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복·장비 조달 계약 뜯어보니···안전화 5만원 vs 39만원 ‘천차만별’

박하얀 기자
강원 지역의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이 지급받은 고글은 대원들의 요청으로 지급된 제품이지만 렌즈가 코팅된 탓에 야간에 잘 보이지 않는다. “불편해서 벗고 진화작업을 하다가 나뭇가지에 긁히기도 한다”고 대원은 전했다. 구매 담당자의 ‘정보력’과 ‘의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강릉|성동훈 기자

강원 지역의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이 지급받은 고글은 대원들의 요청으로 지급된 제품이지만 렌즈가 코팅된 탓에 야간에 잘 보이지 않는다. “불편해서 벗고 진화작업을 하다가 나뭇가지에 긁히기도 한다”고 대원은 전했다. 구매 담당자의 ‘정보력’과 ‘의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강릉|성동훈 기자

“전국에서 쓰는 게 다 달라요. 대원들이 쓰는 것을 모아봤더니 진화장갑은 20가지 이상, 안전모는 7~8종류, 진화복은 두세 종류 정도 돼요.”(신현훈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관리소별로 천차만별이에요. 좋은 제품을 쓰는 관리소가 있는가 하면, 형편 없는 장비를 주는 곳도 있고요. 어떤 관리소는 대원들에게 배정된 피복비 예산을 다 쓰고, 어떤 데는 아니고요.”(황재광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지난해 발생한 울진 산불처럼 산불의 규모가 크면 해당 지역뿐 아니라 인근 지역을 담당하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까지 출동한다. 한자리에 모인 대원들은 이때 서로의 진화복과 신발, 안전모, 장갑 등 안전장구를 보면서 비교할 기회를 갖는다. 더 튼튼하면서도 가뿐한 신발, 경량화해 머리에 가해지는 하중이 덜한 안전모 등 더 나은 장비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강원 지역을 관할하는 동부지방산림청과 동부청 산하 삼척국유림관리소 소속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이 지난 5월9일 화재 피해 현장인 강릉 난곡동의 야산을 찾았다. 이들이 지급받은 헬멧과 보안경, 마스크, 신발 등 안전장구는 관리소마다 제각각이었다. 강릉|성동훈 기자

강원 지역을 관할하는 동부지방산림청과 동부청 산하 삼척국유림관리소 소속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이 지난 5월9일 화재 피해 현장인 강릉 난곡동의 야산을 찾았다. 이들이 지급받은 헬멧과 보안경, 마스크, 신발 등 안전장구는 관리소마다 제각각이었다. 강릉|성동훈 기자

산불 현장 일선에서 불을 끄는 대원들은 하나같이 관리소마다 다른 진화복과 안전장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착용하는 옷과 안전장구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단순하지 않다. 현장에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지 갈리고, 이는 진화 역량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 소속 공무직(무기계약직)·계약직인 이들을 비롯해 산불 진화 인력은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가 정하는 ‘필수업무 종사자’로 분류됐다. 국가재난에 대응하는 필수 업무로 분류됐다고 해서 처우나 지원이 당장 달라진 것은 없다고 대원들은 말한다. 앞서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대원들이 입는 방화복은 조달청 공개 입찰을 거치기 때문에 옷의 성능 등이 시스템 안에서 관리된다. 반면 산불진화대원들의 진화복과 장비는 관리소별로 수의계약을 하고 있어 제각각인 데다가 품질 관리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화복·장비 조달 계약 뜯어보니···안전화 5만원 vs 39만원 ‘천차만별’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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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 하는데 지급받는 신발은 5만5000원 vs 39만원

산림청이 책정한 대원 1인당 연간 피복비는 110만원이다. 지역 국유림관리소는 이 예산 안에서 진화복과 안전장구 등을 구매해 지급한다. 경향신문이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5개 지방산림청과 지방청 산하 27개 국유림관리소의 안전장비 구매 계약 내역을 보면 대원들이 지급받는 물품의 가격 차가 최대 7배까지 벌어졌다. 일례로 올해 각 관리소가 구입한 안전화는 최저 5만5000원~최고 39만원이었다. 서부청 순천관리소 대원은 5만5000원짜리 안전화를 지급받았는데, 중부청 단양관리소 대원들은 39만원짜리를 받았다.

