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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뭐야?” 교수님과 반말하는 학생들, 평어 1년 실험기

양다영 PD

저희 교수님이 말 놓으래요

대학 수업 시간, 학생이 교수에게 묻는다.

“이게 뭐야?”

강의 시작 전, 학생들에게 손바닥만 한 종이를 별다른 설명 없이 나눠준 직후였다. 종이에는 이날의 조별 토론 주제가 적혔다. 학생의 ‘반말’ 질문을 들은 교수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갖고 놀아, 가지고 있어”라고 답했다. 교수는 계단식 형태의 교실을 오르내리며 전체 학생들에게 다 나눠줄 때까지 학생들과 ‘반말 대화’를 이어갔다.

지난달 11일 오후 경희대학교 ‘의미의 탄생’이라는 교양과목 강의실에서 벌어진 장면이다. 이 수업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은 대화할 때 존댓말 대신 ‘평어’를 써야 한다. 교수, 복학생 선배, 신입생 모두 예외는 없다. 평어는 이름 호칭과 반말로 구성된 말이다. 말의 평등함을 추구하자는 의미로 제안된 ‘예의 있는 반말’이다. 이를테면 “OO(이름), 나 궁금한 게 있어”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식이다.

김진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지난해 9월1일부터 일 년째 평어 쓰는 수업을 열고 있다. 처음 시작하던 날 학생들에게 평어 실험에 대한 자신의 신문 칼럼을 읽어주곤 “어때 해볼래?”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벌벌 떨면서 ‘좋아’라고 대답하더라”라며 그때를 떠올렸다. 이번 학기 첫날에도 김 교수는 어김없이 “어때 해볼래?”라고 제안했다.

일 년 사이 평어 수업이 교내외로 알려지면서 놀라는 학생은 꽤 줄었다. 외부에서 청강을 요청하는 학생도 생겼다. 수강생 김서영씨는 “주변에서 학생들이 교수님을 ‘진해’라고 부르는 수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강의계획서도 보지 않고 수강 신청했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 도전적인 수업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진해”라고 문자를 보냈다. 김 교수는 “평어로 문자를 쓰면 아쉬운 얘기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모양”이라며 “‘오늘 일 때문에 결석해. 수업 잘 듣고 있어’라는 문자도 와요. 제가 ‘쓰담쓰담’을 당하는 거죠”라며 웃었다.

김 교수는 평어를 쓰기 위해 수업 틀을 싹 바꿨다. 교수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그냥 학생들한테 반말하는 수업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강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매번 주제를 던지고 토론이나 놀이를 유도했다. 조별로 대화한 내용은 전체 학생들에게 발표하는 순서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선생과 학생들끼리 평어를 쓰는 것에 사람들은 주목하는데, 더 중요한 건 학생들끼리 평어로 대화하는 거예요.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 말고 다른 어떤 기준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지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강의는 자신이 써온 과제를 주변 친구들과 평어로 나눠 읽으며 시작했다. 어떤 과제를 골랐는지 이야기하는 10분여 동안 강의실은 북적였다.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모인 교양 수업이기 때문에 과제 주제는 매우 다양했다. 김 교수는 본인만의 독특한 스트레스 구분법을 이야기하는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듣다 “(스트레스)선이 움직이는구나?”라고 물었다. 학생은 “어”라고 자연스럽게 답하며 말을 이어갔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모두 평어를 자연스럽게 쓰는 건 아니다. 어미를 흐려서 말하면서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이날 한 수강생은 김 교수의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가 곧장 “앗, 어”라고 고쳐 말했다. 수강생 손한 씨는 평어로 메일을 보내본 경험을 묻자 “문자로는 평어를 쓰는 게 아직 어색해서 되도록 수업 끝나고 물어보려고 한다”라고 답했다.

김 교수의 평어 수업은 교내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번 9월부터는 대학원에서도 평어로 수업을 하기로 했다. 경희대의 다른 교수들도 몇몇 교과목에서 평어 수업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평어 쓰는 이상한 사람으로 알려져서 편해졌다”라면서 “다른 대학에 있는 선생님이 저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하고 있는데 학생들 반응이 좋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냥 ‘말을 놓자’가 아니에요. 회사는 10년 넘게 같이 지내지만 존대로 맺어진 위계가 있잖아요. 그 틀 속에 있으면 하지 못할 말들이 엄청나게 많죠. 동료들과의 관계를 절실하게 바꿔보고 싶은 사람들이 시도하는 게 평어로 말하기인 거죠.

이날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세 차례 가졌다. 학생들이 더 많이 참여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 김 교수는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자세한 1년 평어 실험기는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상]“어” “이게 뭐야?” 교수님과 반말하는 학생들, 평어 1년 실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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