제하는 대신,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내용이다. 사망할 때까지 무조건 교정시설에서 지내는 것이다. 특정 요건을 갖추면 20년이 지난 후에 가석방이 될 수 있는 현행 무기징역과 구분된다. 이 의원은 “반인권적이고 비인도적이자 극단적으로 잔인한 형벌인 사형제를 법률로써 명백하게 폐지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형벌체계를 수립하고 인권선진 국가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제안 취지를 밝혔다.

다만 절대적 종신형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헌재도 “절대적 종신형은 사형제도와는 또 다른 위헌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사형제 폐지와 함께 ‘상대적 종신형’을 도입하자는 견해도 있다. 종신형이라도 가석방을 허용하되 최소 수감 기간을 20~30년으로 설정하는 방안이다. 독일은 1949년 사형제를 폐지하며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했지만 1978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위헌을 선고했다. 독일헌재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근본적으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종신형의 집행을 중지할 수 있는 전제조건 아래 종신형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임무”라고 했다. 이에 독일은 1981년 상대적 종신형으로 개정했다.

사형제 존폐 문제는 관심 밖

법무부가 사형의 집행시효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입법을 추진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 논란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가 사형제에 무관심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덕인 교수는 “과거엔 국회에서 공청회라도 열렸는데 지금은 공청회조차 개최되지 않고 있다”라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한국사회가 사형제를 중요한 의제로 인식하지 않음으로써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사형제 폐지 입장인 이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형제 존치론을 무시하거나 비판하지는 않는다.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사형이 얼마나 엄중한 형벌이고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인지 제대로 따져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사형집행 인원의 정확한 통계가 없는 점도 안타까운 점이라고 이 교수는 밝혔다. 주간경향이 사형집행 건수와 함께 통계를 내기 어려운 이유를 묻자 법무부는 “정확한 사형집행 인원을 확인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으나, 한국전쟁 당시 자료 소실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정확한 통계를 작성하기 어려운 점을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가 지난해 5월 발표한 ‘연례 사형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21년 말 기준 108개 국가가 법적 사형제를 폐지한 상태다. 실질적 폐지국까지 합하면 모두 144개국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 외에 사형 유지 국가는 55개국이다. 중국, 북한, 이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이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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