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만난 가족은? 독자님, 연휴가 막을 내렸습니다. 일상으로 잘 돌아오고 계신가요? 다음 주엔 한글날이 기다리고 있지만 더 놀고 싶은 아쉬움은 어쩔 수 없네요. 연휴가 길었던 만큼 잠시라도 가족을 만나고 오신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저도 부모님과 함께 조부모님을 뵙고 왔어요. 그 뒤 연휴가 끝나갈 때쯤엔 친구들을 만났는데, ‘천하제일 가족 고발대회’가 벌어졌습니다. 문신한 걸 들켜서 밥상머리에서 혼난 이야기, 엄마가 몰래 수백만원을 내고 자식을 위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한 걸 알게 된 이야기, 식구들끼리 실랑이하다 경찰이 온 이야기…올해도 콘텐츠가 풍성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명절마다 왜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는지 모르겠어요. ‘가족이란 무엇인가?’ 오늘은 가족 이야기를 다룬 기사를 소개해드립니다. 김한솔 기자가 <도박 중독자의 가족>을 그린 이하진 작가를 인터뷰했어요. 읽는 데 4분가량이 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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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를 그리는 이하진 작가의 시동생은 주식 중독으로 거듭 가족들의 돈을 잃었다. ☑️ 작가는 시동생의 중독을 확신하지만 다른 가족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 사이 작가는 지쳐간다.
☑️ 작가는 도박 중독 가족 모임에 나가고 다시 만화를 그리며 용기를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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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시동생이 도박중독임을 알았다면 2023.10.03. 김한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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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 중 한 장면. 카카오웹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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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하진은 도박 중독자의 가족이다. 시동생이 중독자다. 수에 밝았던 남편의 동생은 오래전부터 가족의 돈을 도맡아 관리했다. 어느 날 시동생이 주식으로 가족들의 돈을 날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다. 가족들은 경제 상황 악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그냥 넘겼다. 곧 더 안 좋은 소식이 들렸다. 시동생이 어머니의 아파트 판 돈까지 몽땅 한곳에 투자했다 전부 잃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중독’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도박 중독. 큰돈을 땄을 때 뇌에서 나오는 호르몬 ‘도파민’이 주는 쾌락을 좇아 무엇이든 하는 행위. 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작가가 주식 중독인 시동생으로 인해 겪은 일들을 다룬 실화 바탕 작품이다. 2012년 연재된 인기 웹툰 <카산드라> 이후 이 작가가 약 10년 만에 내놓은 만화다. 2023 부천국제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가를 지난달 경기 부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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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는 크게 20개 장으로 나뉜다. 시동생이 주식 중독임을 인지하게 된 시점부터 현재 작가의 상황까지 시간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3~4년의 일을 만화로 풀어낸 것 같아보이지만 사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있었던 일들을 압축한 것이다. 만화는 제목대로 도박 중독자 본인이 아닌 도박 중독자 ‘가족’의 시점에서 상황을 조명한다. 이 작가는 차마 내 아들이, 내 동생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댁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꿋꿋하게 도박 중독 상담소에 다니며 상황을 바로잡으려 한다. “가족들은 처음에 못 받아들였죠. 저도 처음에는 ‘이게 중독이 맞나’ 싶었어요. 가족들은 시동생과 몇십년간 같이 살았는데, 얘가 너무 착한 애였거든요. 그런데 중독자라고 하면 나쁜 사람 같잖아요. 당연히 받아들일 수가 없죠. 보통 망하는 데 10년쯤 걸려요. 그때부턴 딱 받아들인다기보다는 좌절하는 거죠. ‘혹시 중독인지도 모르겠다’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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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 중 한 장면. 열린책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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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과정에서 많은 중독자 가족이 겪는 ‘공동의존증’이라는 정신질환을 얻는다. 중독자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중독자의 행위에 따라 감정이 좌지우지되는 상태다. 처음 공동의존 증세를 보인 이는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속상한 마음을 며느리인 작가에게 매일같이 전화해 풀고, 때론 화도 냈다. 지칠대로 지친 작가에게 상담사는 ‘공동의존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중독자도 중독이라는 말 들으면 아니라고 부정하거든요. 저도 화냈어요. 제가 왜 공동의존증이냐고, 아니라고. 그런데 저는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인정한 것이 아닐까요. 솔직히 제가 정서적으로 그렇게까지 시동생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상담소에 찾아간 건, 제가 볼 때 상황이 너무 심각한데 아무도 아무것도 안 해서 화가 나서였어요. 시어머니도 힘드셨을 거예요. 중독자가 가족들 괴롭히는 게 상상을 초월한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잘 들어드리려고 했는데, 나중에 저도 너무 힘들어져서….”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할 만큼 괴로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만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가는 개인 블로그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 이야기를 짧은 만화로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너무 답답해서 만화를 그렸어요. 억울함이 폭발할 것 같았거든요. 만화를 안 그린 지 오래돼서 좀 쌓여 있던 것도 있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만화예요. 만화를 그린 덕분에 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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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진 작가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났다. 부천국제만화축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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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중독자 가족들의 모임에 나가 용기와 위로를 받고, 오랫동안 쉬었던 만화도 본격적으로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휴재했던 <카산드라>를 다시 그리기로 하면서, 블로그에 연재했던 ‘도박 중독자의 가족’도 구성을 다듬어 웹툰으로 재연재했다. 이 작가는 자조모임에서 만난 가족이 요청한 ‘도박 중독에서 회복하는 방법’도 만화로 그릴 생각이다. “도박 중독은 연구가 거의 안 됐어요. 제가 찾아보려 해도 자료가 없었어요. 만화에 담긴 건 제가 그동안 공부한 것의 요약본이에요. 도박 중독자 가족들이 보면 ‘이거 내 얘기 같아’ 하는 게 많을 텐데, 일반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요. 어떤 분은 ‘교과서 같다’고도 했어요. 사회적인 독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중독에 대해서는 다 쉬쉬하니까 사실은 상담받으러 안 가잖아요. 상담소에서는 초창기에 ‘도박 중독이다’라고 알려버리면 더 심각해지지 않는다고 말해요. 왜냐하면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까요. 만약 돈 빌려줬다 피해를 보면 그 사람을 절대 도와주지 않아요. ‘나쁜 놈’ 하면서 연을 끊죠. 그걸 사회적 지원이 끊긴다고 이야기해요.”