같은 지방청 산하 관리소 사이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동부청 태백관리소는 9만원짜리 안전화를 지급했는데, 강릉관리소는 29만6000원과 30만8000원짜리를 구입했다. 중부청 충주관리소는 9만3000원짜리 안전화를, 단양관리소는 39만원짜리를 샀다. 북부청 홍천관리소는 8만원짜리 헬멧을 구매했는데, 북부청 산림재해안전과 대원들이 지급받은 헬멧은 36만3000원으로 가격 차가 4배를 넘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이처럼 대원들이 소속된 관리소마다 지급받는 장비의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현장에서 (구매 물품이) 성능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사안이기 때문에 일일이 통제할 수 없다”고 했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이 지급받는 안전장구 가운데 하나인 방독 마스크(왼쪽)와 방화 텐트(오른쪽). 강릉|성동훈 기자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들이 지급받는 안전장구 가운데 하나인 방독 마스크(왼쪽)와 방화 텐트(오른쪽). 강릉|성동훈 기자

산불진화대원 복제 지침이 규정한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하면 가격은 천차만별이어도 상관없는 걸까. 가격과 질이 반드시 비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제품을 써본 대원들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을 지급받느냐에 따라 진화 역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태백관리소 김영래 (가명) 대원은 “대원들마다 지급받는 불갈퀴도 갖가지”라고 말했다. 불갈퀴는 불이 번지지 않도록 대원들이 방화선을 구축할 때 쓰는 필수 장비인데 통일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제품은 억센 나무뿌리 등을 자르기에는 적정하지 않은 것도 있어 방화선을 구축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특히 신발은 저가일수록 산악 지형에서 장시간 근무하는 대원들의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강원 지역에서 수년째 진화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은석씨(가명)는 “지난해 받은 중국산 신발을 신고 불을 끄러 갔는데 밑창이 다 빠져 발이 아팠다.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하니 2만원대 신발이더라”라고 털어놨다. 신현훈씨는 “좋은 제품은 여러 해 쓸 수 있고 만족도가 높아 (장기적으로) 비용도 아낄 수 있다”면서 ‘상향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척국유림관리소에 놓인 대원들의 신발. 안전화, 전술화, 등산화 등 관리소마다 지급하는 신발이 제각각이다. 기자가 만난 대원들은 “발의 피로도가 전체 몸에 영향을 많이 주는데, 안전화로는 피로감이 가중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박하얀 기자

삼척국유림관리소에 놓인 대원들의 신발. 안전화, 전술화, 등산화 등 관리소마다 지급하는 신발이 제각각이다. 기자가 만난 대원들은 “발의 피로도가 전체 몸에 영향을 많이 주는데, 안전화로는 피로감이 가중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박하얀 기자

관리소마다 ‘천차만별’ 작업복, 왜?

대원들이 지급받는 진화복과 안전장구가 천차만별인 가장 큰 이유는 관리소별로 수의계약으로 물품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각 관리소가 업체들이 낸 견적서를 보고 필요 물품을 개별적으로 계약한다. 소방서들이 일부 소량을 제외한 방화복과 안전장구를 시·도 소방본부 단위로 조달청 공개입찰을 통해 구매하는 것과 대비된다.

산림청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진화대원이 현재 435명으로, 관리소별로는 10~20명에 그치기 때문에 계약 금액이 소액이라 수의계약을 한다고 설명한다. 최근 5년간(2019~2023년 4월) 산불진화대를 운용 중인 5개 지방산림청과 산하 27개 국유림관리소의 계약 내역을 뜯어보면 관리소별로 안전화 12켤레, 장갑 12켤레, 방진마스크 300장 등 소량·소액 구매가 대부분이었다. ‘복장과 장비의 통일성’도, ‘규모의 경제’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다만 이들이 개별적으로 진화복과 장비를 구입하는 데 쓴 예산을 모두 합하면 매년 3억원 안팎인 것으로 파악됐다. 조달청 규정에 따르면 계약 건당 추정 가격이 1억원 이하인 경우 수의계약 등 자체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계약은 몇몇 업체에 몰린 과점 구조였다. 최근 5년간 진화복 계약 내역(관리소가 기재한 품목 기준)을 분석한 결과, 진화복 계약 총 442건 가운데 절반을 넘는 240건(54.3%)이 A업체에 돌아갔다. 뒤이어 B업체가 87건으로 19.7%를 차지했다.

