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후보의 호기심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의 낯선 사이]황교안 후보의 호기심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후보(미래통합당)의 일련의 발언들은 실수가 아니다. 전편과 속편이 온전한 극(劇)이다. 그의 프리퀄은 공안 검사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그의 발언은 세계관의 본격적 분출이다. 아들 취직 자랑, 육포 사건, “교회 내 코로나19 감염 거의 없다” “1980년, 그때 하여튼 무슨 사태” 발언, 키 작은 사람의 ‘투표 걱정’….

[정희진의 낯선 사이]황교안 후보의 호기심

압권, 아니 공포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관한 입장이다. 그는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그만둔 사람에 대해선 판단이 다를 수 있고, 양형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범죄 가담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호기심만으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양형 기준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강력한 범행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같은 당 이준석 후보가 “기술적 이해 부족”이라며 두둔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컴맹’도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일반론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n번방’에서 벌어지고 있던 폭력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와 동일시하고 있는가”이다. 누구를 걱정하고, 누구를 무서워하는가. 호기심? 많은 여성 연구자들에게 성착취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은 상황과 마주하는 데서 오는 고통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고통을 느끼는데, 어떤 사람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까지’ 걱정하나?

황 후보처럼 ‘n번방’의 존재와 내용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보다 분노와 공포를 느끼는 국민이 훨씬 많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동일시한 호기심‘만’ 가진 사람의 인권 누락 가능성이 더 걱정이었고, 이는 양형 공정성 주장으로 이어졌다. 나는 현행법 체제 안에서 최대한의 형량을 요구하지만, 요지는 이 사건에 대한 사법 운용자들의 인식이다. 형량은 그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맡았다가 40만명이 넘는 국민청원으로 교체된 오덕식 판사는 고 장자연씨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던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인물이다. 이후에는 고 구하라씨를 상습적으로 구타하고(상해·협박·재물손괴) 불법촬영(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한, 최종범씨에 대해 전자에는 무죄, 후자에는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 자신은 불법촬영물을 관람했다.

범인의 성별과 인종에 대한 감정과 이해(理解)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 법학자 마사 너스바움의 법 감정 이론대로라면, 오덕식 판사는 시민의 안전보다는 가해자와 동일시한 것이다. 굳이 불법촬영물을 관람한 이유도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폭력 영상물에 대한 인식은 성별 제도와 큰 관련이 있다. 남녀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는 얘기다. ‘n번방’ 사건은 신종 성폭력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만큼 성산업도 다양해진다.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여성의 얼굴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첩이 되어 군부대, 교도소, 대학가 등지에서 ‘눈요기’용으로 팔린다. 내가 아는 한, 이 제작자들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착취로 쉽게 돈을 버는 경로가 있다.

현행 성매매방지법의 규제 영역은 오래된 집결지(집창촌)였고, 이는 전체 성산업의 5%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와 남성 문화의 결합은 여성노동을 성애화하고 성애(sexuality)의 매춘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남성 문화에서 성 구매와 성폭력은 사소한 문제로 간주되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성들이 좌절하고 공동체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검찰’의 진짜 성격은 이번 사건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심각한’ 성범죄 사건이 보도가 되면 남성 문화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나는 아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자의 어린 시절에 대한 관심이다. 전자는 가해자와 선 긋기, 후자는 무의식적 옹호이다. 두 가지 모두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그들이 지은 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실제 여성 살해 장면을 촬영하는 스너프(snuff) 필름을 다룬 조엘 슈마허 감독의 <8MM>에서, 범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 괴물 아니에요. 어릴 적 트라우마? 부모님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좋은 교육 받은 사람입니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