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최미랑 기자
2023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수험표와 고사장을 확인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23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수험표와 고사장을 확인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뉴스레터 점선면 5월10일자(https://stib.ee/Llb7)에 게재된 글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로 접속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독자님은 대학 입시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계신가요? 대입을 치른 분도, 안 치른 분도 계실 테지만, 대한민국에 살면서 입시와 조금도 연관 없기란 쉽지 않지요.

제 경우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도 배우고픈 것도 참 많던 청소년기를, 오지선다 문제지 앞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보낸 것이 무척 아쉬워요. 억울하기도 하고요.

비효율적 시스템은 시간이 흐르면 개선될 줄 알았는데,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줄 세우기’가 무려 2023년에도 그저 더 치열해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변별력’을 주려다 수능 문제가 너무 어려워져서, 로스쿨이나 행정고시 준비생도 수능 문제로 공부를 하는 정도라네요.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더해지니 문제는 더욱 풀기 어려워집니다.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데 있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줄을 세워야 공정한가’라는 질문이 앞서는 문제도 있고요.

정부는 지금 2028학년도 대학입시 제도 개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편의 주요 이슈를 들여다보면, 우리 교육 정책이 어떤 모순에 맞닥뜨렸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오늘 회차는 교육 담당 남지원·김나연 기자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지만, 우리나라에선 정권의 성향이나 정치적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현 정부는 고교 운영, 대학 입시와 관련해 전 정부와 상당히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때문에 지난 정부에서 넘어온 정책과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현재까지 발표된 주요 방향과 제기되는 문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더욱 다양한 명문고를 만들겠다

· 지난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을 2025년에 일반고로 전환할 계획이었습니다.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는 방안이었어요.

· 현 정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의 계획을 세웁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는 그대로 유지하고, 여기에 더해 일반고를 더 세분화해 지역 ‘명문고’를 많이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 이를 위해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하기로 했습니다. 규제를 풀고 지역에 명문고를 만들 수 있게 해 준다는 취지예요.

· 미국의 ‘차터 스쿨’을 모델로 한 ‘협약형 공립고’도 내년부터 시범 운영합니다. 예산은 정부가 지원하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 교육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고교 교육력 제고방안’을 다음 달쯤 발표할 예정입니다.

· 정부는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라고 말하지만, 이 방향이 이미 심각한 고교 서열화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2. 정시 ‘40% 룰’은 유지한다

· 대입 정시 비중은 2019학년도까지 점점 줄고 있었습니다. 수능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이뤄진 변화입니다. 곧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 또한 정시보다 수시와 잘 맞아떨어지는 제도입니다. 학생이 과목을 직접 선택하고, 성적은 절대평가로 받는 게 핵심이거든요.

·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 사건을 계기로 수시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르자, 문재인 정부는 대입 제도 공정성을 강화할 방안으로 정시 비중 확대를 제시했습니다. 문 정부 교육정책 방향과 들어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추진했습니다.

· 그 결과 2017학년도 입시에서 29.4%에 그쳤던 정시모집 정원 비율은 현재 서울 주요 대학에서 40%까지 올라왔습니다.

· 윤석열 후보도 ‘부모찬스 없는 공정한 대입제도를 만들겠다’며 정시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걸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을 늘린다는 등 이유로 실제로 확대까지 추진하지는 않았습니다.

· 현재 서울 16개 대학은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 이주호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대입제도에 크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전 정부에서 넘어온 대입 정시 비중은 대입제도가 바뀌는 2028학년도 이전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3. 골치아픈 대입제도 개편안

· 정부는 지금 대입제도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내후년인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실시되기 때문에, 이에 부합하도록 입시제도를 손보는 게 관건이에요.

· 현행 대학입시의 두 축은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입니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게 되면 기존에 상대평가 중심이던 내신에 절대평가가 도입되는 것이어서, 입시 제도에도 변화가 필요해요.

· 교육부는 올해 상반기에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시안을 내놓습니다. 내년 2월에 확정해서 2028학년도부터 적용합니다.

· 문제풀기 중심인 수능은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자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수능을 폐지하거나 논술형 평가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왔지만, 이번 개편에 반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2022학년도부터 시작된 문이과 통합형수능 이후 이과생들이 대거 문과로 지원하고 재수생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있어, 이 부분도 보완이 필요합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정부는 더 많은 ‘명문고’를 만들어 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합니다. 이 방향성이 그동안 이미 심각해진 고교 서열화를 더욱 부추길 거란 우려가 나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 다양화 정책’을 둘러싼 맥락을 살펴볼게요. 이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독자님들께 여쭤봤더니 다양한 의견이 나왔어요.