그는 지난해 2월 1인 회사인 ‘호다(HODA)’를 설립했다. 호다에서 다른 작가들과 협업도 하면서, ‘여성으로서 생각하는 것들’을 만화로 그리고 싶다. “지금 ‘한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당시 여성들이 많이 썼기 때문이잖아요? 한글로 자기 삶을 편지로도 쓰고 작품으로도 썼죠. 그땐 여성들이나 사용하는 글자라고 천대받았지만요. 지금 웹툰 작가 중에서도 여성이 훨씬 많거든요. 자기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들이 같이 모여서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그게 만화가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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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박 중독자의 가족> 표지. 열린책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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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의 가족>은 도박 중독을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도박 중독자와 가족으로 연루되는 고통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도박 중독자 시동생이 아닌 ‘나’입니다. 시어머니는 시동생이 도박 중독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반응합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남들이 뭐라 생각하겠나! 가족이니까 도와야지!” 시동생의 빚을 갚아주거나 시동생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합니다. 도박하라고 돈을 쥐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죠.
형수이자 며느리인 ‘나’는 시어머니에게 전화로 자주 질책과 꾸중을 듣습니다. 가족이라면 허물을 감춰주고 도움을 줘야 하는데, ‘나’는 시동생을 중독자라고 하며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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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 중 한 장면. 열린책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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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에 시달리던 ‘나’는 자연히 시동생이 도박 중독을 해결하지 못하면, 그래서 시어머니의 전화가 계속되면 자신은 쭉 불행하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아들이 ‘멀쩡해’ 지지 않으면 자신도 불행할 거라 여기는 시어머니와 마찬가지로요. ‘공동의존증’입니다. 상담사는 ‘나’에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여사님은 행복하게 사실 수 없을까요?”라고 묻고 “자신의 삶에 집중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나’는 원래 그리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타인을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 결국 시동생 스스로 치료를 결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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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도박 중독으로 가족의 돈을 모두 잃지는 않더라도, 모든 가정은 각자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명절은 이 문제들을 새삼 확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 김소연 작가의 책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어요.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 되어 있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 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온전하고 이상적인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행복을 향한다기보다는 불행을 불사하는 쪽으로 기울곤 한다.”
친구와 달리 가족은 서로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가장 끈끈한 관계를 요구하고 요구받습니다. 어떤 불행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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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도박 중독자의 가족> 중 한 장면. 카카오웹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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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향’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책에서 ‘나’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여보.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해. 사실 이런 일 집집마다 많아.” 앞서 말씀드린, ‘천하제일 가족 고발대회’에 참여한 친구도 가족을 보면서 여행스케치의 노랫말이 떠올랐다고 했어요.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가족에 문제가 있는 건 내 잘못이 아닙니다. 희생과 헌신으로 고칠 수 없는 문제도 많습니다. 오히려 서로 애정과 이해를 강요하다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연히 만난 사이인만큼, 가족끼리 좀 더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요. 명절이 지나간 김에 가족을 지키는 방법뿐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도 떠올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님도 혹시 나만의 좋은 방법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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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와 조울증을 가진 이사고 작가의 인터뷰 두 번째 영상입니다. 삶이 일렁이는 가운데서도 그는 "모든 과정의 의미는 제가 아직 전복되지 않았음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좋아하면서도 미워하는 정신질환과 함께 사는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5년 전 추석을 강타했던 김영민 교수의 칼럼입니다. 김 교수는 명절에 친척들이당신의 근황에 과도한 관심을 가진다면, 대답하지 말고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돌려주라고 말합니다. '당숙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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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시니 정말 좋네요. 그동안 다뤄왔던 주제들을 보니 지난 일 년 숨 가쁘게 달려왔던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좋은 레터에 항상 감사드리고 점선면 기자들도 편안하고 행복한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익명의 독자님)" 📝 "지난 점선면 < 추석특집 점선면 명작극장>에 남겨주신 이야기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독자님이 응원을 남겨주셨어요. 추석에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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