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은 ‘지옥’인가? : 재택근무에 대한 해찰 Work from home, Out of office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99), 2023.9.20,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Arch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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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공간, 사무실, 효율성, 재택근무, 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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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머리말 2.사무실로부터의 해방? : <큐브> 중산층과 사무실의 역사 3.‘자유로운 노동자’가 감당하는 비용들 : <재택> 4.재택 vs 사무실 문제가 아니다 :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 5.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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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지난 13일 일론 머스크의 평전이 국내에도 출간이 되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링크). 저도 잠깐 살펴봤습니다만, 평전에서도 그의 ‘직원들을 쥐어짜는’ 스타일이 잘 드러났습니다. 근래 이런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터뷰가 있었는데요. 머스크는 지난 5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morally wrong)”이라며 “테슬라, 스페이스X에서 일하고 싶다면 반드시 사무실로 출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링크) 이에 많은 사람들은 화가 나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로나 기간 재택근무의 효용성을 느꼈고, “사무실 출근하라고? 차라리 그만 둘래!”라며 진짜로 퇴사해버린 사람까지 있는데요(링크). 저 역시 머스크의 발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시 저는 화가 나기보다는 조금 복잡한 생각이 머릿 속에 떠돌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사무실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고민일까요. “과연 사무실은 아주 나쁘니까, 몽땅 사라져버리면 되는 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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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지난 5월 CNBC 인터뷰.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의 "라라랜드에 사는 랩탑 클래스"는 재택근무를 해선 안되며 이는 단순히 생산성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라고 말했습니다.(왼쪽·인터뷰) 코로나를 계기로 '사무 공간'은 사무실을 넘어 집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재택근무'는 과연 모두에게 이상적인 경험이었을까요? ‘내돈내산’ 데스크탑 등을 갖춰두고 집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근무자. 옆에는 밥을 먹고 난 그릇 등이 놓여있습니다. 물론 이런 독립 공간을 마련하기조차 어려운 이들도 많았죠. CNBC, Fl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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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준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집’이라든지 ‘직장’은 결코 모두에게 같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재택근무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회사의 복지로 ‘워케이션*’을 할 수 있었거나 재택을 하는 경우에도 비품비, 생활비를 지원받은 반면, 계약직, 지구 반대편의 외주 노동자들은 윈도우 XP가 깔린 고물 데스크탑으로 우는 아이를 달래며 밥상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전기요금, 캠 구입, 청소 등의 인프라 마련, 노동은 오롯이 일하는 사람의 몫이었죠. *워케이션(work+vacation) = 일과 휴가의 합성어. 휴가지에서 원격근무를 하며, 휴가 즐기기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뜻합니다. * 제가 오늘 이 레터에서 사무실 혹은 재택근무가 답이다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무실’이라는 ‘지옥’(?)같은 공간에 대해 해찰해보면서 - 과연 그것을 무작정 밀어내고, 재택근무가 답이라고 하는 것만이 방법인지, ‘재택근무 vs 사무실’ 논쟁이 감추고 있는 진짜 문제는 무엇인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말할 때 진짜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뭔지에 대해 궁리해보려고 합니다.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니킬 서발) <인재를 만드는 공간의 비밀>(김아름 외)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앤 헬렌 피터슨 외) 등을 지팡이 삼아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대해 해찰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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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무실로부터의 해방? : <큐브> 중산층과 사무실의 역사】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그간 재택근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일화를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지난해 한 유명 유튜버(슈카월드)가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 종료 및 사무실 복귀 추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요.(영상) 그는 영상 중간에 질문했죠. “여러분은 재택 근무하고 싶은가요? 아니면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놀랍게도 당시 실시간 시청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아마도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사무실 가고 싶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는 ‘참 이상한 사람들인데...’라며 어리둥절한 채로 한참 있다가 방송을 이어갔습니다.
