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원 동화작가

우리 동네 고등학교와 중학교가 마주 보고 있는 길은 오전 8시30분쯤 되면 잰걸음을 떼는 학생들로 꽉 찬다. 두 학교가 교복이 달라 누가 고교생인지 중학생인지 알 수 있지만, 설핏 보면 구별이 안된다. 여학생들의 치마는 하나같이 무척 짧고, 남학생들 머리 모양은 모두 똑같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짧은 치마가 어때서

어른들이 요즘 학생들을 보면서 치마가 짧아 걷기조차 힘든 건 아니냐, 왜 개성도 취향도 없이 다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는 거냐 군소리를 하는데, 사실 교복을 입히고, 머리 규정을 만들어 개성을 억압한 건 어른들이었다. 다양한 인성 계발은 말뿐이고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인재를 키우는 데 주력해 온 우리 교육 현실에서 교복을 줄여 입는 것이나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는 것은 십대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억압에 저항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까 여학생들이 걷기 불편할 정도로 짧고 좁게 줄여 입은 치마가 역설적으로 그들에게는 너른 폭으로 세상을 걷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을 줄 수 있다고, 그때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열다섯 살의 우리 딸이 짧게 줄인 교복 치마 하나를 가방에 넣어서 다닌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나는 딸한테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운운하며 소리치다 결국 짧은 치마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 묵묵히 성난 엄마의 처분을 따랐던 딸이 치마를 도로 가져가 밤새 꿰매 다시 입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딸이 스무 살 때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하는 말이 기막혔다.

“요즘 애들 교복 치마가 너무 짧아. 교복은 안 줄여 입어야 예쁜데.”

개구리가 되어 올챙이 시절은 까맣게 잊은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들으면서 도리어 나는 과거를 반성했다. 그러게 왜 그깟 치마 길이로 아이들을 가늠하려 했을까. 그냥 놔뒀어도 아이들은 잘 자라서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사는데.

며칠 전 지역 곳곳에서 무상 교복과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편안한 교복을 추진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반가웠다. 이참에 학생들이 어른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개성과 욕망을 담은 기발한 교복을 제안하면 어떨까, 우리 동네 학생들이 그런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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