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해진 중국집 짬뽕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부실해진 중국집 짬뽕

언젠가부터 중국집 짬뽕이 대체로 부실해졌다. 값은 거의 못 올리는데 해물 같은 재료비는 치솟았기 때문이다. 오징어 빼고 변변한 해물이 안 들어간 지 오래다. 그나마 그 오징어조차 질이 좋지 않다. 어획이 좋지 않아서다. 한때 오징어가 너무 많이 잡혀서 어부들이 출어를 포기하던 90년대가 있었다. 잡아봐야 돈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연근해 어황이 나빠져도 짬뽕은 별문제가 없었다. 더 먼바다로 나가서 잡아올 수 있었다. 선동이라고 부르는, 큰 배에서 잡아서 급속 냉동을 하면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우리가 먹어왔던 짬뽕의 오징어는 대부분 이런 물건이었다. 솜씨 좋은 중화요리사가 팬으로 볶고 끓여내는 짬뽕 기술은 감탄을 자아낸다. 간단해 보이는 요리지만, 손에 붙인 기술의 총화가 만드는 게 바로 짬뽕이었다. 감칠맛, 불에 지진 채소의 향, 뜨거운 육수가 속을 덥혀내는 느낌. 요리 기술자가 만들어내는 음식이다. 한데 우리가 그 ‘최종의 결과물’을 맛보려면 산업의 힘이 필요하다. 장인의 기술, 영혼의 공력 같은 수식어는 어쩌면 정서적 측면일 뿐이다. 언젠가 저 먼바다의 ‘선동’ 오징어가 잔뜩 저장되어 있을 냉동창고 단지를 지날 때가 있었다. 대한민국 냉동수산물의 상당량이 그런 단지에서 언 채로 보관되었다가 전국 각지로 팔려나간다. 전기, 산업 에너지, 이를테면 플랜트라고 불러도 될, 보통 인간의 경험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그런 거대한 시설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배경이라고나 할까.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부실해진 중국집 짬뽕

짬뽕만 그런가. 모성의 따뜻한 음식,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교감의 식탁, 부모 된 자들이 벌고자 하는 밥값의 의미는 정서적이고 개별적인 기운 안에서 소비되지만, 그것은 이미 산업이라는 틀에서 굴러가기도 한다. 당대에 와서 그런 의미는 더 강해져 음식은 더 건조하고 기술적인 세상 속으로 진입했다. 음식은, 재료부터 산업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일관되게 의존한다는 뜻이다. 산업의 음식은 우리 집 부엌까지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즉석식품은 어머니나 아내의 손맛을 카피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직장과 학교의 급식도 전형적 대량생산의 구조 안에서 산업적 음식의 상징이 되었다. 저녁에 사람들은 ‘센트럴 키친’에서 모든 재료가 가공되어 공급되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회식한다. 산업적 생산물은 한때 이런 과정의 중간 단계까지만 진출했지만, 이제는 마지막 과정까지 커버하고 있다. 완벽하게 조리되어 냉장 냉동된 채로 공급되고 있으니까.

1970~80년대 소년 잡지엔 미래 예견 내용이 많았다. 자동 도로나 무선 전화, 로봇과 인공지능 같은 것들은 무서우리만치 높은 적중률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음식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기사에는 미래 인간이 튜브에 든 우주식을 먹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니까. 다행히도 인간은 음식의 정서적 의미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족이었다. 우주식을 식탁에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불길한 예견이 맞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산업이 어디까지 장악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농담은 참 쓸쓸하다. 자, 오늘 저녁은 각자 어머니 손맛 제품으로 한 튜브씩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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