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당하는 ‘노동약자’인데…정부는 “애들은 노동 배우지 마!”

조해람 기자

2022 교육과정에서 ‘노동’ 지우기

서울시의회, 관련 예산 전액 삭감

전문가들 “노동인권교육 강화해야”

‘법제화로 국가 책임 필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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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해 갈 청소년에게 ‘노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헌법에서부터 현실적 권리구제 방법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객관적인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한 순간이 왔습니다. 이 사회가 성취해야 할 필연적인 과제입니다.”

대표적인 ‘노동 약자’인 청소년을 위한 노동인권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에서 ‘노동’을 삭제했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교육청의 노동 교육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법학·교육 전문가들은 오히려 청소년들의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하고, 법제화를 통해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기호 민주노총법률원 원장(변호사)은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학교부터노동교육운동본부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노동인권교육 법제화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적지 않은 청소년이 노동을 경험하지만,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몰라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 인권위의 2020년 ‘청소년 노동인권 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중·고등학생 10명 중 1명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 이 가운데 50.5%가 ‘부당 대우를 당했는데도 참고 계속 일했다’고 했다. 노동인권교육을 받았다는 비율은 32%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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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장은 “사용자의 요구 중 어떤 것이 부당한 것인지 청소년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며, 자신의 법적 권리를 지킬 방법을 구체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청소년 노동권 침해가 심각한데도 정부가 교과서에서 ‘노동’을 지우려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삭제했다. 각 교과목의 단원별 성취기준에서도 노동 관련 내용은 대부분 빠졌다. 정 원장은 “헌법 기본권인 노동인권의 본질적 의미, 노동자가 노동 현장에서 갖는 구체적인 권리, 부당대우를 당했을 때 구제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이 이뤄질 수 없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노동교육, 안정화하려면?

전문가들은 노동인권교육을 법제화해야 청소년들의 ‘노동을 배울 권리’를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현재 노동인권교육은 각 시·도교육청이 맡고 있다. 시·도의회 다수당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노동인권교육 진행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앞서 지난 7월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은 서울시교육청의 노동인권교육 예산을 최초로 ‘전액 삭감’했다.

정 원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동인권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정 원장은 “통합적 교육 콘텐츠를 만들기도 어렵고, 지자체장과 교육감 및 지방의회 다수당의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지자체별로 매우 다른 노동인권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법제화를 통해 전국적으로 통일된 체계적이고 일관된 노동인권교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2017년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의 극단적 선택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2017년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의 극단적 선택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현재 국회에는 총 6개의 노동인권교육 관련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 단계에 몇 년째 머물러 있다. 교육기본법에 ‘국가와 지자체는 노동인권교육에 필요한 시책을 수립·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한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3건(더불어민주당 전용기·안민석·이탄희 의원 대표발의안), 별도 법률을 새로 발의한 ‘학교노동인권교육의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무소속 윤미향 의원 대표발의안)’, 별도 법률을 제정하면서 ‘사업장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을 추가한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더불어민주당 강병원·이수진 비례대표 의원 대표발의안)’이다.

정 원장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근로계약서 작성과 구체적인 권리구제 방법에 대한 노동인권교육은 교육부가, 사업주에 대해 청소년 노동인권 이해를 높이는 교육은 고용노동부가 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했다.

전명훈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전문관은 “시·도교육청 수준에서 노동인권교육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예산·제도상 어려움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개별 교육청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최소한 법률 수준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의 근거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은지 교육부 인성체육예술교육과 주무관은 “교육부와 관련된 4개 법안은 국회 교육위원회에 올라가 있어, 교육부에서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며 “저희 과를 포함해 교육부 내 노동인권교육 유관부서에 의견을 잘 전달하겠다”고 했다. 김순재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과장은 “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고용노동교육원에서 사업주와 근로자, 청소년, 학생 대상 교육도 담당하고 있다”며 “교육원을 통해 수요자에 맞는 프로그램과 자료를 개발할 예정이고, 노동인권교육을 담당하는 다양한 유관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강의역량 강화와 강사양성 프로그램도 같이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 더 알아보려면

청소년 노동자들의 권리는 교과서에서만 밀려난 게 아닙니다. 여성가족부는 일터에서 임금체불·괴롭힘·성희롱 등 부당대우를 당한 청소년을 위한 상담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 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비슷한 사업이 있어 괜찮다는 이유인데, 정작 노동부의 예산은 ‘1원’도 늘어나지 않았죠. 부당 대우를 당한 청소년 노동자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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