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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공천 할당제를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모든 피의자는 공평하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전두환씨, 아동 성폭력 가해자, 연쇄살인범도 예외가 아니다. 최종 판결까지는 무죄로 간주한다는 원리 역시 분명한 정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 강북을 공천 논란의 주인공인 조수진 변호사 수임 경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변호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한국미래변호사회가 밝힌 변호사의 성폭력 피의자 변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입장에 동의한다. 한미변은 “변호사 출신 후보가 특정 사건을 수임했다는 이유로 과도한 사회적 비난을 받는 현실에 강한 우려”와 “변호사 윤리 장전은 사건 내용이 비난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가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내 질문은 이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변호사의 수임 여부”는 사건 내용에 따라 달라지는가, 아니면 ‘수임료’에 따라 달라지는가. “사건 내용(여기서는 성폭력)”에 대한 판단은 합... -
저출산은 해결되지 않는다
작년 한국의 출생아 숫자는 23만명이다. 그중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를 기록했다. 0.5명대도 가능하다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저출산 관련 뉴스를 접하지 않는 날이 없다. 어딜 가도 “저출산, 저출산…”이다. 최근에는 ‘저출산’이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로 ‘저출생’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인식에 반대한다. 저출산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저출산은 여성의 진화생물학적 적응이자 이탈리아 페미니스트 마리아 델라 코스타의 용어대로 “파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은 시민의 정당한 권리로 파업을 행사한 것이다. 저출산은 정치적 행위자로서 여성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발본적(拔本的) 문제제기다.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국가와 사회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출산은 극복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저출산을 해결한답시고 엉뚱한 방향으로 인력과 비용을 쓰고 있으니 안타깝다. 젠더 문해력이 ‘제로’인 ... -
한동훈 위원장의 “동료 시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용하는 “동료 시민 여러분”은 일견 의미가 있어 보인다. 여론도 대체로 우호적인데, 탈권위적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긍정적인 평가에 더해, 그가 말하는 시민의 범주에 사회적 약자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한동훈 위원장의 이 표현에 두려움을 느낀다. 첫째 한 위원장이 시민을 동료라고 부르는 그 사고방식이 두렵고, 둘째 그의 말에 열광하는 팬덤이 두렵고, 셋째는 그가 탈권위적 인물 이미지를 가지게 될까봐 두렵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두려운 것은 세 번째 상황이다.‘동료 시민인 국민들’은 한동훈 위원장에게 동료 의식을 느낄까. 아니, 한동훈 위원장 자신은 정말 스스로를 시민의 동료라고 생각할까. 그는 뭔가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비서진과 우산을 같이 쓰고 ‘폴더 인사’를 하고 단체사진을 찍을 때 가장자리에 선다고 해서, 그가 국민의 동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 -
비상대책위원회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1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며 국민의힘에 입당, 상임전국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12월26일부터 비대위원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했다. 한국 정치는 언제나 비상(非常)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낯설지 않고 비상사태라는 느낌도 별로 없다. ‘비대위’가 상시적으로 필요하다면, 비상 상태는 상례(常例)가 된다.문제는 어떤 상황이 비상 상태이고, 누구에게 무슨 문제가 위기인가이다. 지금 여당의 비대위는 당 조직이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만든 기구인가 아니면 단지 ‘권력자 물갈이’를 위한 형식적인 이름인가.어쨌든 “비상사태가 상례가 된 것이다”.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익숙한 말 아닌가. 다음은 발터 베냐민의 마지막 저작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역사철학테제) 중 테제 8의 일부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비상사태가 상례임을 가르... -
인간의 조건, 국민의 조건
이 글은 사회학자 오찬호의 글 “여자도 군대 갔다면, 달라졌을까”(경향신문, 2023년 12월18일자)에 대한 부연이다. 나는 그의 글을 금태섭 전 의원과 류호정 의원의 신당 추진 과정에서 나온 “여성 징병제 vs 남성 돌봄제(?)”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었다. 정책 영역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 남성은 군대에 가고 여성은 출산한다”는 통념은 막강하다. 일상에서도 마치 자연의 이치인 양 회자되고, 징병제 문제가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다. 물론 이는 어불성설이다. 실현되어야 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일단, 돌봄과 병역은 어느 성별이 수행하는가를 떠나, 자명한 인간사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 만든 이데올로기다. 특히 징병제는 일시적이고 특수한 제도이다.용어 사용부터 징병제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국가의 구성 요소 중 군대는 독자적 자위력을 가진 독립국가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대표적인 모병 방식으로 징병제와 지원병제(... -
