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문화와 삶]아날로그의 반격

스마트폰이 마침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된 2010년 즈음, 나는 결국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아이폰3GS를 처음으로 샀던 날, 가장 먼저 했던 일이 CD플레이어를 서랍에 넣어 두는 것이었으니까. 그 전까지는 항상 음반으로 음악을 들었다. 처음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에 입문했을 때, 선망했던 건 LP였다. 용돈을 모아 테이프를 하나씩 사면서도 언젠가는 나도 방에 전축을 놓고 LP(그때는 ‘판’이라고 불렀다)로 음악을 듣겠다고 꿈꾸곤 했다. 그 꿈이 이뤄진 건 고등학교 입학 후였다. 주말만 되면 청계천 4가와 8가의 음반 도매상을 돌아다니면서 음반들을 사곤 했다. 테이프와 판 사이에는 일종의 위계질서가 존재했던 것이다.

‘물성’의 차이가 있었다. 한 뼘이 넘는 정사각형 재킷에 담긴 지름 17인치의 플라스틱 원반을 손에 잡았을 때의 만족감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테이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카세트 데크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테이프보다는 턴테이블에 얹은 후 조심스레 바늘을 얹어야 하는 판은 뭐랄까, 진짜 음악을 듣고 있다는 숭고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까지, 그 기분은 판을 살 때마다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음반의 패러다임이 CD로 바뀌면서 나 또한 자연스럽게 더 이상 LP를 사게 되지 않았다. 아날로그 음반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음질도 좋았고 사이즈도 작았지만 LP로 음악을 듣던 때의 그 기분은 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음악을 듣고 쓰는 것이 직업이 됐다. CD는 벽 2개를 가득 채울 만큼 쌓였다. 다행히 LP를 버리지 않고 있었지만 턴테이블은 진작 처분한 지 오래였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직전,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마련했다. 보관하고 있는 LP들을 짐짝에서 ‘음반’으로 다시 돌려놓고 싶었기 때문일까. 저렴한 턴테이블도 하나 샀다. 약 15년 만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선물로 받았던, 포장도 뜯지 않고 있었던 노라 존스의 2집을 얹었다. 레코드의 소리골을 타고 바늘이 흘렀다. 그리고 노라 존스의 목소리가 흘렀다. 그 순간, 잊고 있던 감각이 떠올랐다. 클릭 몇 번으로 mp3를 들었을 때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신간 <아날로그의 반격>은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완벽히 대체한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 왜 다시 아날로그가 돌아오고 있는지를 탐사,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음악은 이 책의 주요 모티브다. 현재 음악 시장에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분야는 둘이다. 스트리밍과 LP다. 다운로드와 CD는 끝없는 하락세다. 미국 기준으로 LP 판매량은 2007년 99만장에서 2015년 1200만장 이상으로 늘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통해 디지털 음원을 산업화시킬 때만 해도 완전히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던 LP가 부활을 넘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 말하듯 단순한 추억 때문이 아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LP를 구경하지 못했던 세대가 이 시장의 주요 고객이 돼가고 있다. 힙스터의 상징처럼 여겨지며(이는 한국도 비슷하다). 이런 현상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 저자는 내시빌에 위치한 레코드 공장으로 가 음반의 생산 과정과 공장의 부활 과정을 취재하고, 레코드 스토어 연합(레코드 부서)이 어떻게 레코드 스토어 데이라는, LP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적 축제를 만들게 됐는지를 밝힌다(한국에도 레코드 페어라는 비슷한 연례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리하여 한 달에 1만원 남짓이면 무한정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왜 20달러 이상을 내고 레코드를 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또한 왜 현재의 아티스트들이 새 앨범을 LP로 찍어내는지를 말한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나 테일러 스위프트가 스트리밍 서비스와 계약하지 않으려는 것은 거기에서 얻는 수익이 푼돈이기 때문이다. 스트리밍은 검증된 기술이지만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성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과 만나 포스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포맷으로 재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시대에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는 이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 세상은 0과 1만으로는 담겨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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