저 역시 이런 시청자들의 반응에 조금 놀랐지만 내심 공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일 덕후’라서가 아니라, 사무실이 주는 편리함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큼직한 모니터나 개인 책상 없이 보따리상처럼 책과 일거리를 싸들고서, 비좁고 시끄러운 집을 피해 내 돈 내고 ‘일 잘되는’ 스터디카페 등을 전전하며 24시 무인 프린트가게를 오가는 일상 - 그러면서도 이전과 똑같은 양의 업무를 해야 하는 삶을 지속하다보면 때론 엉망인 사무실마저 그리워지기도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사무실은 노동자들에게 진짜로 어떤 의미였을까?” 미국 작가 니킬 서발이 쓴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이하 <큐브>)는 이런 궁금증에 대해 흥미로운 해찰거리를 주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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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대기업들이 '사무실 복귀' 방침을 속속 발표하고 있을 지난해 무렵 유튜버 '슈카'가 재택근무에 대해 다룬 영상. 그는 재택을 'R', 사무실 근로를 'O'라고 했을 때 시청자들에게 선호하는 것을 물어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O'를 외쳐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댓글창에선 '에어컨이 시원하다' '사무실 나가는 게 속편하다' 등의 이유가 나왔습니다.(왼쪽) 니킬 서발의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책 표지. /슈카월드 유튜브, 이마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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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는 19세기 이후 ‘사무실’과 ‘화이트칼라’의 역사를 다룬 책인데요. 저자에 따르면 ‘화이트칼라’는 ‘사무실’과 역사적으로 생사(?)를 함께 해왔습니다. 누군가가 “화이트칼라가 대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답해도 될 정도로요.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제가 주목한 메시지는 아래의 두 마디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습니다. 1)사무실의 본질은 ‘유토피아’다! (사무실은 중산층-화이트칼라 ‘환상’을 유지하는 핵심 공간이었으며, 실제로 안락한 직원 복지를 담당해왔다) 2)‘재택근무 붐’은 양극화의 결과에 가깝다 (‘사무실 몰락’은 ‘자연스러운 기술 변화에 따른 현상’이 아닌, ‘경제적 양극화’의 결과다) * 우선 첫 번째 ‘사무실의 본질은 유토피아다!’라는 말은 조금 알쏭달쏭하실 수 있는데요. 왜냐면 보통 ‘사무실’ 풍경이라고 하면 왠지 맥없이 앉아 있는 ‘감옥 속 좀비’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큐브>에서 저자는 사무실이 처음 생겨날 때부터 어떻게 화이트칼라의 ‘환상’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해왔는지에도 돋보기를 댑니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탄생한 ‘화이트칼라’의 핵심 특징은 “똑같이 월급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노동자’보다는 ‘사장’에 가깝다고 찰떡같이 믿는 사람들”이었죠. 누구나 탐낼만한 ‘멋진 사무실’은 그런 믿음을 뒷받침했습니다. 저자는 ‘19세기 사무실’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하는데요. 이런 ‘환상’은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며 사무직 노동이 ‘허드렛일’에 가까워 지고, 불황으로 인해 사실상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과 별 차이가 없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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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이 공장과 함께 있는 경우에도 공장 작업장과 분리되어 있어서 경영자와 사무원은 공장 노동자와는 다른 입구로 드나들었다(그리고 창고 분위기인 공장 입구에 비해 사무 공간의 입구는 문이 가로대와 기둥으로 더 예쁘게 지어져 있었다). 사무 건물은 자체적인 건축 용어도 갖게 되었다. 이를테면, 도리아식 벽기둥과 소매 영업용 대형 진열창이 있는 ‘그리스 재현 양식’이 유행했는데, 그 안에서 이뤄지는 노동이 고귀하고 기품있으며 중요한 일이라는 표시였다[...]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를 한다는 개념은 사무직 세계를 그 밖의 노동 세계와 구별 짓는 특징 중 하나였다.” “자신이 공장노동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무실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건축가들은 사무실 자체는 칙칙하게 만든다 해도 부대시설을 많이 만들어서 직원들이 거대한 중산층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했다[…]커다란 창문과 자연 채광은 사무직 노동을 ‘문화적인’ 의미에서 한층 높은 위치에 두는 데에 필수적이었다.” -니킬 서발,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이하 동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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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사무실의 훌륭함은 ‘겉모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직원들의 사기, 일할 의욕을 높이기 위해선 ‘진짜 복지’도 중요했으니까요. 20세기 초중반 대기업들은 다양한 복지들을 사내로 끌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에게 값비싼 부페 식사를 공짜로 제공하거나 어린이집, 휴게실, 미용실 등을 마련하기 시작한 거죠. 오늘날 대기업 복지 모델의 시초라고 할만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비누 회사인 ‘라킨컴퍼니’ 건물(1906~1950)은 사무실 공간과 복지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례였는데요. 내부엔 직원용 심리 상담 서비스도 두고 있었고, 휴게실엔 값비싼 자동 피아노도 놓여있었습니다. 당시로선 드물었던 통채광에 미국 최초의 온도조절 건물이었다고 하네요. 에어컨 덕분에 한여름에도 스웨터를 입고 일하는 사무직원들의 사치스러운 풍경이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경영자들은 사무 직원들이 오랫동안 사무실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사무(생활) 복지에도 세심하게 주목했습니다. 오래 일해도 눈이 아프지 않은 고급 조명과 서류에 따른 두께별 연필심 제공, 충분한 식수대와 휴식실, 오래 앉아있어도 편안한 인체공학적 의자 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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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통창’구조를 채용한 라킨컴퍼니의 홀 모습. 공조시스템 및 섬세한 온도조절 시스템, 형광등 도입 등의 기술 발전은 모두 사무실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왼쪽) 1960년대, 조지 넬슨과 로버트 프롭스트가 협업해 만든 사용자 맞춤형 '액션오피스'. 접이식 책상, 일어서서 일할 수 있는 역동적인 구조 등 오늘날 봐도 최첨단의 느낌인데요. 