접경 지역 50미터?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 업무 추진비를 문제 삼아 국민권익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고위 검사들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경기 성남시 청계산 유원지에 있는 유명 한우집을 여섯 차례 방문해 943만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흥미로운 점은 당시 회식에 참가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음식점 장소에 대한 개념이다. 한 장관은 한우집이 “서초구에서 50m 떨어진 접경 지역”이어서 “공직 수행 과정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민주당은 “서울중앙지검 건물에서 객관적으로 10㎞ 떨어진 유원지”여서 “소고기 파티가 검사의 업무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공식 업무냐 소고기 파티”냐의 판단은 근무처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한 것 같은데, 이 점에서는 양측 모두 어불성설이다. 온라인상에서도 같이 업무를 볼 수 있고, 외국에 나가서도 회의를 할 수 있다. 특히 행정 ... -
뉴스는 빨라야 할까
신문(新聞)에 대한 오랜 개념 중 하나는 ‘새로운 소식을 신속, 정확하게 널리 알리는’ 정기 간행물이다. 신문은 이미 아는 이야기, 즉 구문(舊聞)과 대비되는 속도의 매체라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호외(號外)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윤전기를 세웠다”는 표현이 긴급한 뉴스를 대신하던 시절 역시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이런 맥락 때문에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은 경쟁이 안 되고, 종이 신문은 사양 산업이라는 통념이 생겼다.정말, 신문 산업의 미래는 신속성의 문제일까. 주지하다시피 현실이 모두 뉴스가 되지는 않는다. 무엇이 현실이고 사실인가 자체가 논쟁거리다. 뉴스에는 ‘가짜 뉴스 vs 진짜 뉴스’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두 종류가 있다. 뉴스로 선택받은 현실과 그러지 않은 현실이 그것이다. 이처럼 가시화된 현실과 드러나지 않은 현실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신속성은 중요한 특성이 아니게 된다. 빠른 보도는 신문 발생 초기, 1883년 한성순보(漢城旬報) 시절부터 불과 몇... -
‘희망’은 무엇을 하는가
“정치인과 지식인 모두가 기후위기를 심각하다고 부르짖지만, 뒤돌아서는 평소대로 먹고, 마시고, 여행하고, 소비한다. 로이 스크랜턴은 우리가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문명과 인류를 이어갈 확률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혁신이 이어지고 경제가 성장해도 미래는 암울하다. 아니, 더 암울한데,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는 바로 이런 자본주의적 혁신과 성장에서 오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전망도 과장되어 있다. 우리는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품위 있게 살아야 하는데, 그 길은 죽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 애착이 가는 것, 사랑하는 존재, 확실한 미래, 자아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구원과 희망마저 포기해야 한다. 죽음 직전에 주변을 정리하듯, 우리는 지금 살아서 버려야 한다. 인류세 시대에 제대로 죽는 법을 배우는 게, 우리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대안도 ... -
한국 밖에서 터지는 손흥민의 해트트릭
지난 2일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토트넘 홋스퍼는 랭커셔카운티 번리의 터프 무어에서 열린 번리와의 원정경기에서 5-2 대승을 거뒀다. 이날 손흥민은 후반 27분까지 뛰며 올 시즌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특히 첫 번째 골은 우리 몸에서 가장 통제하기 어렵다는 ‘둔한’ 발끝과 회전하는 공, 수비수들과의 싸움에서 얻어낸 성과였다. 손흥민은 마치 손에 리모컨을 쥔 듯 너무나 ‘쉽고’ 우아하게 리오넬 메시 등 최고 선수들만이 가능하다는 칩슛을 성공시켰다. 주지하다시피 손흥민은 2021~2022시즌 아시아 선수 최초로 득점왕에 올랐고, 올 시즌에는 토트넘에서 141년 만에 선임된 최초의 비유럽인 주장으로 플레잉 코치 역할을 겸하고 있다. A매치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성적과 경기 내용은 누가 감독을 맡느냐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 대한축구협회의 운영 문제는 자주 도마에 오른다. 히딩크가 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겠는가. 소프트웨어 인프라도 축구 ‘선진국’에 비하면 초라한... -
북극곰과 나의 공통점, ‘지구를 구할 수 없다’
류준열 배우가 전하는 ‘그린피스’의 목소리다. “나는 북극곰입니다. 나는 기후 변화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뽀얀 털을 갖고 있어서, 귀여운 까만 코를 갖고 있어서, 당신은 나를 걱정하고 안타까워 하지만 당신이 걱정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닙니다. 이미 당신에게 계절은 의미가 없어졌고, 이상기온은 더 이상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북극곰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 북극곰과 우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변화를 멈춰주세요.” 이 공익광고는 기후 위기를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환경 운동은 미래 세대를 위한, 지구를 지키기 위한, 동물을 살리기 위한 과제가 아니다. ‘환경(環境)’은 “인간을 둘러싼”이라는 의미에서 이미 인간 위주의 단어다. “나를 둘러싼 무엇을 위해서”라는 발상. 주체(인간)와 대상(지구)의 이분법을 버리지 않은 한, 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