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충병에 ‘허연 서리 …위기의 소나무

주영재 기자
경북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의 오류고아라해변에 있는 한 소나무 줄기에 소나무재선충병 예방 나무주사를 놓았다는 표식이 붙어 있다. 주영재 기자

경북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의 오류고아라해변에 있는 한 소나무 줄기에 소나무재선충병 예방 나무주사를 놓았다는 표식이 붙어 있다. 주영재 기자

[주간경향] “100년 가까이 된 소나무를 죽일 순 없으니 내가 가꾸고 있어요. 주사약을 두 번째 놓는 중인데, 시기를 놓쳐 죽은 나무도 있어요. 개인이 방제해선 감당이 안 됩니다. 나이 팔십이 다 됐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주사를 맞지 않은 나무들은 2~3년 사이에 다 죽을 것 같아요.”

지난 4월 9일 경북 경주시 오류리에서 만난 임종진씨(76)는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이 지역 소나무가 소멸위기에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길가에 앉아 바람에 미역 말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람은 바로 앞 동해에서 추위를 느낄 정도로 세게 불어왔다. 마을 인가 쪽에는 벚꽃이 만발했는데, 뒤편 산엔 가지가 떨어진 채 성냥개비처럼 서 있는 회색빛 소나무가 꽤 많이 보였다.

이곳 토박이인 임씨는 “훈증 작업을 하고, 비닐로 덮어놓기도 했는데 감당이 안 되니까 눈에 보이는 도로가 쪽으로만 작업하고, 안쪽은 방치한 상태”라면서 “포항에선 남구 장기면, 경주에선 감포읍이 제일 심하고, 바닷가 쪽 소나무들은 전부 (예방) 나무주사를 놔서 그나마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자신의 집 주위도 심해 직접 약을 사 주사를 놓고 있다고 했다. 한번 놓으면 5년은 버틴다고 한다.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의 숲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들이 갈색으로 잎이 마른 채 죽어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의 숲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들이 갈색으로 잎이 마른 채 죽어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 / 주영재 기자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 / 주영재 기자

■치사율 100% 소나무재선충병, 3차 확산?

같은 마을에서 만난 김정훈씨(가명·62)는 집 옆에 있는 텃밭을 가리키며 “큰 가지들이 떨어져 농작물이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텃밭 위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소나무 줄기는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잎은 생기가 없는 갈색이었고, 가지는 뚝뚝 끊겼다. 전형적인 소나무재선충병 증세다. 나무만 죽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피해를 볼 수 있다. 김씨의 농막 위로도 고사목이 위태롭게 기울어 있었다.

“여름에 태풍이 불어 넘어지면 대번에 건물이 피해를 볼 것 같아. 저쪽 집도 태풍 부니까 막 (고사한 소나무들이) 넘어지더라고요. 위험해요. 특히 가지가 잘 떨어져요.” 이 마을 뒷산은 2014~2015년 소나무재선충병 2차 확산기 때도 방제를 위해 나무를 잔뜩 베어낸 곳이다. 그런데도 근래 소나무재선충병이 다시 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나무 잎이 마르고, 자꾸 번지더니 멀리서 보면 산이 허옇게 보일 정도가 됐어요. 저렇게 말랐다가 나중에 바람이 많이 불면 나무가 부러져 버리더라고. (경주시) 산림과에 전화하니까 방제를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워낙 (피해지역이) 방대하니 이쪽까지는 아예 예산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소나무가 좋긴 한데 재선충에 취약하다 보니까…. 동해안 쪽으로 가다 보면 이렇게 마른 소나무가 많아요.”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를 벌목한 후 이력을 알 수 있도록 QR스티커를 붙여놓았다. 주영재 기자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를 벌목한 후 이력을 알 수 있도록 QR스티커를 붙여놓았다. 주영재 기자

소나무재선충병을 일으키는 재선충은 식물 기생 선충의 일종이다.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번데기에 기생한다. 매개충이 성충으로 자란 뒤 새로 난 소나무 가지를 먹을 때 나무로 침입한다. 20일이면 암수 한 쌍이 20만 마리로 불어날 만큼 빠르게 번식한다. 소나무가 죽어도 곰팡이를 먹으면서 버티고 온도나 수분, 산소 등 생존 조건이 적합하지 않으면 휴면에 들어가 생명을 유지한다.

