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와 가출의 경계

류점석 | 비교문학자

손님으로 초대받은 경우 나름의 식사습관 때문에 나는 가끔 난감한 상황에 빠지곤 한다. 밥알 한 톨을 남기지 않고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까닭에, 수저를 놓으려는 순간에 더 먹으라는 권유를 받고 끝까지 사양할 수 없어 몇 숟갈을 더 뜨고 어쩔 수 없이 포만감에 시달리며 자책하곤 한다. 탁발승이 아닌 속인이 밥알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데 더 권하지 않는 주인이 오히려 이상하겠다는 판단에, 습관을 바꿔 조금 남기며 난처한 상황을 막아볼까도 생각했지만, 학창시절에 경험한 너무도 강렬한 인상은 그런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나는 비구니들만이 수행 정진하는 고향의 도량을 찾아가 대뜸 한 달 동안만 생활할 수 있게 받아주라는 철딱서니없는 부탁을 했고, 용케도 그 억지가 통해 산사에서 행자승의 흉내를 내본 적이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차가운 마루에 오체투지하며 108배를 올리는 동안 바닥의 냉기는 내 삶을 반추하게 했다. 그렇게 얼핏 닷새쯤 지났을 무렵 볕이 좋아 경내를 거닐며 우물가를 지나다 나는 못 볼 것을 보고만 사람처럼 뜻밖의 광경에 놀란 적이 있다. 설거지를 마친 스님은 한 손에 그러모은 밥알들을 물에 헹궈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넣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바닥에 흘리고 그릇에 남긴 음식물 찌꺼기들이었다. 며칠 동안 묵묵히 나를 지켜보았을 그 마음의 깊이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렇듯 청빈하지만 자족한 삶을 꾸려가려는 초발심을 되새기며 고여 썩지 않으리라는 서원에 자신을 가두고 용맹 정진하는 일상이 출가 수행승의 삶이다. 불편하지만 견디고 옹색하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투명한 삶이,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확인했다. 마음 안에서 불길처럼 솟아나는 욕망과 밖에서 불어오는 탐욕을 잠재우고, 자기 아닌 것에서 벗어나라는 계율은 번잡의 늪에 빠지지 말라는 말일 게다. 사문의 길에 들어서기 위한 출가란 물질과 본능에 예속된 존재에서 떨치고 일어나 초월적 존재를 향한 삶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고독한 결단이다. 타성에 젖어 안락만을 탐하다 낯선 길에 들어서는 출가란 불교적 선회만도 아니고 일회성에 그치는 반짝 행사는 더더욱 아니다.

[녹색세상]출가와 가출의 경계

‘스(님)들’이 호텔방에서 한껏 풀어 헤치고 술을 홀짝이며 때론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도박판을 벌였다는 보도나 그 현장을 몰래 찍어 폭로하는 다른 ‘스’들의 원한이 전혀 놀랍지가 않다. 또한 종단을 대표하는 ‘스’가 룸살롱에 가 성접대를 받았네, 아니네 하는 설왕설래에도 별 관심이 없다. 몸집은 비대하고 얼굴에서는 번지르르한 기름기가 마를 날이 없는데 그런 추문을 꼭 들어볼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도 사람인지라 관능이 팔딱이고 외물에 아찔 하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일말의 연민이 일면서도 한편으론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중 삼중의 가면을 쓰고 사기행각을 벌이며 해탈을 향한 몸부림은커녕 탐욕을 키우는 데 안간힘을 쓴 그들은, 출가 사문이 아니라 비행을 좇아 집을 뛰쳐나온 가출 건달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괘씸하기는 통합진보당의 본말이 전도된 내홍도 마찬가지다. 스님들이 생산 활동에 참가해 중생을 구제하기보다는 삶의 애환으로 찌든 중생들의 마음을 위무해야 하듯, 정치란 삶의 틀을 바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야 한다. 더하여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자들은 도덕성의 토대 위에서 자신은 한줌 밀알이 되겠다는 초발심으로 선명해야 한다. 더욱이 비민주적 전횡에 당한 인권 유린의 역사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조작된 다수결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파당적 이익을 구차하게 지켜보려는 그들도 가출 정치꾼들일 뿐이다.

사뭇 비장한 출가가 한순간에 조롱거리인 가출이 되고 마는 까닭은, 탐욕에 빠져 초발심의 결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남을 향해 소리치기 전에 나를 돌아보고 냉정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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