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포럼

“경제정책 우선순위는 시민들이 건강한 생활 누릴 복지에 둬야”

길퍼드 | 김경학·이창준 기자

‘지속 가능한 경제’를 연구하다…영국 서리대 교수 팀 잭슨

“성장 신화를 깨야 한다”
생산성 증가 통해 이윤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구조적 요소로 인해 복지·환경을 악화시켜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가 지난달 13일 영국 길퍼드 서리대 캠퍼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길퍼드 |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팀 잭슨 영국 서리대 교수(66)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연구하는 세계적 석학이다. 스웨덴 스톡홀름환경연구소와 영국 경제사회연구위원회(ESRC)·지속가능개발위원회(SDC) 등에서 지난 30년 동안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에 관해 선구적으로 연구해왔다. 그는 지속 가능성 분야에서 보여준 탁월한 성과로 기후변화·빈곤·질병·평화·정의 등 인류 과제에서 리더십을 보인 이들에게 수여하는 힐러리상을 2016년 받았다.

폭넓은 연구와 남다른 필력을 가진 잭슨 교수는 <성장 없는 번영>(2009·2017),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2022) 등 경제학 관련 저서뿐 아니라 극작가로서 환경 드라마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지속 가능한 투자 전략을 수립하는 금융사 등의 자문 역할을 맡으며 금융 개혁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불평등·기후변화의 주범은 정부”
생산성에 집중하는 기업이 정부에 세금 내고
정부는 임금·생계·돌봄 서비스 제공을 맡아야

잭슨 교수를 지난달 13일 서리대에서 직접 만나 현재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물었다. 그는 생산성 증가와 이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요소로 인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유지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주범은 정부라고 지적했다.

잭슨 교수는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는 평범한 사람들이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건강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는 복지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생산성에 집중하는 분야가 정부에 세금을 내고, 정부는 임금·생계·돌봄 기반 경제의 서비스 제공을 맡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잭슨 교수와의 주요 문답.

- 최근 세계 경제 상황이 매우 불안정해 보인다.

“불안정 원인은 우선 코로나19와 팬데믹 회복 국면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또 지난 30~40년간 깊이 뿌리내린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성찰해야 한다. 경제와 사회 간의 관계, 사회 내 자산의 소유권 구조, 실물 경제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만약 잘못 받아들이면 심각한 피해와 사상자를 양산할 것이다. 경제가 붕괴돼 정부가 서민을 보호할 수 없다면 사회 불안 위험은 매우 크게 증가한다. 세계 무역의 붕괴로 국가 간 관계가 악화되거나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것 모두 실재하는 위험이다.”

- 팬데믹 초기에 전 세계적으로 푼 유동성이 현재의 위험을 키운 건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유동성 폭발이 인플레이션에 기여했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다만 1970~1980년대처럼 유가가 인플레이션 조건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한다. 지난 금융위기와 그 회복 과정에서 경험했다시피 긴축 기조는 경제 회복의 측면에서 피해를 양산한다.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는 평범한 사람들이 충분한 임금을 받으며 건강한 상태로 생활할 수 있는 복지에 둬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 주식시장의 안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주요 위험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조건이 더 엄격해지고, 사회 보장이 더 후퇴하고 사회 복지, 건강 보호 시스템이 더 약화되면 삶의 질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가 추락한 원인은 자본주의가 성장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성장 없이도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까.

“성장 없이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자본주의 내부에 성장을 필요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경향은 대체로 이윤을 유지하고 극대화하는, 좁게 정의된 생산성에 의해 좌우된다. 이런 자본주의의 구조적 요소로 인해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생산성 증가와 이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건 우리가 돌봄 경제라고 부르는 것을 유지하고, 사회 복지에 투자하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걸 어렵게 한다. 바로 이런 지점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 자본주의를 나쁘게 만든 가장 큰 주범이 누구일까. 재화나 서비스 등 모든 걸 카지노로 만든 금융인가.

