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 속 사흘째 전장연의 ‘버스차로’ 시위···현행범 체포된 박경석 대표가 외친 말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경찰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를 인도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김세훈 기자

경찰이 14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를 도로교통법 위반 등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박 상임대표는 “22년을 외쳐도 장애인은 버스에 제대로 탈 수 없다”고 항의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오후 여의도 글래드 호텔앞에서 보성운수 5618번 버스 앞을 가로막아 운행을 방해한 박 상임대표를 업무방해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고 밝혔다.

부슬비가 내리던 오후 2시 박 상임대표는 서울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쪽 횡단보도를 지나쳐 버스 앞에 섰다. 그의 손에는 ‘전장연은 서울시 적군이 아니다 / 갈라치기 혐오정치 STOP’ 이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그는 버스를 향해 ‘문을 열어달라. 버스에 태워달라’고 외쳤다. 3분쯤 지나자 경찰 대여섯 명이 박 상임대표를 인도 쪽으로 몰아낸 뒤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후 기동대원 20여명이 그의 주위를 겹겹이 둘러쌌다.

14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여전시 광역버스, 시외버스는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장애인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봐달라”고 했다. 김세훈 기자

박 상임대표는 “버스를 태워달라고 했을 뿐인데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이게 왜 운행방해가 되냐”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를 더는 묵인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어 “경찰은 제대로 된 고지도 없이 무작정 체포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장애인 권리를 외칠 것”이라고 했다. 갑자기 굵어진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대기하던 박 상임대표는 오후 3시22분쯤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호송됐다. 경찰은 호송을 위해 장애인콜택시를 부르려 했지만 박 대표는 이를 거부했고 사적인 차량을 이용해 남대문경찰서로 향했다. 박 대표는 경찰서 도착 후 하차를 거부하다 약 4시간 만인 오후 7시30분쯤 차에서 내려 조사실로 들어갔다.

이날은 전장연이 ‘버스 시위’를 시작한 지 사흘째였다. 앞서 전장연은 “서울시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9월까지 지하철 시위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가 ‘전장연 때리기’를 이어가자 전장연은 지난 12일 “마녀사냥에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에 맞서 비폭력·불복종 버스행동을 매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전장연은 서울 종로구 종로1가·혜화역 인근, 동작구 대방역 인근 버스정류장 등에서 10여 분간 버스차로를 막는 형태의 기습 시위를 벌여왔다. 박 상임대표는 “버스는 지하철과 같이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이지만 지금까지 장애인은 탑승에서 배제됐다”고 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14일 현행범 체포돼 경찰의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김세훈 기자

박 상임대표의 현행범 체포는 전장연을 향한 여당과 서울시의 강경대응 기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국민의힘 시민단체선진화특별위원회는 전장연을 ‘보조금 유용단체’로 지목하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태경 특위위원장은 전장연을 두고 “권력유착형 시민단체 3대 카르텔”이라고 했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박 대표에게 출석 요구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달 28일 서울시 장애인 활동지원금 전수조사 시행결과 348명이 부정수급을 받고 있었다며 이들에 대한 지원금을 중단·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부정수급이 적발된 장애인활동지원기관에는 행정지도 처분을 하겠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도 전장연을 상대로 소송을 추가로 제기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달 16일 “전장연을 상대로 1억278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지난 4월28일 서울중앙지법에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서울교통공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총 청구액은 7억8000여만원으로 늘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14일 경찰에 호송되기에 앞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경찰의 현행범 체포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박 상임대표는 체포 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오세훈 시장과 8월 셋째 주까지는 대화에 임하며 휴전하기로 했는데 그 기간에 서울교통공사가 새로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며 “공무원을 동원해 ‘전장연 죽이기’에 나선 하태경 국민의힘 시민단체특위 대표에게 조작된 자료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약속대로 지하철 시위를 중단했는데 오 시장은 계속 우리를 악마화하고 갈라치기하고 있다”며 “우리는 대화를 원할 뿐이다. 서울시 실장급 면담 요청을 수용하면 버스 시위를 중단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강경 대응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동원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하겠다”며 종로·혜화·동작경찰서에 전장연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고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과 함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