1. 우수한 인재가 먼저 아닌가?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독자님들께서는 인재 양성이 중요하고, 미래의 인재가 차별화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부정적 의견을 밝힌 분들께서는 일부 학교에 자원을 집중시키고 줄세우기를 부추길 게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둘 다 중요한 이야기 같습니다. 실제 정책으로 추진했을 때 둘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른바 ‘일반고 황폐화’ 문제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는 고교다양화300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전까지 유지되던 고교평준화 체제가 이때 크게 흔들렸어요.

고등학교 체계가 특목고·자율고·일반계고·특성화고로 정비됐습니다. 학생 우선 선발권을 가진 학교가 많이 생겨나면서 영재고, 과학고, 전국 단위의 자사고, 외고·국제고와 광역단위 자사고, 일반고, 특성화고로 이어지는 ‘고교 서열’이 고착됐습니다.

교육 정책을 취재해온 남지원 기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사고는 학생을 일반고보다 먼저 선발할 수 있어요.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 단계에서부터 자사고로 빠져나가게 되고, 일반고에는 ‘선발되지 못한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낙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양질의 교육이 보장되는 소수 ‘명문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일반고는 이른바 ‘비선호 학교’가 되어 학생과 학부모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켰어요. 이 현상은 자사고 절반이 몰려있던 서울에서 가장 뚜렷했고, 지난 10년간 축적돼 ‘일반고 황폐화’로까지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이주호 현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주호 장관은 이명박 정부 당시에 고교다양화300 정책을 설계한 장본인인데요. 현 정부에서 다시 교육부장관으로 지명된 그는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고교다양화 정책이 서열화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자율형사립고는 처음에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방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사고들은 다양성을 명분으로 자율성을 획득한 후 입시에만 집중했습니다. 일반고보다 국·영·수 교과에 많은 시간을 배분했어요.

전국의 자사고는 35곳으로, 1055개 학급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급은 단 한 곳 뿐인 것으로 조사됐어요. 2373곳 일반고 절반 가까이에 특수학급이 설치돼 있는 것과 뚜렷이 대조됩니다.

2. 끝을 모르고 늘어나는 사교육비

자사고는 국공립 학교보다 먼저 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에, 잘 가르치기에 앞서 ‘잘 뽑는’ 데 집중하면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올해 나온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역대급’이에요.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데, 아직 대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초·중·고 학부모들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어요. 올해 교육부의 유·초·중등 부문 예산 총액이 81조원이니 학부모들이 지출하는 학원비 규모가 국가 교육예산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지난달에는 중국 한 연구소가 양육비가 가장 높은 나라로 한국을 꼽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서 자녀를 18세까지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에 달한다고 하네요. 중국은 6.9배, 독일은 3.64배, 호주 2.08배, 프랑스 2.24배였습니다.

사교육비 증가는 고교 다양화 정책과 상관관계가 뚜렷해 보입니다.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보고, 학부모들은 일찍부터 선행학습에 많은 돈을 씁니다.

자사고 진학 희망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이 일반고 희망 학생보다 1.7배 많다는 분석도 있어요. 과학고와 외고·국제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도 일반고 지망 학생보다 월 평균 사교육비가 1.6배, 1.5배 많았습니다.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시험으로 학생들을 줄 세워야하다 보니 수능 시험 난이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어요. 몇 년 동안 ‘불수능’ 릴레이가 계속되었는데, 최근엔 심지어 로스쿨 지망생도, 행정고시 준비생도 수능 시험으로 공부한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내신 ‘변별력’을 위해 학생들이 풀지 못할 문제를 쥐어짜고 있고요.

경쟁이 심화해 학생도, 학부모도, 교육자도 개미지옥으로 내몰린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합니다.

3. 고교학점제와 상충하는 정책들

직전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과목을 선택하고, 적성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어요.

이미 절반이 훌쩍 넘는 학교에서 시행 중입니다. 내후년부터는 모든 학교에서 실시될 것이어서, 교육청과 학교, 학원들은 고교학점제 준비가 최대 현안입니다. 학생에게 여러 선택지를 제시해야 하니, 할 일이 많을 수 밖에요.