1970~80년대 비용 절감 차원에서 '파티션' 정도만 남아 '벌집형 사무실(큐비클)'의 원형이 되고 말았다고 하네요. Buffalo History Museum, 조지 넬슨 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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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종류의 ‘복지’들은 분명 ‘회사의 이익(생산성)’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며 콧방귀를 낄 수도 있습니다만, 여하튼간에 20세기의 회사들은 분명히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다른 일에 신경쓰지 않도록, 편한 공간, 보육, 식사 등 필요한 자원들을 충분히 쾌적하게 제공해서 사무실에 오래 머물러도 불편함이 없도록 했던 것입니다. 저는 조금 새삼스럽지만 이 부분에 주목해 보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이는 오늘날 똑같은 업무량을 강제당하면서도 - 재택근무, 외주인력은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본인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1960년대에 ‘액션 오피스’를 기획한 전설적인 디자이너 로버트 프롭스트는 사무실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감각적이면서도 편안한 기능성 디자인을 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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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육성할 것이 아니라면 사무실은 왜 존재하는가? 프롭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은 추상을 만들고 교환하는 공간이다. 그것의 기능은 정신 지향적인 삶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가구들은 내 집처럼 편안하면서 동시에 매우 모던하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미래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책상 상판은 알루미늄 캔틸레버 다리가 받치고 있다[...]“이러한 디자인들을 보면 사무 노동자들이 부적절하고 비생산적이고 불편한 환경을 왜 그렇게 오래 참았는지 의아하게 된다”고 <산업 디자인>지는 언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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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이런 지원들은 완벽하게 노동자들을 ‘행복’하게 해주진 못했지만(일터가 아무리 좋아봤자 놀이방이 될 순 없습니다), 분명히 이 당시의 회사들은 노동자들이 요구받는 효율성을 성취해내기 위해 필요한 자원, 각종 복지를 제공하며 화이트칼라 산업을 지탱해왔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사무실이었고요. * 한편 이런 ‘화이트칼라 사무실’은 1980년대 경제 침체를 겪으며 급격히 ‘양극화’가 진행됩니다. 불황을 맞아 회사가 사무 공간, 인건비를 줄이면서, 전반적으로 일반 직원들의 사무실은 원래의 ‘복지 공간’보다는 ‘감옥’같은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딱딱하고 비참한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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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칸막이 세개로 된 공간이 자율과 자유가 보장된, 해방된 사무직 노동자를 의미했다. 그러나 결국 큐비클은 현재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사무직 노동자가 헝겊 씌운 허술한 칸막이 안에서 반쯤은 밖에서 보이는 채로 앉아서 잘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공간[...]설상가상으로 큐비클 크기도 점점 작아졌다[…]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 사이 큐비클의 크기는 25~50퍼센트가 줄었다[…]애플 직원들은 큐비클에서 일에 집중할 수 없어서 집에서 일했다. 그랬더니 애플은 큐비클을 없앴다. 어느 회사는 큐비클을 없애려고 했더니 직원들이 그나마의 개인 공간도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 했다[…]회사가 큐비클을 일부러 작고 비참하게 만들어서 직원들이 회사로 일하러 오지 않게 해, 사무 공간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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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0년대~2000년대 ‘닷컴 버블’이 찾아오고, 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다시 노동자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사무실에 각별히 신경을 쓰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구글 플렉스’같은 궁궐같은 사무실들은 이때부터 본격화되었죠. 동시에 이와 반대로 아예 ‘사무실을 빼앗기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주요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외주 업체, 프리랜서 등으로 대체된 것이죠. 이들은 같은 업무를 맡으면서도 사무실 등의 복지나 안정적인 임금 등을 전혀 보장받을 수 없었고, 대부분의 사무실 및 일의 도구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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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이 노동자에게 갖는 영향력은 클라우드 환경이 등장하기 전에도 이미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임시직, 프리랜서, 계약직 노동은 ‘날씬하고 비정하던’ 1980년대에 미국 기업의 평생 고용이 서서히 깨진 것과 나란히 발생했다[…]재택 근무라는 말이 익숙해지기 한참 전부터도 이러한 노동력의 변화는 ‘일’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균열을 일으켰다[…]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유목민적인 사무실, 비영역 사무실, 유연 노동 정책 등은 기술 변화만큼이나 이러한 노동의 역사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리처드 그린월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랜서는 우리 경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입니다.”[…]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밀려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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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을 단순히 ‘사무실로부터의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 이상의 내용을 비유를 들어 간단히 요약해봅니다. 