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찾아가고, 콜 기다리는 시간···왜 ‘노동’이 아닌가요?”

조해람 기자

배달·방문점검···이동이 업무인 ‘이동노동자’

하루 45곳 방문하지만 “이동시간 보상 없다”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서서 종이에 무언가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서서 종이에 무언가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배달노동자·대리운전기사·아이돌보미 등 ‘이동노동자’들의 95%는 이동·대기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업무에 필수적인 이동·대기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동노동 및 대기시간 보상방안 마련 토론회’를 열고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비스연맹은 지난 1월 2~8일 이동노동자 12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동노동을 하는 12개 직종(배달라이더, 대리운전기사, 택배기사, 우체국택배기사, 마트배송기사, 가전제품설치수리기사, 대여가전제품방문점검원, 학습지교사, 예술강사, 방과후강사, 재가방문요양사, 아이돌보미)이 설문에 참여했다. 응답자의 62.1%는 건별로 일감을 받아 일하는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다.

이동노동자들은 1주 평균 44.2시간, 하루 평균 8.4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88.2분을 이동에 썼고, 하루 평균 45.4곳을 방문했다. 일자리의 성격을 기준으로 보면, 자신의 일자리가 ‘특고·민간영역·주된 일자리’인 경우 하루 노동시간이 9.4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이들은 하루 평균 74.2곳을 방문하며 111.2분을 이동에 썼다.

이동시간에 대한 보상체계가 존재한다는 응답은 5.6%에 그쳤다. ‘특고·민간영역·주된 일자리’인 경우엔 3.2%에 불과했다.

일감과 다음 일감 사이의 ‘대기시간’은 하루 평균 43.2분으로 나타났다. 대기시간 동안 활동 내용은 ‘다음 업무 준비’가 54.9%, ‘콜 대기’가 16.4%로 나타났다.

고객이 나타나지 않는 ‘노쇼(헛걸음)’ 경험 비율은 77.6%로 나타났다. 노쇼를 경험한 이동노동자들은 월 평균 9.4회의 노쇼를 겪었다. 일자리가 ‘특고·민간영역·주된 일자리’인 경우 노쇼 경험 비율은 90.4%, 경험 빈도는 월 평균 12.5회로 가장 많았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주최한 ‘이동노동 및 대기시간 보상방안 마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조해람 기자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주최한 ‘이동노동 및 대기시간 보상방안 마련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조해람 기자

이동노동자 74.3%는 ‘건당’으로 보수를 받았다. 이동·대기·노쇼에 보상이 없어 수입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송민정 태재대 교육콘텐츠원 연구교수는 “이동노동자들은 이동 자체가 업무에 필수적인 요소인데 보상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대기시간에도 다음 업무를 준비하거나 콜 대기 중이라 휴식시간이라 보기 어렵다”며 “이동 또는 대기시간을 노동시간의 범주에 포함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이동노동자의 이동시간에 대한 적정한 보상을 보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2018년 말 우버·리프트 등 운전기사에게 일종의 최저임금인 ‘최저표준운임’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운행거리당 요금과 운행시간당 요금을 ‘유효 운행률(58%)’로 나눈 뒤 이를 합산하는 ‘최저표준운임 공식’을 통해 운임을 결정하도록 했다. 이동·배차대기시간도 운임에 반영하는 취지다. 영국은 모든 일하는 사람의 노동시간에 업무 관련 대기·이동시간을 포함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독일·프랑스·스페인 등에서도 이동이 잦은 플랫폼·특고노동자 보호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에서 시간당 생산되는 상품의 양을 책정하는 것처럼, 서비스업에도 ‘건당 노동시간’을 반영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동노동자의 이동, 대기, 노쇼를 고려해 기본 최저임금을 높게 정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소장은 “이동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은 이동과 대기노동의 숨겨진 노동에 직간접 원인이 있다”며 “이동노동의 가치인정과 공정한 임금의 최저기준선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고,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이동·대기·노쇼 등 단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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