그런데 지금 역설적으로, 고교 서열화를 가속화하는 데 이 제도가 기여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직접 선택하고, 절대평가로 성적을 받는 게 핵심입니다. 석차등급 없이 성취도로만 성적을 받게 돼요.

그동안 자사고와 외고는 좋은 내신 성적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반고를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학교에서 절대평가로 성적을 받게 되면 자사고와 외고 학생들이 내신 부담을 크게 덜게 돼요. 내신에도 ‘불리함’이 없어지면 이들 학교에 대한 선호만 더 높아질 거란 우려가 그래서 나오고 있어요.

현 정부에서 교원 수를 크게 줄이기로 한 것도 고교학점제의 성공적인 안착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요즘 이과생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인데, 정작 과학 선생님은 구하기 어렵다는 기사도 보이는데요.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사를 줄이겠다고 하니 교육계의 반발이 커요.

새 입시제도는 내년 2월까지 정비될 예정인데요. 시행은 2028학년도부터여서, 2023~2024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 수업은 새로 도입된 고교학점제에 맞춰서 듣고, 대학 입시는 기존 입시제도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 혼란을 피할 수 없을 듯 합니다.

4. 잠깐, 정시가 더 공정한 것 아닌가요?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고교학점제는 대입 전형 중에서는 수시와 더 잘 맞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현 정부에서 ‘정시 40%룰’을 계속 가져가기로 한 점도 우려를 빚고 있어요.

혹시, 시험에 집중하는 정시가 더 공정할 거라고 생각하는 구독자님 계신가요?

저도 막연히 ‘수능 하나만 준비하면 되니 덜 번거롭고, 사교육비를 덜 써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요. 통계를 보면서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정시로 입학하고 있을까요. 최근 4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정시모집 합격자 자료를 보면 다소 충격적입니다.

일단, 합격자 중 이미 졸업하고 여러 차례 시험을 본 N수생이 무려 61.2%였어요. 2016~2018년엔 이 비율이 53.7%였는데, 7.5%포인트나 늘었습니다.

합격자들은 어느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을까요. 전체 합격자의 42.1%가 서울의 고등학교 출신, 29.5%가 경기 지역 고등학교 출신이었습니다.

N수생도 아니고,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도 않은 지방 소재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은 7.9% 뿐이었어요.

대학 서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의대’는 어떨까요?

최근 4년간 정시로 의대에 합격한 신입생(총 4373명) 자료를 분석했더니, 비수도권 소재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100명 중 7명이 채 안 됐습니다.

처음에 눈을 의심했어요. 비수도권 지역 고등학생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일단 합격한 고3 학생 비율 자체가 매우 낮습니다. N수생이 무려 77%거든요.

약 22%의 재학생 가운데 68%가 수도권 출신, 32%가 수도권 외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합격생 비율이 N수생(77%) > 수도권 고3(15%) > 지방 고3(7%)이었던 거예요.

이쯤 되면 정시란 ‘재수나 삼수를 시도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제도’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최근 4년 동안 서울대와 전국 의대에 정시로 입학한 학생 5명 중 1명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출신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집에 화장실이 몇 개인지 알면 SAT 점수를 짐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를 떠올리게 됩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이명박 정부 때 시행한 고교다양화300 정책은 일반고를 슬럼화하고 고교서열화를 고착화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고교 서열화는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집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고교학점제를 도입했지만, 대입에선 고교학점제와 맞지 않은 정시 제도를 확대하는 모순적 결정을 내립니다.

‘공정성’이 명분이었지만, 대입 결과를 보면 수능 위주의 정시가 N수생 또는 수도권 학생에게 유리한 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1. 지역 격차 크니 명문고를 만들자?

국정 비전으로 ‘지방시대’를 제시한 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캐치프레이즈는 이것입니다. “어디 살든 균등한 기회.”

정부는 지방 소멸을 막을 중요한 수단으로 ‘교육자유특구’를 내세우고 있어요. ‘교육’보다는 ‘지역’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정책입니다.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국가 정책에서 해결 못 하는 교육 문제가 사교육 문제와 지방에서 서울로 인재가 유출되는 문제이며, 이를 교육자유특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는 앞서 살펴본 수능 정시 합격 비율에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교육자유특구 지정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역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 당장 이런 질문부터 나와요. 많은 전문가가 교육자유특구 지정이 특목고나 자사고 확대로 이어지고, 지방 일반고를 더 소외시킬 거라고 우려해요.