만약 우리가 ‘나무꾼’이라고 한다면 본질적으로 사무실은 노동자를 억지로 괴롭히려는 ‘족쇄’가 아닌 ‘도끼’ 쪽에 가까웠습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여튼 우리를 잔뜩 괴롭히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나무를 많이 베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20세기 사무실의 역사를 살펴볼 때 사무실의 궁극적인 목적은 (환상적으로든, 실질적인 복지 차원에서든) 노동자를 다독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부족할지언정요. 하지만 이때 단순히 회사가 제공해 주었던 ‘도끼’를 던지고 각자 도끼를 자기 돈으로 마련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상적인 노동’이 될 수 있을까요? 사무실의 역사 중 본질적인 부분에 주목해서 보자면 ‘재택근무 만세!’라는 구호에 대해서는 알쏭달쏭해지는 것입니다. ✏️ “불안정한 고용이 증가하면서[…]노동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안정성의 초창기 시절로 말이다. 사무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 적어도 20세기 초에 등장한 것 같은 형태의 사무실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니킬 서발,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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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대목에서 이전에 다루었던 ‘콘텐츠 모더레이터’ 회차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실제 에서 저자는 콘텐츠 모더레이터를 고용 형태에 따라 4단계(본사계약직/외주업체/제3세계아웃소싱/긱노동자)로 나누어 각각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했었는데, 이런 '적나라한 복지-사무실 차별'이 드러납니다. 그나마 이중 가장 '나은 처우'를 받는 이들은 '본사계약직'이었는데, 이들은 직접 실리콘밸리 IT기업의 '천국같은' 사무실로 출근했죠. 하지만 거기서도 이들은 '공짜 초밥' 등 정규직에게 제공되는 복지는 누리지 못해서 시무룩했습니다. 당시 이 책을 읽을 땐 미처 주목해보지 못했는데, 이들 4단계 노동자들 가운데 그나마 '사무실'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본사 계약직과 (열악한 사무실의) 제3세계 아웃소싱 업체 뿐이었습니다. 외주업체들 가운데선 직원이 300명이라도 사무실조차 없는 곳들도 많죠. 이들은 당연히 전기요금 등 모든 '인프라' 비용을 자기가 부담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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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유로운 노동자’가 감당하는 비용들 : <재택>】 “출근 십초!” -이슬아 프리랜서이시거나 재택근무를 해보신 경험이 있다면, ‘재택 근무’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일본 비즈니즈 전문가 고야마 류스케가 쓴 작은 책 <재택Hacks>의 핵심은 “주거공간을 사무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 책에는 재택근무 여건 조성을 위한 꽤나 본격적인 89가지 조언들이 담겨있는데요. 예를 들면 ‘뇌의 인지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환경을 만든다’ ‘공간에 약간의 자극을 더한다’ ‘대형 모니터로 업무 효율을 높인다’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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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 책 표지(부제:새로운 시대 새로운 일을 위한 89가지 재택 기술) (왼쪽) 홈오피스 인테리어 사진 /안그라픽스, iSto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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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언 가운데는 간단한 조정만으로도 실현 가능한 것들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고가의 집기(발뮤다 전등, 대형 모니터, 편한 의자...)를 구매하거나 혹은 버거운 준비물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조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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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란다를 카페로 만든다” =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일하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럴 때 베란다에서 여유를 즐기면 기분 전환에 큰 도움이 된다… -고야마 류스케, <재택>(이하 동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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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해도 행복해졌습니다만, 문제는 가장 중요한 준비물인 ‘베란다’가 제겐 없습니다. 김밥을 싸려고 봤더니 김도 밥도 없는 수준입니다. 이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조언을 딱 하나만 더 꼽아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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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화탄소 농도를 1,000ppm 이하로 낮춘다” = 사무실은 사람들이 출입하기도 하고 낡은 건물이 아닌 한 어느 정도는 공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문제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문제는 집, 그것도 아파트나 빌라다. 최근 건물들은 공기나 가스 등 기체가 통하지 않는 기밀성이 높아 4인 가족이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을 넘는 경우가 많다[…]나는 책상 한쪽에 공기질측정기를 설치해두고 꾸준히 농도를 측정한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빨간 불이 들어온다[…]언제든 이산화탄소 농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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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언을 읽다보면 ‘이렇게까지 해야해!?’라는 외침이 터져나오는데요. 과거 사무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책을 읽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실은 사무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공조 시스템 및 집중을 위한 최적의 온도조절 장치, 보안, 재생산노동(청소 및 건물관리), 채광, 집기 등이 애초에 철저히 갖추어져있는 것입니다. 주거 공간에서도 ‘꿩 대신 닭’이라도 최대한 좋은 걸 추구하고 자신이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려는 시도 자체를 흰 눈으로 보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애초에 이런 ‘최적화 과정’ 및 재생산 노동을 왜 노동자가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조금 의문입니다. 물론 ‘노력’을 하고 싶어도 하기 그럴 여건이 안되는 경우도 고려해야겠죠.