조달청은 국민안전물자인 소방용 특수방화복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선 일부 업체에 납품이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2020년 1월1일부터 업체별 공급 비율을 50% 이하로 제한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한 업자와만 계약하면 (계약업체가) 나태해질 수 있어 상시로 경쟁체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신현훈씨(61)가 지난 5월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작업복인 진화복과 안전모, 보안경, 장갑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조명 아래 서서 포즈를 취했다. 검게 그을린 나무는 4월 발생한 산불의 흔적이다. 강릉|성동훈 기자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신현훈씨(61)가 지난 5월 강원 강릉시 난곡동의 한 야산에서 작업복인 진화복과 안전모, 보안경, 장갑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조명 아래 서서 포즈를 취했다. 검게 그을린 나무는 4월 발생한 산불의 흔적이다. 강릉|성동훈 기자

필수노동의 가치에 맞는 작업복을 위해서는

대원들은 이처럼 ‘견제받지 않는’ 과점 구조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복제 지침이 봉제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까지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막상 진화복을 받아보면 만듦새가 허술해 잘 터지는가 하면, 방염과 발수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강원 지역에서 일해온 박석연(가명) 대원은 “납품업체가 옷을 엉터리로 만들어서 대원들이 사비를 들여 수선소에 맡긴 적이 있다”라고 했다. “어떤 옷은 바지 통이 너무 좁아 산에 올라가거나 쪼그려 앉으면 재봉선이 터졌고, 다른 옷은 포대 자루마냥 통이 너무 넓어 활동하기 편하지 않았어요. 옷이 정말로 불에 타지 않는지 의심스러워서 라이터 불로 지져본 적도 있습니다.” 황재광 충주관리소 대원은 “산불진화복 업체가 몇곳 안 되다보니 가격은 비싸고 오히려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산림청 차원의 관리·감독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림청은 납품 업체들이 복제 지침을 제대로 따르는지 등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진화복을 납품받을 때 산림청 규정에 맞는지는 발주한 (관리소 담당) 부서에서 확인하고 산림청에 보고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산림청 본부에서 관련 보고를 받고 확인할 인력이 없다는 이유도 댔다.

강원 지역의 대원들이 4월 산불이 발생하고 한 달이 흐른 지난달 9일 화재 피해를 본 강릉시 난곡동의 야산을 찾았다. 나무들은 밑동이 까맣게 그을려 탄 냄새가 코를 찔렀고 손에는 재가 묻어났다. 인근 민가 여러 채가 전소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강릉|성동훈 기자

강원 지역의 대원들이 4월 산불이 발생하고 한 달이 흐른 지난달 9일 화재 피해를 본 강릉시 난곡동의 야산을 찾았다. 나무들은 밑동이 까맣게 그을려 탄 냄새가 코를 찔렀고 손에는 재가 묻어났다. 인근 민가 여러 채가 전소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강릉|성동훈 기자

계약의 투명성은 납품받는 제품의 품질과 직결되고 투명성을 높이려면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산림청은 2017년 7월 일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산불진화장비를 사들이면서 업자들에게 뒷돈을 받은 사실이 경찰에 적발되자 전국 시·군·구와 국유림관리소의 산불진화장비 구입 실태조사를 벌였다. 당시 산림청은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장비 구매와 관리 체계를 투명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각 관리소는 계약 내역을 대원들이나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베트남 등 외국에서 만든 옷을 국내에서 납품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일부 업체는 산림청 퇴직 공무원을 영업이사 등으로 영입하는데 이 업체들이 시장에서 유리한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백기억·신현훈·안창영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왼쪽부터)이 지난 5월9일 산불 피해로 전소된 강원 강릉 난곡동의 야산 인근에 있는 한 건물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릉|성동훈 기자

백기억·신현훈·안창영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왼쪽부터)이 지난 5월9일 산불 피해로 전소된 강원 강릉 난곡동의 야산 인근에 있는 한 건물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릉|성동훈 기자

한국산불학회장인 문현철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공무 수행을 위해 구매하는 물품과 수행 연구과제를 조달청을 통해 발주하는 이유는 투명성과 품질, 가격을 담보하기 위함이다”라면서 계약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 교수는 “오랫동안 진화 임무를 수행해 온 소방에 비하면 산불진화대원들에 대한 관심은 적어 시스템이 덜 구축돼 있다”면서 “재질 등에 대한 보다 촘촘한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마련해 대원들이 쓰는 제품을 전국적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진화대원들이 쓰는 진화복과 안전장구의 기준을 일반 소방대원에 준해 요구할지, 아니면 활동성과 기능성 등을 강조할지 검토해야 한다”면서 “성능에 부합하는 제품을 보급하려면 관리소가 개별적으로 구매하는 식으로는 품질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대원들 사이에서는 지방청 단위로 일괄 계약해 같은 지역에서 일하는 대원의 진화복과 안전장구라도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 작업복 기획팀
김한솔·김정화·박하얀(스포트라이트부), 성동훈· 권도현(사진부), 최유진· 모진수(뉴콘텐츠팀), 박채움·이수민(데이터저널리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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