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구석에 서 있는 제 등을 누군가 '톡톡' 두드렸습니다. 돌아보니 여행용 가방을 끄는 관광객이 서 있었어요. 아시아 어느 국가로부터 온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그는, 환하게 웃으며 저를 자기 자리로 끌어다 앉혔습니다. 배가 두드러지게 나오고부터, 일반석 앞에는 서기가 민망해졌습니다.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요. 핑크색 자리가 비어 있으면 그 자리에 앉고, 차 있으면 그 주변을 서성이는 식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왔습니다. 양보를 받는 일은 손에 꼽을 만큼 드뭅니다. 일단 전철에서 누가 타고 내리는지 알아채는 승객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 스마트폰에 푹 빠져있지요. 배가 불룩 나온 채로 서 있는 저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는 '관광객'이 발견한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배려석'을 이용하며 저는 스스로 '자격'을 묻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이 과연 나일까?' 하고요. 이건 한편으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체화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임신 초기에 핑크색 좌석에 앉으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거든요. '진짜' 배려의 대상인지 눈으로 파악해 '자격'을 가려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봐서' 누군가의 형편과 고충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경우가 많겠구나, 하고요. 누가 봐도 '임산부'처럼 보이는 기간은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에서 그리 길지 않고, 체형에 따라 주변에서 거의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앉은 자의 여유'를 부리며 주위를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에 안 보이는' 힘든 상황을 감내하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건장해 보이지만 지병을 앓고 있는 젊은이도 얼마나 많은가요. 힘들 때는 누구나 약자석에 가서 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원망을 사거나 쫓겨나지 않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습니다. "타국에서 나는 서류상 장애인임을 증명할 수 없었음에도, 그들은 나를 지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변재원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저는 이 문장에서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필요한 도움을 받으려면 '장애인'임을 끊임없이 '서류'로 '증명'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자격을 묻고 따지기에 앞서, 각자의 약한 부분을 안심하고 드러내고 또 배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맘껏 환대하는 세상을 상상하기를 멈추지 말자고 제안하며 오늘의 대화를 마무리할게요. 점선면의 큐레이터로 제가 인사드리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예요. 지난 2월부터 점선면을 통해 구독자 여러분과 연결돼 큰 영광이었습니다. 점선면이 맘에 드신다면 주위에 널리 알려주시고, 새로 오는 큐레이터도 반갑게 맞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