* 한편 <재택>을 읽을 때 반드시 붙여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책은 <인재를 만드는 공간의 비밀>입니다. 왜냐면 <재택>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는(이산화탄소 조절과 내돈내산으로 마련한 사무 공간 조성마저도) 1인 슈퍼 노동자’라는 환상을 보여주고 있다면, <인재를 만드는 공간의 비밀>은 ‘여전히 상위 회사들은 노동자들에게 쾌적한 사무공간 등 복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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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만드는 공간의 비밀> 책 표지. 아래에 쓰여있는 문구 (왼쪽) 넥슨의 사내 어린이집 '도토리 소풍 별 어린이집'에서 직원의 아이들이 맞춤형 코딩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 넥서스비즈, 넥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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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만드는 공간의 비밀>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포스트 코로나에도 여전히 최고의 사무실(입지, 시설, 복지...)이 필수이며, 직원의 행복을 위한 복지 공간은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입니다. 실제로 이 책에는 배민, 엔씨소프트 등 유수의 국내 기업들이 코로나 이후(2021~)에 “이젠 최첨단의 시대니까 모두 재택근무를 하자!”라고 하는 대신 정반대로 얼마나 ‘최고의 사무실 복지’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생산성을 위해서는 직원들의 ‘워라밸’과 ‘직업만족도’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각 직장들은 자신들의 취지와 지향점에 맞는 “공간”을 만듭니다. *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통상 서비스, 혜택 차원에서 이야기되는 ‘복지’를 ‘공간’의 측면에 집중해 풀어놓았다는 점인데요. 저자들에 따르면 나쁜 기업의 특징은 ‘사무실 복지’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무실-절망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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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한테 돌아가면서 화장실 청소를 시켜요.” “회사가 이전을 하고 나서 청소업체 불러서 청소하는 비용이 비싸다고 부르지 않기 시작했어요” “근무실이 햇볕도 안들고 웃풍도 심한데 영하의 날씨에 난방기가 고장나서 반나절동안 추운데서 일하는데 짜증나서 눈물이 났어요...” -김아름 외, <인재를 만드는 공간의 비밀>(이하 동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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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 최적화된 공간은 결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실에선 대체로 화장실, 공간 청소를 미화노동자들이 대신 해주고, 비품이 떨어지거나 형광등이 나가면 대신 교체해주는 이들이 있어서 눈치 못챌 뿐이죠. 이 때문에 적절한 커뮤니티 공간, 사무공간 등을 많은 연구와 의견 수용, 자금 투자를 통해 과학적으로 조성하려는 시도가 이어집니다. (<재택>에선 ‘1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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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래프톤 역삼 오피스) ‘구성원의 편의와 몰입을 도울 수 있는 환경’을 원칙으로, 층 구역별 공간 설계 및 가구 선정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보통 오피스 입주시에는 기존에 설치 된 공조 장치들을 크게 변경하지 않고 나머지 공간을 설계하지만, 이렇게 되면 영역별 공기의 순환과 조화가 실제 공간의 쓰임에 따라 작동되지 않아 불편함이 생긴다. 역삼 오피스는 충분한 공조와 적절한 온도 조절을 위해, 개인 업무 공간 및 회의실에서 개별 냉방기 컨트롤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장시간 모니터를 사용하는 구성원을 위해 눈의 피로감을 줄일 수 있도록 천장 조명은 태양광과 색 온도가 비슷한 4000K의 맞춤 조명을 제작했다[…]회의실에는 차음 성능이 좋은 이중 유리를 적용해 흡음도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 “성장하는 기업들은 사옥을 지을 때부터 구내식당을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업무를 하는 공간에서 즐거움을 찾는 차원으로 인식을 하게 됐다는 분석이다[…]엔씨소프트의 구내 식당은 백화점 푸드코트를 방불케 했다[…]펄어비스 구내식당의 경우 단가를 높게 책정해 고품질의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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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복지 차원에서도 직원들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직장어린이집 등이 잘 갖춰진 곳에선 인재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일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되는 부분은, 단지 ‘사무실’이라고 다 같은 사무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최고의 사무실을 만들려는 노력과 지원이 이루어질 때 근무하고 싶은 회사가 됩니다. * 이 두 권의 책을 덮으면서는,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이런 ‘사무실’로부터의 해방이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로 ‘사무실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하면 우리는 워케이션이나 디지털 노마드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지만, 실은 더 현실에 가까운 건 밥상 위에 낡은 컴퓨터를 놓고 스스로 먹은 밥을 설거지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얼기설기’ 스스로 전기요금을 내가며 일을 하는 노동 쪽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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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재택 vs 사무실 문제가 아니다 :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 이상, 사무실 혹은 집이라는 ‘일하는 공간’과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에 대해 해찰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통상 재택, 사무실을 ‘재택 근무 vs 사무실 근무’의 구도로 바라보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터나 공간 등에 대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 때 실은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재택이냐 사무실이냐’보다도 “회사로부터 안정적인 공간과 복지를 보장받으면서(사무실에서든 재택이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노동을 해가는 조건”이 아닐까요? * 마지막으로 간단히 살펴볼 책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는 얼핏 제목을 보면, “여튼 재택근무가 짱!!”