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 1990년대 후반부터 신축 아파트가 많이 지어졌어요. 문제가 된 두 업체의 골재가 많이 공급됐어요. 1998년 이후 지어진 건물들의 약 90%는 문제의 골재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행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으니 지금도 그 골재가 쓰입니다. 강촌과 가평 지역도 춘천 경제권에 묶여 있어 비슷한 골재를 씁니다. 반대로 양구나 홍천, 평창 같은 곳은 수치가 낮아요. 춘천 지역의 화강암 지대가 문제인 것 같아요.”
💻 그건 어떻게 알 수 있죠.
“우연찮게 아이들을 데리고 국립중앙과학관에 견학 갔다가 우리나라 지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을 접했어요. 춘천 남쪽과 북쪽의 지질이 달라요. 이건 공개된 정보예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오빅데이터’ 플랫폼,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우리나라의 방사선 환경> 책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본 과학 교육을 받았다면 이러한 공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춘천 지역이 선캄브리아대에 생성된 편마암 지반을 갖고 있고, 비슷한 지질대에 있는 골재를 쓰면 비슷하게 방사능 수치가 높을 수 있겠다고요.”
그는 춘천 신동면 혈동리와 사북면 고성리 골재장의 방사능 수치가 현저히 다른 것을 확인했다. 이쯤 되면 지자체에 정밀조사와 해당 골재 사용 중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자체는 권한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인가요.
“표면상 그런데요. 사실 용기의 문제인 것 같아요. 지역의 28만 시민들에게 건강 위험성이 있으면 선제적으로 조치해야 하는데, 그런 정치인이 없어요. 아무튼 권한은 지자체가 아니라 원안위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 그래서 소송을 하게 된 건가요.
“처음엔 소송을 생각하진 못했어요. 2016년 5월 지역언론의 문의에 원자력안전기술원 사람들이 와서 측정했어요. 그때 제 측정 방법에 대해 크게 깨졌어요. 데이터 수집 방법에 문제가 있었죠.
지적을 수용해 다시 해봤어요. 여전히 500 정도로 높게 나왔어요. 장소별로 바닥 및 1m 높이에서 일정 시간 여러 번 측정했고 평균, 표준편차, 최대·최솟값을 냈어요.
220개 표본을 만들어 지도에 표시했어요. 여전히 골재가 문제라고 확신하진 못했어요. 과학은 함부로 예단하지 않거든요. 다만 건축물과 건축물 아닌 곳, 골재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수치가 확연히 달랐어요.
이 정도까지 데이터를 제시하면 전문기관이 나서줄 거라고 봤어요. 우리가 더 해봐야 또 전문성과 신뢰도를 문제 삼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 거예요.”
💻 왜 그런 걸까요.
“원안위 분들이 비윤리적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죠. 제가 전경 복무 시절 허리디스크가 악화돼 경찰병원에 입원했는데, 거기에는 반신불수가 된 환자들이 많았어요. 의료진이 저 같은 사람은 환자로 여기지 않는 거예요.
원안위 분들은 고선량에 노출돼 곧 죽을 정도는 돼야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후쿠시마 오염수를 마시겠다고 하는 분들과 비슷한 거죠. 하지만 법상 기준치를 넘어선다는 것은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고,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죠.”
💻 1차 소송의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책임 주체와 규제 대상을 가리는 겁니다. 생활방사선법은 우리 삶에 들어오는 모든 방사선과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원안위가 주무부처죠.
이 법은 기준치 이상 방사선을 내는 원료물질, 부산물, 가공제품을 규제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그 원료물질에 골재가 포함된다고 봤어요. 자연방사능이냐 인공방사능이냐를 떠나 일정 수치를 넘어가면 원료물질로 인정할 수 있고, 그건 원안위 일이라는 거였어요.”
대책위는 우라늄(U-238), 토륨(Th-232), 포타슘(K-40) 등 골재의 방사능 핵종 수치를 계산한 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 원안위의 조사 요건을 충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원안위는 조사를 거부했다.
서울행정법원의 2020년 판결문을 보면 원안위는 시민들이 원료물질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안 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또 건축물은 침대 같은 소비재가 아니기 때문에 골재를 생활방사선법상의 원료물질로 볼 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시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생활방사선법 목적이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에 있는 점을 들어 원안위에 적극적 행정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원안위가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그 후 원안위는 골재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수치가 원료물질 기준을 충족하지만 해당 골재업체를 폐쇄할 정도는 아니라고 결정했다.
💻 그러면 안심하고 살아도 된다는 뜻인가요.
“원안위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생활방사선법상 관리가 필요한 원료물질로 인정된 것부터 문제이고, 유통되면 안 되는 기준이에요. 2019년 환경부·국토교통부·원안위 공동 ‘건축자재 라돈 저감·관리 지침서’를 보면 유통 가능하지 않은 수치예요.
다만 그 기준이 생활방사선법에 들어와 있지 않아요. 법률에 관리 주체가 정해져 있지 않아 표류하는 겁니다. 그런 공백이 있으니 법원 판결 후에도 원안위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우리가 지쳐서 포기하기만 기다리겠다는 심산으로 보였어요.”
💻 그래서 2차 소송을 하게 된 거군요.
“골재를 원료물질로 인정했으니 그걸로 만든 건축물을 가공제품으로 보고 조사해야 하지 않느냐고 원안위에 요구했어요. 원안위는 이번에도 거부했어요. 건축물은 전기장판·침대 같은 제품들과 다르다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춘천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더 높은 방사선을 쬐고 있어요. 어디서 더 쬐는지도 정확히 몰라요. 학교·어린이집·공공도서관 등을 조사해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런데 그 요구조차 생활방사선법의 문턱에 걸려 넘지 못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