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트릴레마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려면 각당은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럼 상대 당을 찍으란 말이냐”라는 주장만 난무한다면 선거는 진흙탕이 될 뿐이다. 4년 전 총선에선 ‘복지논쟁’이 우리의 선택을 이끌었다면 지금은?

[정태인의 경제시평]한반도 트릴레마

불평등위기, 생태위기, 그리고 북핵위기가 현재의 3대 당면과제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오직 정의당과 녹색당만 ‘넷 제로(탄소 순배출 제로)’라는 기후위기 대책을 내놓았고 불평등위기에 대해 종합부동산세 강화나 소유제한을 대안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힐 북핵 문제의 해결, 나아가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건설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졌다. 북핵 문제가 난항을 겪는 것은 관련 국가들의 트릴레마(세개의 목표 중 한개는 포기해야 한다)가 중국과 미국 간의 투키디데스 함정 속에서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미국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정책에 존재하는 트릴레마를 지적했고 한국의 북한대학원 교수들은 이 트릴레마가 한·일 갈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김정), 그리고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트릴레마(구갑우)를 제시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뎁스와 몬테이로의 공동 논문), 그리고 북핵 대응(잭슨, 앤더슨의 독립 논문 두 편)의 트릴레마란 ①억제에 기초한 전쟁 방지 ②전진배치(forward deployment, 김정 교수는 “전방전개”로 번역)에 기초한 지역 안정화 ③핵우산 등 적극적인 안전보증(security assuarance)에 기초한 핵 비확산 중 어느 두개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갑우 교수는 한국의 트릴레마로 ①평화체제 ②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③비핵화를 들었는데 이는 앞의 트릴레마 순서에 대체로 조응한다.

예를 들어 두 정부가 각각 ① ②에 해당하는 전쟁방지(평화체제)와 지역안정(한·미 동맹)을 선택하면 핵비확산(비핵화)은 이룰 수 없다. 핵 전략자산이나 미군을 전진배치하면서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상호 억제에 의한 평화). 반대로 비핵화를 핵심 목표로 삼고 이를 평화체제로 발전시키려면 한·미 동맹의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연기(지역안정의 약화)가 북한을 대화로 끌어냈고 반면 북한의 안전보장(평화체제) 없이 비핵화 협상이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이러한 트릴레마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중·미 간 투키디데스 함정을 보면 경제 쪽의 미·중 통상마찰은 미봉의 합의로 일단 빠져 나왔지만 안보 쪽은 남중국해 문제가 여전한 가운데 북한 비핵화에 대한 물밑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예컨대 중국은 미국의 예방전쟁에 절대 반대하고, 경제제재를 극단적으로 강화하는 비핵화 방안에는 소극적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파멸이나 자멸 모두 미군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드의 추가 배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한 역시 트릴레마를 지니고 있다. 북한은 핵무장과 경제발전, 그리고 국내외 정치적 안정을 모두 달성할 수 없다. 핵무장은 국내 정치 안정과 함께 갈 수 있지만 국제제재의 강화로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다. 또한 경제발전에 의한 정치적 안정을 선택하려면 핵무장을 포기해야 한다. 핵무장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루려는 목표(핵·경제 병진노선)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을 뿐 아니라 극심한 외부의 반발을 낳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미·중의 대립을 완화하고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예컨대 현재의 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재편하고 동아시아의 집단안보체제 구상을 북한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한반도를 미·중 직접 충돌 완화의 ‘제3지대’ 또는 중립지대로 만들 수 있다. 이럴 때만 북한도 동아시아형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고, 남북의 평화공존 비용은 획기적으로 낮아진다.

물론 저 유명한 경제학의 트릴레마(유명한 고정환율제, 자본이동, 금융정책의 자율성)가 그렇듯이 이러한 조건이 엄격하게 고정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토론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총선이 북핵 문제, 불평등, 생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백가쟁명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전국의 와이파이는 이러한 토론을 기술적으로 도울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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