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참극’을 막으려면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공공재는 유지가 힘듭니다. 유지 비용은 공적이고, 사용으로 얻는 이익은 사적이기 때문이죠. 모두 맘껏 쓰죠. 이러다가 다들 못 쓰게 될 걸 알아도 멈추지 않습니다.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아껴도 누군가 그것을 써버릴 걸 알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집단의 비합리적 선택으로 끝나는 겁니다. 폐수 무단 방출, 매연 트럭 운행 등이 예입니다. 그 반대, 즉 비용은 사적이고 이익은 공적인 상황은 어떨까요. 동네 사람들이 소, 염소 등을 몰고 와 풀 먹이는 공유지를 생각해보죠. 공유지에 가축이 모이자, 산짐승이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울타리가 필요했습니다. 십시일반 돈을 모으면 쉽게 해결될 듯했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죠. 염소 새끼만 당하고, 발자국을 보니 작은 짐승이 분명했습니다. 소에 위험이 없으니 소 주인은 지갑을 안 열었죠. 염소 주인은 애원했죠. “큰 짐승도 올 수 있다. 울타리를 치면 큰 짐승도 막는다. 결국 모두에게 이익이다.” 공동체 입장으로 이성적 판단이었지만 소 주인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비합리적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염소는 사라졌습니다. 더 큰 짐승이 나타났고, 결국 아무도 공유지를 쓸 수 없게 됐죠. 이처럼 비용은 사적, 이익은 공적이어도 공공재는 지키기 힘듭니다. 이를 ‘공유지의 참극’으로 부르겠습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어떻게 하면 ‘공유지의 참극’을 피할 수 있을까요. 개인의 이성에 맡길 수 없습니다. 결국 외부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원님이건 정부건 소주인에게 돈을 내라 강제하고, 염소 주인에게 지원해야 합니다. 아니면 모두 공유지를 잃게 됩니다.

코로나19 방역이라는 공적 이익을 위해 시민이 사적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몇 년 모은 자금, 대출로 이어온 가게, 겨우 얻은 직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청장년층 사정은 더 심각합니다. 이들에게 코로나19 위험은 훨씬 낮지만, 경제활동은 가장 왕성할 시기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청장년층 피해와 부담은 객관적 피해액을 훨씬 능가합니다. 걸리더라도 문을 열겠다는 마음이 자연히 듭니다. 공유지의 참극을 생각하면 이들의 방역 동참은, 희생은 기적적입니다. 높은 시민의식, 정부의 규제 덕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지난 주말 네덜란드 정부가 야간통행 금지까지 꺼내자 젊은이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났죠. 코로나19 검사소에 방화까지 저질렀습니다. 미국은 사정이 더 다급합니다. 지난 일주일 하루 평균 사망자가 3000명이 넘었죠. 비즈니스 압력에 제대로 된 방역 조치를 내리지도 못한 주정부도 다수입니다. 가랑비에는 뛰어도 흠뻑 젖고 나면 걸음에 여유가 생기듯 미국 사회, 특히 젊은층은 코로나19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공유지의 참극이 이미 한참 진행된 셈입니다.

한국 방역과 규제는 뛰어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죠. 사적 비용의 보상은 사실 방역의 다른 한쪽입니다. 하지만 홍남기 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며 “건전한 재정 유지”에 바빴습니다. 덕분에 작년 재정수지적자는 국내총생산의 4.2%(OECD 자료)였습니다. 주요국 중 최소수준이었죠. 독일도 6.3%, 미국은 무려 15.4%였습니다. 재정지원(재정지출+세제지원)은 국내총생산의 3.5%로 주요 20개국 평균 6.6%의 절반꼴입니다. 미국(11.8%), 영국(9.2%), 독일(8.3%) 등에 훨씬 못 미치죠. 이들은 재정 적자 규모를 전시와 유사한 수준으로 확대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가하다는 말이기도 하죠. 이들처럼 했으면 100조원 정도 지원이 더 나왔어야 합니다.

이제 와서야 정부와 정치권은 보상안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나마도 소급적용은 하지 않겠다며 못을 박았죠. 텅 빈 가게에서 짜낸 월세를 다 챙겨 먹은 은행은 어쩔 건가요. 따지고 잴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한국에서도 ‘공유지의 참극’은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죠. 자화자찬과 국민에 감사한다는 입바른 소리는 그만하기 바랍니다. 그냥 조용히 할 일을 하기 바랍니다. 간호사에게, 가게 주인에게, 아르바이트 청년에게 돈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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