재선충은 소나무에 치명적이다. 재선충이나 매개충의 유충을 죽이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소나무는 감염 시 100% 죽는다. 이 예방주사도 송진이 줄어드는 12~2월 사이에 놓아야 효과가 있다. 한혜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과장은 “재선충과 함께 소나무 4대 해충으로 꼽히는 솔나방, 솔잎혹파리, 솔껍질깍지벌레는 피해가 심해졌다 약해졌다 정도이지 나무가 갑자기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며 “재선충병은 확인한 순간 이미 죽은 상태다. 외부 증상이 발현되면 내부에선 이미 스위치가 꺼져 있고, 송진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병의 발원지는 북아메리카다. 그런데 정작 북아메리카의 소나무는 면역성이 있어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잣나무와 섬잣나무, 적송(육송)과 해송(곰솔)은 속수무책이다. 같은 땅에서 자라지만 리기다소나무나 스토로브잣나무 등 북미가 자생지인 침엽수는 또 괜찮다.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로의 한 도로 사면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소나무들이 줄기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다. 주영재 기자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로의 한 도로 사면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소나무들이 줄기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다. 주영재 기자

국내 소나무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35년간 소나무류는 1500만 그루가 죽었다. 2014년 이후 피해를 줄여나가고 있었는데 2022년 증가추세로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2006~2007년과 2014~2015년에 이은 소나무재선충병 ‘3차’ 확산기라고 본다. 정규원 산림기술사(농학박사)는 아예 ‘소멸기’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정 산림기술사는 “벌써 (유충 방제를 할 수 없는) 4월 중순이라 성충의 매개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올여름, 가을을 지나면서 (경북지역의 소나무는) 다 죽을 거라고 본다”며 “이 나무들이 일시에 소멸한 후 후계림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국가 방제대를 설치했고, 중국은 10리의 나무를 다 베서 방제했는데 우린 죽은 나무만 베면서 따라만 다닌 형국”이라며 “중요한 건 확산 면적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혜림 과장은 “지자체와 함께 얼마나 방제 효율을 높여 잘 막느냐가 내년 동안 확산세를 조절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면서 “예산이 필요한 작업이고,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방제작업이 가능하다. 최대한 예산을 끌어서 하고 있는데, 방제 시기에 제대로 하려면 예산은 물론 인력, 지자체의 소명 의식 등 모든 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를 벌목한 후 줄기와 가지를 잘라 훈증 처리를 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를 벌목한 후 줄기와 가지를 잘라 훈증 처리를 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예산 제약 속 ‘선택과 집중’ 택한 지자체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매개충은 죽은 소나무에 알을 낳는다. 그래서 고사목의 줄기와 가지를 자른 뒤 약품을 붓고, 비닐로 덮어 ‘훈증 처리’를 한다. 소나무재선충이 번진 숲 여기저기에는 초록색 비닐로 덮은 훈증 더미가 무덤처럼 흩어져 있다. 줄기가 잘린 소나무 둥치는 빨간색 페인트로 감염목이라고 표시한다. 병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QR코드도 붙인다.

지난 4월 9일 해돋이로 유명한 포항 호미곶으로 가는 해안도로 주변에는 죽은 나무들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다. ‘낙석주의’라는 팻말은 돌덩이보다는 소나무 추락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 함께 간 김원호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는 “고사목이 많은 지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사태를 모니터링할 계획”이라며 “감염 비율이 높은데 경사도 있고, 민가도 인접한 경우에는 산사태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선충병에 ‘허연 서리 …위기의 소나무

소나무재선충병 예방주사 가격은 2000~5000원이라고 한다. 모든 소나무에 놓기에는 예산도, 인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문화재구역에서 꼭 보호해야 할 나무나 경관이 중요한 관광지, 도심지역 나무 위주로 예방주사를 놓는다. 지난 1월 산림청은 포항시 남구 해안권역(구룡포읍·동해면·장기면·호미곶면)을 ‘소나무재선충병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고, 포항시는 올해 1월부터 4월 중순까지 70억원을 투입해 소나무재선충병 긴급방제사업을 하고 있다.

포항시에서 재선충병 방제를 담당하는 인원은 3명이다. 이들과 함께 방제 사업체 인력이 투입되는데 방제보다 확산 속도가 더 빠르다. 김태훈 포항시 소나무재선충병방제팀장은 “전국적으로 지난해 10월 11일부터 3월 31일까지였던 방제기한을 4월 15일까지로 연장해 진행했다. 범위가 원체 넓어 차례대로 진행하고 있는데, 직접 방제와 함께 숲가꾸기 사업, 예방 나무주사, 소규모 모두베기 등을 했다. 해안지역인 호미곶 대동배리 일대는 군사지역이라 매년 드론 방제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제 예산은 매년 피해 규모와 연동돼 편성된다. 김원호 활동가는 “산림청에서 아무리 예산을 잘 짜도 기재부에서 좀 박하게 평가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방제 예산이 유지될 때 5~10년 뒤에 그 영향이나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걸 유지할 힘이 없는 듯해 안타까운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관호 산림청 산림정책과장은 “2014년 소나무재선충병이 크게 확산할 때 집중방제가 이뤄졌지만, 가시적인 효과는 5년 이후에나 나타났다”면서 “재선충병이 안정세를 보인다고 방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예산을 지속해서 투입하는 것이란 의미다.