“일부 그런 측면이 있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불안정을 조성하며 또 실물 자산이나 생활 방식에 투자하지 않는 대신 환경을 해치는 제품, 물질적 자원 추출에 투자했다. 그리고 그 수익을 불평등하게 분배하는 자본주의의 역기능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이 금융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은 두 가지 이유로 존재한다. 하나는 실물 경제의 필요성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이나 입법 과정에 금융이 필요해서다. 자본주의의 역기능, 금융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투기적 투자가 도드라지긴 하지만 정부를 더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기업보다 실제로 더 큰 권한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얼마나 규제하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기후변화의 주범은 화석연료 기업인가, 아니면 그런 화석연료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인가.

“정부다. 정부는 화석연료 기업이 책임지지 않도록 허용했고, 기업에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더 나아가 기업들이 효과적인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결과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자금보다 정부가 화석연료 기업을 지원하는 보조금이 더 많다. 세금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정치 조직이고, 정치는 구성원들의 승인과 동의를 필요로 한다.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에 찬성하는 진보적 노선을 취하려 해도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가령 프랑스에서 탄소세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 매우 격렬한 대중의 저항에 직면했다.”

- ‘성장 신화를 깨야 한다’ ‘무한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녹색성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데 지속 가능한 성장은 정말 없는 건가.

“흔히 말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우리는 성장을 선택하고 이것이 지구에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지 않는 성장을 찾아 ‘지속 가능하다’고 말하곤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 녹색성장 또는 스마트 성장이라고는 하는데… 분명 방법이 있긴 할 것이다. 나는 이들을 ‘포부(Aspirational) 전략’이라고 칭하고 싶다. 성장을 계속하려는 포부고, 조직에 깊숙이 박힌 포부인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장이 매우 지속 불가능하다는 인식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런 방식의 성장이 실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다. 나는 아직까지는 도움이 되는 성장은 보지 못했다.”

- 사람들의 행복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국내총생산(GDP)이 많은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다양한 ‘대안 지표’가 제시되고 있다.

“지표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단 하나의 숫자라는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우상향하는 하나의 지표를 찾는 건 일종의 성장 신화라고 생각한다. 지표를 통해 사회가 항상 진보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다. 행복이나 지속 가능한 경제는 그런 게 아니다. 때로는 대규모로 성장하지 않는 기간을 거칠 수도, 때로는 매우 빠르게 성장할 수도, 성장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경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 GDP는 자동차의 RPM(분당 회전 수)과 같다. RPM만으로는 자동차의 속력을 알 수 없고, 도로 위에 있는지 아니면 도로 밖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 인공지능이 화두다. 기술 발달로 인간이 의무적인 일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고, 오히려 돌봄이나 창의성 발휘 등에 더 몰두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할수록 첨단 기술에 접근하며 사는 이들이 늘 것이다. 한편으로 돌봄, 사회 복지, 건강, 교육, 예술처럼 항상 인간의 시간에 의존해 온 직업도 있다. 점점 더 스마트해지는 기술로 인해 사회에서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우리는 그 격차를 목도하고 있다. 격차와 불평등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는 인적 서비스보다 생산성에 가치를 두고 해당 직업들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술 지향적이고 생산적이며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에서 평가절하되고 있다. 신기술로 인해 더 그들의 처우와 사회적 평가가 악화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기술 발달로 소수 자본가에게 이윤이 집중되고 있다. 이윤을 고루 배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불가능한가.

“높아진 생산성을 사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체제는 있다. 돌봄 경제라고 불렀던 것처럼 사람들이 의미 있고 목적 있는 일을 하며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존 패러다임에 비하면 더 느리고 덜 생산적이지만 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현재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통 특정한 전제를 가지고 있다. 전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은 생산성과 관련이 있고, 돌봄 경제보다 생산적이고 기술 지향적이며 물질 지향적인 경제를 중시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둘 사이에 불평등이 심화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그 불평등을 체계적으로 주도한다. 이 같은 불평등을 극복하는 방법은 생산성에 집중하는 분야가 정부에 세금을 내고, 정부는 돌봄 기반 경제의 서비스 제공을 모두 맡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생산성도 높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과 함께 인간 서비스, 다시 말해 인간의 일과 창의성, 사회의 핵심 가치인 돌봄 노동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해서도 똑같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모두의 번영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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