이라고 말하는 책 같습니다만. 실은 이 책은 그보다도 “인간 중심의, 지속가능한 일터의 조건”을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사무실이든 재택이든 중요한 건 노동자가 안심하고, 인간적으로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거죠. 저자는 우리가 ‘가족이 없는 것처럼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하던’ 시절로 돌아갈 순 없다고 말합니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훨씬 전에 미국인들은 마치 가족이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상적인 노동자는 여전히 가급적 가족에 대한 의무가 없는 노동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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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창업자 샘 뱅크먼Sam Bankman Fried이 ‘잠을 자러 집에 갔다’며 유명해졌던 사진.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마치 돌볼 가족이 없는 것처럼 회사에 모든 것을 헌신하길 원합니다(왼쪽) 90년대 개방형 사무실이라는 '혁신'을 보여주었던 광고회사 치아트데이의 사무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자기 자리가 없어서 짐을 나르기 위해 장난감 손수레를 가지고 다니기도 하는 등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 샘 뱅크먼 트위터, Domus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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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재택’ 이든 ‘사무실 공간’ 이든 노동자에게 맞도록 조성되어, 유연하게 그때그때 일터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말했듯, 핵심은 이런 것들은 결코 ‘거저’ 이뤄지지 않는다는 거죠. ‘좋은 사무실’과 ‘좋은 재택’에 대해서 궁리해본, 인상깊게 본 두 대목을 짧게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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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치아트데이 사무실은 창의적 비전을 실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하지만 직원들은 정처 없이 떠돌면서도 끊임없이 감시당하는 느낌을 동시에 느꼈다고 기억했다. 자기 자리라고 할 만한 공간을 간절히 원한 나머지, 많은 직원들이 회의실에 자기 자리를 차렸다[…]자기 자리라고 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차 트렁크를 서류 캐비닛처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그 방법은 예술이나 놀이동산의 탈것, 호화로운 그래픽이 아니었다. 그냥 항상 그곳에 있고 싶도록 하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재택근무가 기술이라고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우지도 않고, 문제로 다루지도 않죠. 그냥 이런겁니다. ‘집에서 노트북으로 접속하세요’ 그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은데 말입니다[...]원격근무를 재설계하려는 많은 노력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이 과정에서 빠르거나 효율적인 것은 거의 없다” -앤 헬렌 피터슨,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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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무실’에 대한 기억이 나쁜 이유는, 실은 사무실 그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 지금까지의 사무실이 대체로 이용자(당사자)의 시점에서 디자인되기보다는, 감시를 수월하게 하고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나쁘게’ 디자인이 됐기 때문이었죠. 치아트데이 사무실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보기엔 멋져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 나쁜 사무실’이었습니다. 재택근무 역시 결코 단순히 ‘노트북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으로 될리가 없고, 기업의 인프라 마련 및 관리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이런 여건 뿐 아니라, 일터에서 ‘워라밸’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꼭 필요할테고요. 이처럼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노동의 형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노력’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재택이냐 사무실이냐’라는 말은 허망해지고 말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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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맺음말】 오늘 레터를 쓰면서 그간 ‘재택 vs 사무실’론 안에 파묻혀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재택이냐 사무실이냐가 아니라, 좋은 재택 근무-좋은 사무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진짜로 우리가 원하는 노동,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아닐까요? 사람들은 적절한 복지를 제공받고, 더 쾌적한 환경에서 유연하게 일을 하고 싶어하며, 과로를 하는 대신 넉넉한 여가를 갖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합니다. 이런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각별한 고민과 노력이 없다면, 훌륭한 사무실에서도 ‘엄청난 과로’에 시달리고 재택 근무를 하면서도 취약한 일자리와 나쁜 노동 환경에 시달릴 수 있는 것이죠. 또한 잊어선 안되는 지점도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에 따르면 재택근무가 ‘가능’이라도 한 노동자는 전체의 '42%' 뿐입니다. 