정부는 교육자유특구의 세부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부터 추진했습니다. 교육부의 올해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취지는 이렇습니다. “학교설립에서 운영까지 교육 관련 규제를 완화해 정형적 모델이 아닌 지역별 맞춤형 공교육을 선도한다.”

당장 교육계 반발이 만만치 않아요. 전국 시도교육감들도 지역 단위의 명문고가 부활하면 지역 내에서 학교 서열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어요.

정부가 미국의 ‘차터 스쿨’을 본떠 추진 중인 ‘협약형 공립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재남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과장은 협약형 공립고를 도입하게 되면 “지자체가 지역 학생의 성장보다 명문대 진학률을 중시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역 언론 동향을 살펴보니 반기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역에 명문고가 생기는 게 지역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일일까요?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을 살리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걸까요?

2. 어떤 선의의 정책도 ‘입시’ 앞에 소용없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된 ‘고교 다양화’ 이후 교육 정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간략히 살펴봤습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뤄진 많은 시도가 결국 ‘줄세우기 경쟁’으로 수렴하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정답 맞히기’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의는 계속 진행되어 왔지만, 정부에 따라 교육정책이 뒤집히고 ‘공정성’ 논란에 발목이 잡히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입시제도를 바꿔야 교육도 바뀐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당장 2028학년도 입시제도를 빨리 내놓아야 해서, 크게 바뀌는 게 없을 가능성이 커요. 이주호 총리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시사했습니다.

이쯤에서 한번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는 정말 자사고나 특목고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요?

‘아니다’라고 말하는 소수 의견도 소개할게요. 이범 교육평론가는 진짜 개선해야 할 문제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애초에 모든 학생이 ‘대학’에 가서 공부하도록 획일적인 인문계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적성에 맞지도 않은 인문계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가는데, 사회에는 정작 애써 받은 교육에 걸맞은 일자리가 없습니다.

이범 평론가는 지금 ‘명문고’를 늘릴 게 아니라, 되려 고교 서열의 맨 아래에 있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괜찮은 일자리가 될 수 있는 영역들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고요.

실제로 한국은 공부와 직업의 ‘미스매치’가 가장 심각한 나라로 꼽힌 적도 있어요. 2015년에 OECD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전문대졸 이상) 중 전공과 상관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 비율이 50%였습니다. OECD 최고 수준이에요. (참여국가 전체 평균은 39.1%)

3. ‘일’만 있고 ‘삶’은 빠진 중등교육

사회에 나와 자립하기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 교육 정책을 논할 땐 온통 ‘입시’ 얘기뿐입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교육정책을 보면 중등교육의 목표를 오로지 ‘인재 양성’으로만 두는 것 같아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를 조금 달리 말하면 ‘아이들을 많이 공부해서 많이 일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것 같습니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현장”이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먹고 사는 방편을 갖추는 동시에, 살아가는 일 자체도 배워야 해요. ‘인재가 될 준비 만큼’이나 ‘노동자로서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에 대한 준비도 중요하지만, 교육부는 이런 내용은 덜어내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한 바 있습니다.

정치권의 셈법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교육 정책은 학생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영향을 미칩니다. 넘치는 사교육비는 저출생과도 무관하지 않고요.

‘공부’로 대표되는 학생들의 ‘일’ 뿐만 아니라 ‘삶’에 방점을 찍은 정책도 더 많이 논의되기를 바라며 점선면을 마무리할게요.

2028학년도 입시제도를 비롯해 정부가 교육과 관련해 추가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놓는지 계속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교육’보다는 ‘지역발전’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지역 명문고가 부활하고 학교 서열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어요.

교육제도가 바뀌려면 입시제도가 바뀌어야 하지만, 올해 정부가 발표할 2028학년도 입시제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쟁과 인재양성만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방향의 정책적 논의가 절실합니다.

세 줄 점선면

▶ 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한 고교다양화300 정책의 연장 선상에서 ‘고교 다양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고교 서열화와 사교육비 증가를 심화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 문재인 정부는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기 위해 고교학점제를 도입했지만, 입시제도에선 고교학점제와 상충하는 정시 비중을 늘렸다. 현 정부 고교 다양화 정책과 전 정부의 정시 비중 확대가 합쳐지면 고교 서열화가 더 심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 정부는 지금 2028학년도 입시제도를 개편 중이다. 고교학점제에 부합하게 수능을 폐지하고 논술형 평가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어 왔지만, 이번에도 반영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뉴스레터 점선면]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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