한혜림 과장은 “소나무재선충병은 피해목을 빨리 제거해 확산의 연결고리를 잘라내야만 통제할 수 있지 다른 방법이 없다. 힘들고 무식한 방법 같지만 이것밖엔 없다”고 말했다. 저항성이 있는 개체를 조림하고 기생천적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아직 효과가 크지 않다. 한 과장은 “재선충은 말 그대로 걸리면 바로 죽어 나가기에 천적으로 관리하기에 적합한 병해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선충병에 ‘허연 서리 …위기의 소나무

■기후변화로 위기 몰린 소나무, 한반도에서 사라질까

소나무는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나무다. 산림과학원이 2022년 우리나라 대표 나무 12개 수종을 제시하고 선호하는 나무를 조사했을 때도 1위로 꼽혔다.

이런 소나무를 50년 뒤엔 남한, 1세기 후엔 한반도 전체에서 보기 힘들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기후변화로 한반도의 환경은 점차 침엽수가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수분 공급이 많이 필요해 눈이 적절하게 내려야 하는데 가을부터 가뭄이 심해지고, 최근 10년 사이에는 겨울철 눈의 양도 줄었다. 김원호 활동가는 이런 환경이 소나무에 취약성을 누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울진 쪽에선 지난 2월에 폭설 때문에 소나무가 뿌리째 뽑힌 일이 있었는데 연구하는 분들은 눈 때문에 가지가 부러질 순 있어도 뿌리가 뽑힌 상태로 뒤집힌 일은 이례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기후 스트레스라고 생각이 드는데, 재선충이 기후 스트레스와 맞물려 더 크게 확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곧 소나무재선충의 매개충이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우화할 시기가 온다. 겨울이 따뜻하면 우화 시기가 당겨진다. 한혜림 과장은 “매개충은 변온동물이라 유충에서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날개를 달고 우화하는 모든 과정이 굉장히 온도 의존적이다. 어느 정도까지 누적된 온도가 있어야 번데기가 되고, 어느 정도 온도가 누적돼야 성충이 되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예년보다 빨리 활동을 시작하고 더 빨리 소나무에 해를 입히게 된다. 매개충의 활동기간이 전반적으로 늘면서 피해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생각되는데 이런 부분이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고온 건조한 기간이 늘면 산불 위험이 커지고, 소나무재선충병은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고사목을 늘린다. 반대로 산불이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에 일조하기도 한다. 산불로 죽은 나무에 매개충이 알을 낳기 때문이다. 산림과학원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의 서식 밀도는 산불피해지 내에서 더 증가했다. 일례로 경북 상주 사벌면 산불 피해지의 경우 산불이 난 2017년에 비해 2019년 솔수염하늘소는 평균 31.3배, 북방수염하늘소는 평균 4.7배로 증가했다. 기후변화와 산불, 소나무재선충병이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돼 우리 숲을 위협하고 있다.

김원호 활동가는 “꿀벌이 실종됐다는 기사가 벌써 10년째 나오고 있는데 그 변화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아직은 체감이 잘 안 되잖아요. 이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그 영향이 적진 않겠죠. 우리 숲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약 22%)이 높으니까요. 소나무숲이 죽는다면 설치류 같은 야생동물이나 곤충이 은신처와 먹이터를 잃게 되고, 소나무에 둥지를 짖는 새들도 위태로워지겠죠. 물론 반대로 교목들이 사라지면 광합성이 쉬워져 관목이나 덤불이 많아질 수 있고, 이런 환경을 좋아하는 야생동물·곤충이 늘어날 수도 있죠. 재선충이 생태계에 가져올 충격이 어떤 양상일지 아직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에요”라고 말했다.

소나무숲이 줄어드는 건 피할 수 없는 길로 보인다. 현재 산림청은 소나무재선충병 피해지에 소나무를 심는 대신 변화된 기후에 맞게, 목재나 특용 목적 등 산림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대체 조림 수종을 시행하고 있다. 편백, 스트로브잣나무, 백합나무, 벚나무류,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손요환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기후 조건으로 볼 때 소나무가 자연 천이 현상에 따라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과학계의 공통적 예측이다. 소나무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억지로 살려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다만 자연적으로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필요성이 있는 면적은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소나무숲이 유지되지 않을 수 있고, 산불에 취약한 면도 있으니 (산불 피해지역이나 재선충병 후계림으로) 소나무와 다른 나무를 적절히 섞어서 취약성을 낮추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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