만약 이중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전혀 연봉 삭감이나 직업 안정성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되는, 모든 복지와 인프라를 집에서도 충분히 제공받으며 완전히 자유롭게 '디지털 노마드'로 일할 수 있는 - 그리고 훌륭한 사무실의 복지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누릴 수 있는 노동자의 숫자만 추린다면 그 중에서도 1/10도 되지 않겠지만요. * ‘이분법적인 선택지’라는 환상을 넘어, 우리가 ‘일’에 대하여 진짜로 원하고, 또 추구해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에 더 좋은 것은 무엇일지,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에 대해 계속 적극적으로 고민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42%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요. ✏️ “자칫 잘못하면 유연근무는 계급 갈등을 악화시키고, 자기 집에서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필수 노동자들을 더 갈라놓게 될 것이다[…]하지만 유연근무의 미래를 신중하게 생각한다면, 훌륭한 일을 해낼 수도 있다[…]업무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실제로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다.” -앤 헬렌 피터슨 외 ,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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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니킬 서발, 김승진 옮김,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이마, 2015. -'화이트칼라'와 '사무실'의 역사를 다룬 독특한 책입니다. 기존에 '화이트칼라' 계급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었던 라이트 밀스의 책(<화이트칼라>)을 기반으로 하면서, 주로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이 책은 사무실 혹은 화이트칼라, 중산층에 대한 내용을 다룰 때 다른 책에서도 종종 인용되는 책입니다. 굉장히 흥미롭게 본 책이고, 실은 이 책을 언젠가 ‘중산층’에 대한 회차를 다룰 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재택근무에 대한 해찰을 계기로 이번 회차에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사무실의 명암 양편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고, '불평등'에 대한 내용은 결말 부분에 살짝 나오지만 오늘 레터에서는 제가 주목한 부분(사무실의 긍정적(?)인 부분 등)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읽어보았습니다. 앤 헬렌 피터슨 외, 이승연 옮김,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 반비, 2023. -이 책의 영어 원제는 ‘사무실 밖에서Out of Office’입니다. 저자들은 이 책의 초반에 ‘기만적인 유연성’(저임금으로 위태로운 직업을 영위할 자유)을 경계하며, ‘진정한 유연성’(노동자 중심의 지속가능한 노동 형태)을 추구해야한다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재택근무를 둘러싼 이야기가 ‘사무실 출근이냐 혹은 재택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출근이냐 그리고 어떤 재택이냐라는 지점을 짚은 것입니다. 가볍게 관련 이슈를 훑어보기 좋은 책입니다. 김아름 외, 『인재를 만드는 공간의 비밀』, 넥서스BIZ, 2023. -배민, 넥슨, 크래프톤 등 ‘잘나가는 혁신 기업’들이 코로나 이후 어떻게 사옥이라는 공간을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책입니다. 처음엔 국내 최근 사례 참고용으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통상 ‘재택 vs 사무실’이라는 테마는 아날로그 vs 디지털(오프라인vs온라인 가치)의 차원에서 다뤄지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인재를 붙잡고 시너지를 내기 위한 '복지'의 차원에서 사무실 공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들의 말처럼 앞으로도 이런 공간의 가치-복지로서의-는 이후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이런 공간은 일부 극소수 노동자만의 전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어느정도 그렇지만요. 고야마 류스케, 이정환 옮김, 『재택Hacks』, 안그라픽스, 2020. -이 책의 부제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일을 위한 89가지 재택 기술'입니다. 원래라면 그냥 재택의 기술을 익히기 위한 실용서 느낌으로 읽었겠지만, 오늘 레터에서는 노동자 개인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는 측면에서 약간 비판적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오늘 레터에선 분량상의 문제로 짧게 다루었는데, 이 책에서 '관리'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이야기한 부분도 - 개인의 역량을 아슬하게 넘나드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만약 이 책과 <큐브>를 모두 읽을 기회가 있으신 분이라면 두 책의 마지막 장을 한번 붙여 읽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공교롭게도 느슨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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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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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필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노동’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4700자 🖍글 속 한 문장 “책은 단순히 사무실이냐, 재택근무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도 아니면 모’가 아니라 그 가운데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각자의 조직에 맞는 최적의 근무 방식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답은 없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성을 정한다면, 단순히 재택근무는 효율성이 떨어지며 대면근무가 낫다는 식의 (경영진에게 유리한) 결론을 넘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일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오늘 레터에서 다룬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의 서평입니다. 기본적으로 서문에서부터 이 책은 “‘42%’(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를 타깃으로 하는 책”이라고 솔직하게 명시하고 들어간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그 이상의 이야기가 사회적으로는 필요하겠지만요. 