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인물

손홍규 소설가

내가 결혼할 때 아내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소설가들은 이혼도 밥 먹듯이 한다던데 그 사람과 결혼해서 잘살 수 있겠냐는 식의 충고들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을 때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소설가에 대한 그런 식의 오해가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설가라면 마땅히 감수해야 할 오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소설가에 대한 이 뿌리 깊은 편견은 내게 소중하지 않다. 내게 소중한 건 그런 편견들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소설가인 나를 이해해주려는 시선이다. 이를테면 결혼을 앞두었을 때 처가 식구들이 아내와 나의 결혼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내 나이가 마흔에 가까움에도 전 재산이 몇천만원밖에 안 된다는 거였다.

[문화와 삶]소설의 인물

그런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을 때도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사실이니까. 그런 정당한 반대 사유가 있었음에도 내가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금의 장인어른 말씀이 크게 작용했다. 그때 장인어른은 다른 식구들을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소설가다. 소설가가 돈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으냐. 내게 소중한 건 바로 이거다. 서로 다르고 어쩌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인간에게 부여된 고유한 장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장인어른과 나는 세계관이 무척 다르다. 장인어른은 새누리당 지지자다. 그 탓에 사위들과 모인 자리에서 조금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동서 중에 맏형님이 대표가 되어 장인어른과 말씨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다툼은 오래가지 않는다. 가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해도 알지 못하는 걸 그냥 내버려 두려 하지 않고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결코 용납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을 듯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차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 단순하기 짝이 없고 순결한 노력 하나뿐이다.

소설에 관한 정의야 다양하겠지만 인물에 한정 지어 말하자면 현실 세계에서 이해 불가한 인물을 이해 가능한 인물로 제시하는 게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고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상을 이해의 여지가 있는 무언가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소설의 인물은 실재 인물과는 다른 허구의 인물이지만 실재 인물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인물일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소설가들이 현실의 어떤 인물보다 실재에 가까운 인물, 다시 말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인간이 어떤 가능성을 지녔는지를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인물을 소설의 인물로 고려하지 않는 이유는 그 인물이 너무나 불가해하기에 소설에서 이해 가능한 인물로 묘사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외려 그 인물이 너무나 뻔해서, 인간의 가장 어두운 부분, 인간의 가장 탐욕스러운 부분을 상징하기에 소설로 그린다면 한심한 유형적인 인물이 될 것이기에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삼류 소설 중에 전형적인 악당의 유형으로 묘사되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감히 장담하건대 동시대의 소설가뿐만 아니라 내 후대의 소설가들 중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인물을 모델로 삼아 소설의 인물로 제시하는 경우란 없을 것이다. 요컨대 고뇌하는 인물만이 소설의 인물이 될 수 있다. 고뇌하지 않는 인물은 현실 세계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하며(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의 대표와 같은) 부유하게 권력을 누리며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소설의 인물은 될 수 없다. 어떤 소설가도 인간의 희망을 그런 인물에게서 찾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혹여 소설의 인물이 못 되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까 봐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해준다면, 그건 곧 역사가 그대를 지워버릴 거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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