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저출생의 ‘만능열쇠’ 아니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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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시장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 저임금 개선 없이 외국인 노동력으로 인력부족을 충당하는 방식은, 돌봄노동시장 전체의 임금과 노동여건을 개선하는 데 제약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저임금 언저리 또는 그 이하의 낮은 임금을 주고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는 정부 정책이 노동시장과 인력관리 등 다양한 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돌봄서비스의 특성과 돌봄 수요, 저출생 완화 효과성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졸속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노총은 8일 오전 국회에서 ‘가사서비스 외국인력도입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이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최저임금 언저리, 또는 그 이하의 임금을 주고 외국인을 가사도우미로 고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논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오 시장은 국무회의에서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며 논의를 제안했습니다. 지난 3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월 100만원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도록 하겠다’며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논의는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도입 검토 지시를 내리면서 급물살을 탔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여론조사 등을 거쳐 올 하반기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아직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임금 조건 등은 확정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돌봄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이 막 시작되는 상황에서 저임금 외국인력을 도입하면 노동자들의 처우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1년 기준으로 돌봄노동자 평균 시급은 1만183원으로 타 직종(1만6437원)보다 6254원 낮다. 최저임금의 120% 미만을 받는 취업자도 52.5%에 달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돌봄서비스 부족 문제를 값싼 외국인 노동력 공급이라는 실현 가능성 낮은 논쟁으로 이끌어가는 게 바람직한가”라며 “돌봄서비스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방안을 모색할 수는 없는 것인가”라고 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사근로자법 이전에는 해당 직업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등으로 노동력 공급이 부족했는데, 이 점이 해소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을 주의깊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 연구위원은 “가사근로자법을 통해 처우가 개선되고 노동조건이 향상되면 내국인의 진입이 증가해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과정은 최소 5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법 시행 5년 이후에도 내국인력 공급이 부족하다면 그 시점에 외국인력 도입을 논의해보는 게 ‘내국인 노동시장과의 조화’ 관점에서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저임금은 외국인 고용안정·인력관리에도 애로사항이 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농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높은 이탈률은 노동환경과 낮은 임금수준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며 “이런 현상은 돌봄서비스 분야 외국인 인력 도입 때도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외국인 노동시장에서 업종이나 직종 간 임금 격차는 사업장 이탈의 핵심 이유였다는 점을 보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합법적인 가사서비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비합법 시장화’를 조장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했다.

돌봄서비스 수요자 관점에서는 ‘언어·문화적 소통’ 우려를 제기했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양육하는 배수민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한국어능력자격 1급을 딴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아이와의 소통은 난제 중의 난제일 것”이라며 “양육자와의 소통에서도 어려움을 느끼긴 마찬가지라 예상한다”고 했다. 이어 “외국인 입장에서도 사용자인 양육자의 신분을 알 길이 없다”며 “가정이라는 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격모독, 인종차별, 성폭력 등 그들도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노동존중실천단이 주최한 ‘가사서비스 외국인력 도입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조해람 기자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노동존중실천단이 주최한 ‘가사서비스 외국인력 도입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조해람 기자

정부가 저출생 문제와 돌봄노동의 가치를 가볍게 생각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배 활동가는 “단순히 가사와 돌봄을 누군가 저렴하게 대신해 주면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저출산의 원인을 완전히 잘못 분석한 것”이라며 “정부는 저출산의 원인이 개인적 취향 문제가 아닌 사회적,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돌봄은 기계처럼 기능적인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의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한다”며 “국경을 넘어 더 값싼 노동력을 가지고 오겠다는 발상으로는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돌봄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값싼 인력’ 도입보다 돌봄문제 자체에 대한 개선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적정 수준의 임금 가이드라인의 설정, 직무의 범위, 표준근로시간의 설정 등 고용관계를 둘러싼 제반 규정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성급하게 제도를 추진할 경우 돌봄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지금은 퇴직인구의 증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국민의 보편적 돌봄권이라는 관점에서 돌봄 자체에 대한 중장기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라며 “가사근로자법 활성화와 노동환경 개선을 통해 노동능력과 의사가 있는 중·고령층 인입, 국가자격증제도, 직업훈련 확대를 통한 업무 표준화, 서비스 질의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정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도입되면 돌봄·가사노동 부담이 줄어 저출생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며 시범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은 정말 ‘만능열쇠’ 같은 해결책일까요?

최근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과 저출생 완화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편 토론회를 주최한 노동부는 발제문에 담긴 이 ‘핵심 주장’을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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