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회사가 이사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이면 가던 거리에서 지하철로 50분을 가야 한다. 그나마 출근 시간이 좀 늦어서 러시아워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위안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지하철은 시간을 철저히 죽이는 공간이다. 앉은 사람들은 못 채운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서 있는 사람들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누군가는 웹툰을, 누군가는 드라마를, 누군가는 유튜브 영상을 볼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청각과 시각을 활용하여 지루한 출근길을 채운다. 사람들의 시간을 채우고 빼앗는 것, 콘텐츠다.

언젠가 IT 쪽 사람들이 음악을 콘텐츠라 부르기 시작했을 때, 꽤나 불편했다. 음악이 쌓아온 지난 세기의 가치와 로망 같은 걸 무시하는 듯 보였다. 창작자의 고뇌, 음악이 주는 흥분과 기쁨을 날려버리고 주가로 대변되는 수치만을 언급하는 이들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다. 영국의 록 뮤지션 모리시는 메이저에서 인디 레이블로 이적하면서 “메이저 레코드의 수장들은 더 이상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 경영학·회계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으면서 음악 대신 숫자만을 들여다보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고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20세기 음악 소년들이 IT시대에 뭘 느끼든, 세상은 흐르고 변한다. 음악은 청각의 울타리 안에서 힘을 쌓고 역량을 키워왔다. 거실의 전축, 가방 속의 워크맨, 휴대용 CD플레이어와 MP3플레이어까지 그랬다. 스마트폰 초기 시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의 세계, 즉 영상은 청각의 울타리를 쉽게 넘어올 수 없었다. 둘은 다른 영역 안에서 각자의 시장을 만들어왔다. 기술은 영상의 편이었다. 1980년대 워크맨 유행과 함께 시작된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패러다임은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다. 구매냐, 다운로드냐, 스트리밍이냐 혹은 얼마나 좋은 음질이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더욱 편하게 영상을 볼 수 있는 기술은 인터넷의 보급 이후 가파르게 발전해왔다. 무엇보다 유튜브의 등장 이후 자기 채널로도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욕망이 폭발하면서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플랫폼보다 빠르게 다양한 콘텐츠들이 등장했다. 거기에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의 대중화로 세상은 콘텐츠의 은하가 됐다. 음악이 가졌던 청각의 울타리도 허물어졌다.

그리하여 음악과 영상, 그리고 만화와 소설이 모두 스마트폰이라는 기기 위에서 경쟁한다. ‘시간이 곧 돈이다’라는 말이 고릿적 경구에서 냉혹한 현실이자 비즈니스 어젠다로 재탄생했다. 시간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

애초에 청각은 시각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1980년대 초반 MTV가 개국하며 ‘듣는 음악’을 ‘보는 음악’으로 바꿨다. 그때 이미 영국 밴드 버글스가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를 발표했고, 이 노래는 춤을 비롯한 시각적 요소들로 정상에 서는 음악이 나올 때마다 사골처럼 우려먹어졌다. 감각의 울타리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그때의 개탄은 차라리 낭만적으로 들린다. 코로나19로 인해 스트리밍 시장이 성장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영상 플랫폼은 그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결국 영상에 패배할 수 없는 음악에, 그렇다면 경쟁우위는 없을까? 있다. 공연이다. 디지털과 스마트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의 독점자. 청각과 시각을 레코딩 기술의 탄생 이전으로 되돌리는 경험의 콘텐츠. 음반의 시대가 끝나면서 오히려 성장해온 시장. 코로나19로 인해 멈춰버린 이 음악의 무기를 되찾고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노력하는 이유가 아닐까. 지난 3월 스페인에서 시행된, 5000명이 마스크를 쓴 채 공연을 보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단 한 명의 확진자도 없었다. 여름이 다가온다. 우리도 마스크 쓰고 야외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다는 참고사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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