또한 - 다만 이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진정한 워라밸’ 같은 이야기가 약간은 유토피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걸 몰라서 못했던 게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재택근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떠도는 시점에 시의적절하게 필요한 부분을 짚어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기요금, 식비...모두 내 부담이라고?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2600자 🖍글 속 한 문장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재택근무로 인해 고민이 하나 생겼다. 재택을 하다 보니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비, 전기세도 늘었고 회사서 해결하던 점심도 매번 시켜 먹거나 사 먹어야 돼 비용이 늘었다. 하다 못해 마우스 건전지, 볼펜, 복사용지 등 사무 비품도 개인 비용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른 회사서 통신비, 전기료 등을 준다는 얘기에 회사측에 이런 비용을 청구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열흘 째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재택근무의 비용과 관련한 아시아경제 기사입니다. 코로나 격리 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하면서 전기요금 고지서의 숫자가 많이 오른 분들도 계실텐데요. 이젠 코로나 격리 당시만큼 매일같이 재택근무를 하게 될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여전히 재택근무를 할 때 드는 ‘비용’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과연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요? 관련해서 미시건대학교 법학과 Rachael Kohl교수는 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측이 전기요금 등 생활비를 일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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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섬세한' 사무실이 필요하다 독서시간: 약 5분 / 글자수: 약 2600자 🖍글 속 한 문장 “칸막이 설치여부는 소통 측면에서 장단점이 있다. 최근 스웨덴 연구진에 따르면 칸막이가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균 3분마다 업무에 방해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칸막이가 있는 사무실보다 분위기가 훨씬 더 산만하고 동료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사와 동료가 늘 지켜본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 감기 같은 전염성 질환에도 더 손쉽게 노출돼 있어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효율과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추어 공간 구조와 배치를 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앙리 르페브르는 그의 역작 <공간의 생산>에서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간은 그만큼 매순간 사람의 사고, 인식, 창조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죠. 실제로 이때문에 일부 기업 사무실들의 경우 배치, 파티션 높이, 동선, 회의실, 온도 등을 세심하게 신경씁니다. 보통 '노동권'이라고 할 때 인간중심적 사무실(좋은 사무실)에서 노동할 권리 같은 얘기가 나오진 않는데, 오늘 레터를 쓰면서 이 부분이 생각 외로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기업복지는 그림의 떡인 사람들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500자 🖍글 속 한 문장 경쟁적으로 현금성 지원이 늘고 있다. 포스코는 첫째 아이를 낳으면 200만원, 둘째 이상 출산에 500만원을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한다...기업들은 인재 확보 차원에서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중소기업에 먼 나라 이야기다. 민간 영역에서의 복지 양극화는 ‘임금 격차’ ‘출산·육아 환경 차별’ 등의 갖가지 문제를 양산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기업 종사자의 결혼 비율은 중소기업 종사자보다 1.43배 높다. 출산율은 1.37배 많다. 그런데 전체 근로자 가운데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은 81.3%(2020년)에 이른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오늘 살펴본 '사무실-복지'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출근하지 않는다>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마저도 약 40%정도에 불과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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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차(‘독서의 달을 맞아, 책을 쪼끔 읽자’)에 대한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모아 소개합니다. 편지로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버튼을 누르면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읽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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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아래 ‘💌편지보내기’ 버튼을 눌러서 오늘 레터에 대한 감상이나 질문 등을 보내주세요. 간단한 한줄 감상도 좋고, 연구자님이 떠올리신 독특한 해찰거리도 좋습니다 :) 레터를 통해서 보내주시는 작은 격려와 의견들이 레터를 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흥미로운 해찰은 레터를 통해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스피아에서 차후 다뤄볼만한 주제나 좋은 콘텐츠 등의 추천도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1.혹시 지난 회차 가운데서 '아, 이 회차에서 이 책(혹은 영화 등)을 다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난 회차의 주제에 대한 책이라도 추천해주시면 검토 후 레터에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간도 구간도 상관 없습니다. 회차명과 책 이름, 그리고 짤막한 추천 이유를 적어서 아래 '💌편지 보내기' 버튼을 통해 보내주세요. 지난 회차의 레터 내용은 아카이브 페이지(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SNS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주변에 레터를 추천해주시면 창작에 큰 힘이 됩니다. 친구에게 레터를 소개해주시려면 '구독하기' 버튼을 눌러 나오는 주소를 복사 붙여넣기 하시면 됩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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