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대에 사과 대신 파파야·망고…비싼 건 마찬가지” 과일값 급등 달라진 장보기 풍경

배시은 기자    김송이 기자
서울 동대문구 롯데마트 청량리점 과일 매대에 22일 코코넛·파인애플·파파야 등 수입 과일이 진열돼 있다. 배시은 기자 사진 크게보기

서울 동대문구 롯데마트 청량리점 과일 매대에 22일 코코넛·파인애플·파파야 등 수입 과일이 진열돼 있다. 배시은 기자

과일값 고공행진이 계속되면서 시민들의 장보기 풍경이 변하고 있다. 가격이 비싼 국산 사과와 배가 매대와 장바구니에서 빠지는 대신 열대과일 등 외국산 과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2일 서울 동대문구의 롯데마트 청량리점 과일 매대에는 코코넛, 파인애플, 파파야 같은 수입 과일이 차곡히 쌓여 있었다. 사과나 배, 참외 같은 국산 과일 대신 오렌지, 바나나가 ‘금주의 추천 상품’, ‘알뜰 기획전’ 등의 팻말을 달고 매대 한쪽을 꽉 채웠다.

카트를 끌고 바나나 매대 앞에 멈춰선 정해일씨(61)는 “어제 오렌지랑 바나나값이 떨어질 거라는 얘기를 뉴스에서 봤는데 확실히 며칠 전보다 싸진 것 같다”며 “망고 같은 열대 과일도 저렴하니 한번 사볼까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사과, 배 등 가격이 치솟은 국산 과일 수요를 대체하기 위해 수입 과일이 대형마트 등 시장 전면에 등장했다. 정부는 과일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직수입한 오렌지와 바나나를 21일부터 대형마트에 공급하고 직수입 과일 품목도 자몽, 키위, 망고스틴 등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서울 구로구 이마트 신도림점에도 이스라엘산 자몽과 태국산 망고 등 수입 과일이 ‘추천 상품’ 매대 중앙에 자리 잡았다. 쇼핑카트를 끌던 중년 여성들은 국내산 과일이 진열된 매대를 지나 바나나, 오렌지가 진열된 매대를 살펴보고 있었다.

장바구니에 블랙사파이어 포도와 바나나를 담은 이모씨는 “외국산이 더 잘 보이는 곳에 진열돼 있으니 더 싼가 싶어서 하나씩 집었다”며 “수입 포도도 생전 안 먹어봤는데 하나 담았다”고 했다. 윤승희씨(64)는 “외국산이 저렴하다고 해도 마음 놓고 살 만큼 싸지는 않다. 과일 사는 부담이 크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 내 매대에 22일 수입 과일들이 전시돼 있다(왼쪽). 수입 포도 송이에서 떨어진 낱알을 바구니에 모아 파는 모습도 보였다. 배시은 기자 사진 크게보기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 내 매대에 22일 수입 과일들이 전시돼 있다(왼쪽). 수입 포도 송이에서 떨어진 낱알을 바구니에 모아 파는 모습도 보였다. 배시은 기자

전통시장의 과일 매대도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날 찾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의 과일 판매상들도 용과, 망고, 자몽 같은 수입 과일을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뒀다. ‘레드 용과 하나 6000원’, ‘블랙 사파이어 포도 한 근 5000원’, ‘골드 망고 4개 1만원’ 등의 가격표가 과일이 담긴 상자에 꽂혀 있었다. 청포도와 적포도를 가득 담아둔 매대 아래에는 떨어진 포도알들을 바구니에 담아 3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청량리청과물시장의 수입 과일 전문 도매상인 이정주씨(56)는 “사과나 배가 비싸니까 수입 과일이 대신 많이 나가는 것 같다”며 “예년과 비교해 망고나 오렌지를 찾는 소매상이 늘었다”고 했다.

정부의 과일값 안정 정책에 의문을 나타내는 상인도 있었다. 40년 동안 과일 장사를 해왔다는 강병찬씨(70)는 “정부가 대형마트만 지원해주니까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으로서는 불만이다”라며 “정부의 물가 안정책에 서민들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없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소비자 이이옥씨(73)는 “어제 뉴스에서 바나나가 싸질 거라는 소식을 듣고 시장에 왔는데 여기는 여전히 비싼 것 같다”며 “아직도 사과는 너무 비싸고, 수입 과일을 사 먹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고민 끝에 1만원을 주고 사과 세 개를 샀다는 이모씨는 “과일이 너무 비싸서 먹고 싶어도 조금씩만 샀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건어물 전문 판매장에 22일 김이 진열되어있다. 배시은 기자 사진 크게보기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건어물 전문 판매장에 22일 김이 진열되어있다. 배시은 기자

값이 많이 오른 건 과일만이 아니다. 건어물 매장이 모여있는 골목에서는 상인들이 부쩍 오른 김 가격에 아우성이었다. 건어물 골목에서 김, 다시마 등을 파는 A씨는 “김 장사만 38년 했지만 이렇게 김값이 뛴 건 처음”이라며 “특히 김밥용 김이 가장 큰 폭으로 올랐는데, 사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김을 주로 판매한다는 이영길씨(55)는 “김 종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작년에 비하면 한 속(100장)에 5000원 이상 비싸진 것 같다”며 “가격이 오르니 찾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9일 마른 김 한 속의 도매가격은 9420원으로 1년 전 가격인 6572원에 비해 16.5%가 올랐다. 이상기후로 수온이 올라가 김 생산량이 감소한 데다 해외 수요로 수출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A씨는 “기후위기는 계속될 텐데 장사하는 입장으로서는 김값이 앞으로 더 뛰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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