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후보 되니 끌어내지 않더라?···혜화역서 출마 선언한 후보

강한들 기자
유진우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가 19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유진우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가 19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출근시간대인 19일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지하철 혜화역. “역사에서 고성방가 연설 행위 등은 철도안전법에서 금지하니 특정 장애인 단체는 퇴거해주십시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의 역내 방송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퇴거 과정에서 경찰이나 공사 직원을 폭행, 협박하는 경우에는 가중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엔 경찰의 경고 방송이 확성기를 통해 나왔다. 그 사이로 휠체어를 타고 빨간색 점퍼를 입은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목청껏 외쳤다. 그는 “이곳은 장애인의 존재가 드러나고 부정당하는 곳이지만, 권력의 탄압에 맞서 권리가 울려퍼지는 가장 정치적 공간”이라며 출마선언문을 발표했다.

노동당은 이날 혜화역 동대문 방향 승강장 5-4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진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를 오는 4월10일 22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유 후보는 전장연의 출근길 선전전을 하다 철도안전법 위반·열차 운행 방해·상해 등의 혐의로 두 차례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경찰은 지난해 7월과 지난 1월 유 후보에 대해 거듭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두 차례 모두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탑승 제지가 (서울교통공사의) 정당한 업무 집행인지 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유 후보는 “매일 아침 혜화역에서는 권리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들이 끌려나가고 있다”며 “이동할 때, 교육받을 때, 일할 때 늘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살아왔지만 이제 눈치 보는 삶을 거부하며 저항의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선천적 중증뇌병변장애인인 유 후보는 원래 목사를 꿈꿨다. 신학 대학원생이던 시절 전도사가 되려고 스무번 이상 이력서를 냈지만, ‘전도사가 축구부 업무를 담당해야 해서 안 된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등 이유로 유 후보에게 전도사로 일할 기회를 준 곳은 없었다. 유 후보는 “장애인 차별이 난무한 신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목사의 꿈을 포기했고 이는 나만의 일이 아니다. 정규 교육 과정인 중학교 졸업률이 장애인은 55%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쫓겨남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차별정치, 혐오정치를 끝장내겠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날 노동당이 연 기자회견에서 앰프를 압수했다. 유 후보의 발언이 이어지는 도중 계속 퇴거를 요청했다. 유 후보의 발언을 끝으로 더 이상 기자회견을 이어나가기 어렵다고 본 노동당 측 관계자들은 역 바깥으로 나왔다. 연행된 시민은 없었다. 경찰, 선거관리위원회 등은 현장에 나와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점검했다.

노동당은 이후 혜화역 2번 출구 인근 마로니에공원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연대 발언에 나선 대한성공회 용산 나눔의집 원장 사제 자캐오 신부는 “유 후보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 중 한 명으로 공고한 벽처럼 서 있는 현실이라는 벽에 또 하나의 갈라지고 깨진 틈이 돼 우리가 만나야 할 세계와 관계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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