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코로나의 시대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의 아이러니]넷플릭스와 코로나의 시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상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한계는 오로지 우리의 상상력에 달렸다. 만들어진 영상은 지구 어디로든 순식간에 전달된다. 보고 싶은 모든 영화나 드라마를 어디로든 누구에게든 전송하는 기술이 10여년 전에도 있었지만, 그런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기업도 없었다. 저작권 침해를 일삼는 웹하드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한국의 온라인 콘텐츠 수급 시스템이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한국에 넷플릭스가 상륙하면서 그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

[조광희의 아이러니]넷플릭스와 코로나의 시대

그러나 막상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기대한 만큼은 아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생각만큼 볼거리가 풍성하지는 않다. 바쁠 때는 몇 달간 시청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나는 1만원 남짓의 월 회비조차 아까워 넷플릭스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영화 마니아들은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기존 영화 중에서 볼만한 영화는 대부분 관람한 상태였다. 오래전에 제작된 외국 드라마나 넷플릭스가 새로 제작하는 드라마 중에서 취향을 저격할 정도의 작품을 찾는 것은 그렇게 용이하지도 않았다. 내 경우에는 몇 회 정도 시청하다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걸까.

소셜미디어에서 최근에 널리 유포된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에 공감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 용어는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영화와 드라마 중에서 무엇을 볼지 찾아보다가, 막상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는 상황”을 가리킨다고 한다. 콘텐츠가 방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음에 꼭 맞는 콘텐츠를 찾는 게 실제로 그리 쉽지 않다. 어떤 때에는 중저가 상품을 파는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온 손님 같은 심정이 된다. 수많은 물건이 진열되어 있지만, 비슷비슷한 것들 속에서 확실히 마음을 끄는 것은 별로 없다. 여러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다채로운 변종들이 즐비하지만,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새롭지는 않은 것이다. 마치 퍼스널 컴퓨터가 그런 것처럼 스토리텔링에 더 이상 커다란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는 넷플릭스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었다. 외출이 줄어들고 극장에 가기도 어려우니까, 자연히 넷플릭스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어난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위세는 영화 <사냥의 시간> 사건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극장상영이 어려워진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라는 구원투수가 전격적으로 구매한 것이다. 원래 이 영화의 해외배급을 맡은 다른 회사가 이미 체결된 여러 해외배급계약과 어긋난다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며칠 후 갈등은 봉합되었다. 코로나19로 사면초가에 빠졌던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극장에서 상영하지 못하는 영화를 거액에 사들여 즉시 전 세계에 유통시키고, 그 흥행결과에는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다른 회사가 또 있을까. 이보다 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위력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미래 영상산업의 총아가 될 것인가. 가까운 미래의 장밋빛 전망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다. 남은 것은 이 서비스가 우리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얼마나 잘 제작하여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직까지 콘텐츠의 수준은 환상적이지 않다. 앞으로 콘텐츠 업계의 거인인 디즈니와 세계 최고의 기업인 애플이 본격적으로 가세한다면 콘텐츠의 질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한국 영상산업의 장래는 어떨까.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사는 돈이 마르지 않는 투자자의 투자를 받고, 전 세계적인 유통망에 접근할 기회를 얻었다.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와 드라마에 투자하던 기존의 기업과 극장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현재 흐름을 보면 한국 영상산업에 엄청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CJ와 같은 선두 기업은 적어도 아시아 콘텐츠 시장에서는 넷플릭스와 같은 지위를 차지하고 싶을지 모른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는 명실상부하게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인가. 그 성패는 기술이나 네트워크보다는 철학과 감성 그리고 스토리텔링 능력이 결정할 것이다. 10년 후 세계영상산업의 지도가 어떻게 그려질지, 우리는 안방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세상의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넉넉히 즐기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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