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왜 그럴까 우리는

이해인 수녀
정지윤 기자

정지윤 기자

자기의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는
그리도 길게 늘어놓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네
아니 처음부터 아예 듣기를 싫어하네
해야 할 일 뒤로 미루고
하고 싶은 것만 골라 하고
기분에 따라 우선순위를 잘도 바꾸면서
늘 시간이 없다고 성화이네
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
한 조각의 미소를 그리워하며
외롭게 괴롭게 누워 있는 이들에게도
시간 내어주기를 아까워하는
건강하지만 인색한 사람들
늘 말로만 그럴듯하게 살아있는
자비심 없는 사람들 모습 속엔
분명 내 모습도 들어 있는 걸 나는 알고 있지
정말 왜 그럴까
왜 조금 더 자신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토록 이기적일까, 우리는…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중에서

“아픈 데가 많아질수록 침대 위엔 차츰 베개가 늘어나요”라고 저는 짐짓 웃으며 말하지만 어느 땐 좀 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머리와 목, 팔과 발에 번갈아가며 베개를 사용하면 통증을 달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긴 하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픈 데가 많은 노년기의 장애를 구체적으로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그만큼 더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사랑의 덕목을 지니는 게 당연할 터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질 못한 것 같습니다.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나이 들면 추위가 무릎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 젊은이들과 대화를 하고 싶지만 그들이 내 곁을 비켜가는 외로움을 맛보곤 하지.” 어느 선배수녀님이 혼잣말하듯 내뱉던 말이 종종 생각나는 요즘. 원치 않은 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적마다 잠시 우울해지곤 합니다. 자신의 아픔에 빠져 있느라 다른 이의 더 큰 아픔은 눈에 들어오질 않고 그를 깊이 이해하려 들지 않은 순간들이 문득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에서의 매일은 이기심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와 좀 더 이타적인 삶을 살아보려 최선을 다하는 믿음과 사랑의 선한 싸움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밤낮으로 수덕에 대한 공부를 하고 성인들의 삶을 본받는 이타적인 삶에 대하여 배우지만 일상의 삶에서 마주하는 제 모습은 늘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몸과 마음의 아픔을 하소연할 때 듣는 이가 건성으로 대하고 자신의 아픈 이야길 더 많이 하면 쓸쓸하고 서운한 마음이 되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결심하지만 막상 실습할 그 순간이 오면 듣는 일을 지루해하며 속히 끝내길 독촉해서 상대를 실망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 안 남은 이들에겐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바쁜 것을 핑계로 비켜가거나 그의 사소한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고 부담스러워하는 내색을 할 때 그는 얼마나 깊은 외로움을 느꼈을까 싶습니다. 이젠 다시 만나고 싶어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저 세상 사람들! 휠체어를 타고 복도를 지나가던 환자 수녀님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인사하지 않은 것, 자신의 죽음을 미리 통보하며 애타는 눈길과 목소리로 인간적 위로를 갈구했던 이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들어주지 못한 일들이 떠올라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뒤늦게 후회만 하지 말고 늘 우선적인 사랑의 선택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하찮은 것에도 그리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의 엄청난 아픔과 슬픔엔 안일한 방관자였음을 용서하소서/ 저 아닌 그 누군가 먼저 나서서 해 주길 바라고 미루는/ 사랑의 일을 제가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하여 저의 이기적인 시간들이 사랑 안에서 이타적인 시간으로 조금씩 변모될 수 있도록 오늘도 깨어 있는 노력을 다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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