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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꽃이 될 때
‘저 애만 없으면 수업 분위기가 참 좋을 것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학생이 반에 한 명씩은 꼭 있다. 하지만 어쩌다 그 학생이 전학을 가게 되면 신기하게도 크게 다르지 않은 학생이 그 자리를 메운다. 대부분의 ‘저 애’는 알고 보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들이 학교생활에 부적응을 겪게 되면 학교에서는 위기관리위원회를 열어 좀 더 세심한 돌봄과 지도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학교위기관리위원회에서는 구청 복지담당부서나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외부 기관의 전문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의 실마리와 지원 방법을 찾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사안은 어느 정도 해결책이 보이는데 가끔은 답답한 상황에 놓일 때도 있다. 보호자로부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그래도 ‘부모가 되어 가지고’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그 가정의 삶의 무게와 고통을 헤아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
인간적인 만남이 가능한 학교
2학기 전면 등교 소식이 들린다. 주 5일 등교가 ‘교육의 정상화’를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서적 우울, 돌봄 격차, 기초학력 저하…. 코로나19 장기 팬데믹으로 일그러진 일상의 리스크를 안고 아이들은 다시 긴 시간 학교에 머무르게 되었다. 코로나19로 학교의 역할이 명징해졌다. ‘학습’ 공간으로만 여기던 학교가 그에 못지않게 ‘친교, 돌봄, 복지’의 공간이었음이 드러났다. 개인적 돌봄에 취약한 학생들일수록 ‘학교가 전부였다’는 사실도 또렷해졌다. 앞으로의 교육개혁도 그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작년 발간된 한국교육개발원의 ‘코로나19 확산 시기, 불리한 학생들의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보고서에선 “비대면 온라인 수업에서의 관계성 및 공동체성의 결핍이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 대응 중 하나로 학급당 학생 수 제한을 언급한다. 현재 국회에는 ‘학급당 20명 상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고, 입법에 관한 국민청원도 10만명을 넘어섰다. ... -
진정한 평가란
지난 교직생활을 돌아볼 때, 실제로 느껴지는 학교의 변화는 30년 동안 학급당 학생수가 30명 줄었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체벌이 없어졌으며, 교복·교과서·급식·학비 등 전국적으로 무상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학교의 확산으로 교사의 강의 중심 수업에서 학생 참여 중심 수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변화의 흐름이다. 앞으로 더 변화들이 일어나겠지만, 제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가 여기까지 오는 데 3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대로 평가는 가장 변화가 느린 영역이다. ‘성장 중심 평가’라는 말이 교육청 계획서에 실려 매년 초 학교로 내려오지만 일선학교에서는 평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한 인간의 성장과 변화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그만큼 깊고 면밀한 영역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교육의 변화는 아마도 평가 방식의 변화로부터 시작될 것이다.진정한 평가란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고, 어떤 도전 속에 있는지 함께 주의를 기울이고 기뻐하며, 응... -
우정이 변할 때
학부모와 학생 상담을 할 때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는 교우관계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 외에 가족관계가 없는 외둥이인 경우가 많고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지 못해 사회정서적 기술이 부족하다. 코로나19로 관계를 맺는 일은 더욱 힘들게 됐다. 친한 친구가 생겨도 어려움은 남는다. 상대를 친밀하게 여기는 마음의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우정도 사람 사이의 일이라 시간이 지나며 변하기 때문이다.유미와 진이는 같은 반 단짝이었는데 얼마 후 둘의 관계가 돌변했다. 진이는 유미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가까이 가면 피했다. 갈등이 풀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났고 해마다 학년을 마칠 때면 유미 어머니는 담임에게 진이와 반을 다르게 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미는 학교에서 진이를 마주치면 옛 기억이 떠올랐고, 다른 아이들에게 진이가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뻔뻔한 아이라고 소문을 냈다. 진이는 예전 일을 후회하지만 유미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아서 힘들었다. 자신이 친구들에게 나쁜 아이로 낙인찍히고 혼자가... -
토요일 밤 긴급돌봄 발생!
