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의 과학 한귀퉁이]하루 한 끼

인간은 잘 때 먹지 않는다. 잠자는 동안 우리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과 같은 영양소를 소화할 효소도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의 스위치도 꺼버린다. 잘 때 먹지 않는다는 이 짧은 문장을 뒤집어 읽으면 ‘우리는 깨어 있을 때에만 음식을 먹는다’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먹을까? 모든 사람이 매일매일 하는 일이니까 우리는 이미 답을 잘 알고 있다.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이다. 얼마 전에 초등학생들 방학계획표 그리듯 깨어 있는 시간을 셋으로 나누고 그 시간만큼 교대로 밥을 안 먹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그들은 ‘릴레이 단식’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래서 나도 잠시 짬을 내서 계산해 보았다. 1900년대 초반 인류는 평균 아홉 시간을 잤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인류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30분 정도이다. 평균을 얘기할 때면 늘 수많은 개별자들이 눈앞에 떠오르지만 일단 계산을 해보자. 하루 7시간30분 잔다면 깨어 있는 시간은 16시간30분이다. 이를 3으로 나누면 5시간30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바로 단식을 시작한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보자. 오전 7시30분에 일어난 사람은 그때부터 단식에 돌입하여 오후 1시에 바통을 넘겨주고 그때부터는 자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다.

[김홍표의 과학 한귀퉁이]하루 한 끼

안타까운 아침잠 10분을 위해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하는 길에서 이런 뉴스를 들었다면 그야말로 실소할 일이지만 어쨌든 그 단식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내게 하나의 생물학적 질문을 던져 주었다. 우리는 왜 하루 세 끼를 먹는가? 두 끼 혹은 한 끼를 먹으면 안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보통 두 가지 접근 방식을 취한다. 하나는 다른 동물들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밤과 낮의 주기적 리듬에 따라 생활하도록 적응했다는 생물학적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자고 잘 때는 먹지 않는 신체 리듬에 적응해왔다. 이른바 일주기 생체 리듬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생리 혹은 대사 과정이 주기적으로 매일같이 반복된다. 이 리듬이 깨지면 우리는 쉽게 살찌고 스트레스에도 매우 취약해진다. 하지만 인간이 불을 밝혀 밤을 낮처럼 쓰면서 생체 리듬이 일상적으로 깨지는 상황이 찾아왔다. 평소 잠을 자던 시간에 잠을 자기는커녕 오히려 먹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거나 댐처럼 높은 곳에 담긴 물의 중력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시기 이후 먹고사는 인간의 행위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끼니의 역사에 대한 두 번째 접근 방식이다.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세 끼니가 자리를 잡은 것은 미국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함께 모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작업시간을 할애하다보니 규칙성과 세 끼니 개념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하루 세 끼를 먹는 일이 일상화된 지는 불과 200년도 되지 않았다. 세 끼니 말고도 산업혁명의 여파는 컸다. 가장 명시적인 효과는 아마도 전기가 상용화되면서 전 세계가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가동되는 체계로 전환된 것일 것이다. 전 세계 노동자의 10% 이상은 밤낮을 바꿔 교대작업을 한다고 한다. 하루 종일 사무실과 산업 현장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산업혁명은 밤이 되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물학적 명제에 인간이 공식적으로 불복종을 선언한 근대적 사건인 셈이다.

2014년 미국 국립 노화연구소 마크 매트슨 박사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시간을 신체가 생물학적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유전자 혹은 세포가 원하는 ‘끼니’가 있다는 뜻이다. ‘비만(Obesity)’이라는 잡지에 실린 논문에서 하버드 대학 브리검 여성 병원의 프랜크 쉬어 박사는 어두워 배고픔이 최고조에 이르기 전에 식사를 해야 한다는 일주기 생체 리듬 데이터를 제시했다. 그 연구에 따르면 잠에서 바로 깬 아침에는 오히려 배고픈 느낌이 가장 적었다. 이는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통념과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또한 이 연구 결과는 인간이 하루 세 끼를 먹는 일이 생물학적으로 에너지 과잉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 끼를 빼지 않고 먹는 중에 우리는 흔히 스낵도 먹는다. 진화적으로 스낵은 사냥 나갔다가 우연히 잡은 토끼 같은 것이다. 늘 먹는 끼니에 반해 간혹 먹는 음식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쿠키나 파이, 초콜릿, 과자, 라면 등이 모두 스낵이다. 인간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편입된 발효식품인 술도 에너지 함량이 높은 스낵의 일종이다. 세 끼,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특히 점심과 저녁 식후에 먹는 스낵은 일주기 생체 리듬을 교란할 뿐만 아니라 비만과 고혈압과 같은 현대적 의미에서 ‘인간이 만든 질병’의 직접,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우리는 먼 조상에 비해 에너지가 농축된 음식물을 거리낌 없이 먹는다. 불로 익히거나 가루 내서 익혀 소화하기 쉽게 가공된 음식물이 도처에 넘쳐난다. 오직 유일하게 인간만이(모든 인간은 아닐지라도) 언제든 포만하게 먹을 수 있는 지구 역사 최초의 기회를 얻었다. 이 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인간의 유전자와 세포가 굶주림 속에서 오랫동안 단련되었다는 뜻이 된다. 굶주림의 시기를 거치면서 인간은 음식이 넘쳐나는 시기에는 배불리 먹고 그것을 지방의 형태로 저장했다. 이런 방식이 우리 조상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쉽게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인류의 이런 대물림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최근 들어 평소의 절반 정도의 열량을 매일 섭취하거나 아니면 하루는 굶고 다음날은 평소처럼 먹는 일을 반복하는 간헐적 단식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고 상처를 치유하며 여러 대사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문이 여러 편 나왔다. 그럴 수 있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행복하게 가끔씩 배불리 잘 먹는 일도 삶의 한 즐거움이라는 느낌을 저버리지 못한다. 다만 수저를 들기 전에 한 가지만 생각하자. 먹는 절대량을 좀 줄이고 되도록 밝을 때 동료나 친구, 가족과 즐겁게 먹자. 그리고 행복하게 숨을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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