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사회의 히키코모리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의 아이러니]비대면 사회의 히키코모리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untact)’이 확산되고 있다. 구글 검색창에 ‘비대면’이라고 입력하면, ‘비대면 강의’ ‘비대면 서비스’ ‘비대면 마케팅’ 같은 문구가 자동 완성되어 보인다. ‘비대면’은 이전부터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의 뚜렷한 경향이고, 기술적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우리의 문화와 습관이 지체되어 예상보다 빨리 전개되지 못하던 중에 바이러스가 가속기를 밟은 형국이다.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 변호사

전화와 e메일처럼 이미 생활화된 문명의 이기들도 비대면의 한 모습이다. 그 이전 시대의 비대면 장치인 전보, 팩스, 우편은 이미 쫓겨가고 있다. 이전의 비대면이 원격지 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불가피한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비대면은 편리성을 높이고, 위험과 비용을 낮추며, 심리적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인간관계의 비대면화는 훨씬 오래전에 뿌리를 내렸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굳이 만날 필요 없이도 효율적이고 영속적이며 덜 위험한 인간관계를 광범위하게 구축해주었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직접 만나는 친구의 수가 감소하고 있음을 가끔 느끼고 있었다. 한때는 ‘내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심지어 자아실현한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에 속기도 했다.

이제 나는 그것이 나만의 특성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일반적 성향 그리고 비대면의 사회적 경향과 관련이 있다. 아주 가까운 몇 사람만 자주 만나고, 용건이 있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며,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몇 년 만에 만나는 삶,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과 비대면의 의사소통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인간관계의 지배적 패턴이 되고 있다. 나아가 친밀성의 세계가 아닌 거래의 세계 또한 무서운 속도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 모두 집 밖으로 나서지 않는 ‘디지털 히키코모리’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집 밖은, 방 밖은, 아니 이불 밖은 코로나로든 뭐로든 위험하다. 우리 모두 점차 광섬유라는 비단으로 둘러싸인 누에고치가 되고 있다.

내가 영위하는 변호사 업무도 재판과 불가피한 회의 이외의 나머지 업무는 각자의 방에서 모두 진행된다. 거의 모든 업무가 e메일과 파일 전송으로 완료된다. 사실 사무실에 있으나, 집에 있으나, 또는 남태평양 야자수 밑에 있으나, e메일이나 휴대전화나 메시지의 상대방은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

이러한 변화는 불가역적인 것이므로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신속하게, 더 작은 감정을 소모하며 살아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은 권력과 인정투쟁에 목마른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비대면의 낮은 해상도와 감도, 의사소통의 부정확성 그리고 통신의 불안정성이 점차 개선된다면, 오래전 디지털 혁명가들이 꿈꾸던 세계가 도래한다. 그곳이 디지털 파라다이스가 될지, 강요된 히키코모리의 외딴 방이 될지 아니면 명암이 엇갈릴지는 곧 판명이 될 것이다.

각자가 섬처럼 떨어져 있으면서 무수한 신경망으로 초연결되어 있는 세상, 직접적 친밀감의 필요나 아날로그적 즐거움의 향유를 목적으로만 집 밖을 나서는 미래는 그리 머지않다. 당신 또는 당신 자녀의 지난 주말을 돌이켜보라. 그 전조가 느껴질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이 ‘자아’라고 믿는 존재가 자리 잡은 뇌는 늘 두개골 안에 갇혀 있고, 특별한 수술이 있는 경우 외에는 외출한 적이 없다. 뇌는 눈, 코, 귀와 같은 감각기관이 전달해주는 전기신호로 세상과 교신하는 생래적인 히키코모리다. 이제 당신의 뇌와 세상을 중계하던 감각기관들이 직접 대면이 아니라 비대면을 선호한다고 해서, 어차피 두개골 바깥으로 외출하지 못하는 뇌로서는 뭐가 그리 아쉽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새로운 흐름에 이토록 잘 적응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비대면이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직접 만나서 일어나는 온갖 오해와 위계질서와 불쾌한 경험을 생각한다면, ‘무엇이 과연 비인간적인 것일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는 비대면의 전도사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타고난 내향성과 개인주의를 외향적이고 집단적인 세상에 맞추려고 들인 많은 노력과 좌절을 생각하면, 다가오는 비대면 세계가 불청객만은 아닌 듯싶다.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