토요일 저녁은 시간이 녹아드는 것 같다. 토요일 돌봄 근무가 끝나면 잔무를 처리하며 센터에 머물러 있을 시간인데, 이렇게 집에 있으니 더없이 좋다. 으스스한 한기가 스며드는 밤마저도 그저 행복하다. 전화는 늘 이런 순간 울린다. 센터가 끝난 뒤 놀이터에서 놀고 왔는데 열쇠는 없어지고, 아버지는 전화를 안 받으시고, 휴대폰 배터리는 곧 꺼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아이는 쭈뼛거린다. 그 앞에도 두서너 아이들이 이런저런 일로 전화를 걸어왔던 터인데, 결국 귀찮은 일이 터졌다. 하지만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 좀 더 두들겨보고, 네가 갔던 친구 집에도 전화를 해서 어른들께 좀 찾아봐달라고 하라고 이르고, 나도 아버지께 따로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정말 받질 않으신다. 금세 또 전화가 울린다. 아버지는 계속 안 받으시고, 깜깜해지는데, 배터리도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해요? 아이는 더 다급히 묻는다. 결국 “샘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해결이 하나도 안 되잖... -
누가 우리 감자를 못살게 해요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아이들이 계단을 급하게 내려온다. 텃밭상자를 분양받아 돌보는 1학년들이다. 가로 2m 세로 1m의 텃밭상자 21개를 세 명당 하나씩 분양해 주었는데 아이들이 쏟는 정성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미술시간에 정성 들여 각자의 텃밭에 푯말을 만들어 꽂아 놓았는데 유머러스하고 기발한 표현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해도 손색이 없겠다 싶다.아이들은 상추, 고추, 오이, 토마토 등을 심고, 잡초를 제거하고 매일 물을 주며 들여다본다. 텃밭상자의 작물들을 돌보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린다. “와! 살았어! 죽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 진짜 싹이 났어요!” “으악! 벌레다!” 아이들의 감탄사가 점심을 먹고 지나가는 선생님들의 발걸음을 텃밭상자로 이끈다.어제는 너무 속상해하는 한 아이를 보았다. “선생님, 누군가 우리 감자들을 만져서 못살게 한 것 같아요. 지난주는 안 그랬는데 오늘은 기운이 없어요.” 자세히 보니 주말... -
교사로서의 자리
‘스승의날’이라고 30대가 된 제자들이 연락을 해왔다. 고맙고도 민망한 일이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스승이 웬 말이냐고, 이젠 술친구나 하자고 해도 ‘쌤’이란 호칭을 잘 놓지 않는다. 그들은 고마웠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시절의 미숙함이 먼저 떠오른다. 20대 중반의 풋내기 선생 시절, 망아지 같은 사춘기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툭하면 울고 화내고 야단쳤다. 마음만 앞서고 몸은 따라주질 않으니 용을 쓰다가 방학식을 마치고 나면 시름시름 앓았다.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외려 내가 목격한 훌륭한 선생들은 ‘선생’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입학할 때부터 모자를 눌러쓴 채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심한 따돌림을 겪은 후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했다. 관심을 보일수록 물러서는 아이에게 더 다가가지도 못하고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나, 무력감과 초조함을 느꼈다.입학 후 한 학기가 끝나갈 즈음 아이가 ... -
미래 교육의 두 가지 방향
도가 경전인 <열자(列子)>에 기인지우(杞人之憂)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나라 사람 중에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면 어쩌나 걱정하느라 식음을 전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딱하게 여긴 어떤 사람이 사실적인 이치로 깨우쳐주니 그 사람이 크게 기뻐하였다는 내용이다. 교과서나 사전에는 이 단어가 ‘지나치거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의미로 정의되어 있어서 대개 지나친 걱정이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잠시 생각해보는 정도로 학습을 하게 된다.학생들과 이 고사의 의미를 좀 더 다각도로 생각해보고 싶어서 단어의 뜻, 의미에 대한 설명을 모두 없애고 한자와 번역문, 필요한 배경지식, 그리고 질문 하나만으로 학습자료를 만들었다. 자료를 공부한 뒤 ‘이 이야기를 배우며 내가 생각해보게 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글쓰기를 하였는데, 놀랍게도 ‘쓸데없는 걱정’과는 전혀 다른 문장들이 학생들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두려움은 무지로부터 온다.” “두려움과 앎은 비례한다.” “두... -
좋은 교사의 조건
신규교사들은 아이들을 처음 만날 때 “몇 살이세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이를 알게 되면 결혼과 출산 경험을 추정하고 교사의 수준(?)을 파악한다. 어떤 신규교사는 학부모에게 애를 안 낳아봐서 학생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25년 차 선배 교사도 초임 시절 애를 낳고 키워봐야 참교사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젊은 교사들이 종종 겪는 일이라고 위로했다. 출산과 양육은 교직의 역량에 필수적인 조건일까?출산과 양육에 대한 의미 부여는 교사마다 달랐다. 자녀가 있는 교사에게 물었더니 자식이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고 그런 까닭에 교실에서 학생의 부족함을 너그럽게 봐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힘든 학생을 만나면 자신은 1년만 책임지면 되지만 저 아이 부모는 오죽하겠나 싶어 이해하는 마음도 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교사는 출산과 양육을 거치며 자신이 한 인격체가 아니라 젖소가 된 것 같았다고 했다. 학교 일에 집중하는 것은 고사하고 책 한 줄 읽지 못했다... -
할머니는 귀라도 커졌어요
올해부터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은 책을 한 권씩 소리 내어 읽어야 나가 놀 수 있기로 하였다. 일찍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점심을 채 먹기 전에 돌아오므로 이때부터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까지 얼른 부지런을 떨어야 한 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다.처음에는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 몇을 위해 마련한 일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읽기를 어려워하는데,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고 하여 시작한 일이다. 하지만 누구만 읽어야 한다면 왜 그런지도 설명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서는 읽기가 자리나 잡을 수 있을지 염려도 되어 그냥 누구든지 한 권의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 잠시 나가 놀 수 있기로 한 것이다.지난해까지만 해도 영 한글을 못 떼어 걱정을 사던 아이가 처음에는 떠듬떠듬 읽기를 시작하더니, 매일 조금씩 거듭되는 읽기에 지금은 어느새 능숙해졌다. 처음에는 저도 제 자신이 못 미더운 눈치더니, 언젠가는 그런 자신의 변화를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칭찬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