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능력인가?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의 진화]무엇이 능력인가?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그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본인의 능력”이라고 우긴다면야 못 말리겠지만, 부모를 결정하고 태어나는 자식은 없다. 이게 진실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것부터 우연이다. 아니, 우리네 부모가 사랑을 나눌 만큼 불꽃이 튀는 것부터가 우연의 연속이다. ‘필연’이라는 단어는 우연의 연속을 부르는 애칭일 뿐이다. 사랑의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다는 고백이 대개 1년 내로 첫번째 큰 고비를 만난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필연적 만남을 주장하는 남녀가 사랑을 나눴다고 치자. 이때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가 섞이는 이른바 ‘유전자 재조합’ 과정에서도 지배자는 우연이다. 부모가 잘생기고 머리가 좋다고 해도 이 재조합 과정은 우월한 유전자를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부의 외모와 모의 두뇌를 바랐지만, 반대로 부의 두뇌와 모의 외모를 더 닮은 아이가 나올 수도 있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는 지능과 외모 면에서 출발점이 서로 다르다. 다르게 태어나며, 그 과정은 우연에 의해 지배당한다.

문제는 이런 우연적 속성들이 타인 평가의 주요 목록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은 모든 집단에서 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들에 대해 일단 호감을 갖는 행동은 매우 보편적이다. 게다가 그것은 남녀관계에서도 매우 특별한 항목이다. 인간의 짝짓기 상황은 더 복잡하긴 하지만, 멋진 외모와 똑똑함을 선호하는 성향은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진화적 이유는 명확하다. 똑똑한 사람은 나와 내 공동체에 도움을 줄 능력이 되는 사람이니 일단 호감을 표시한다. 멋진 외모(가령, 좌우대칭)도 좋은 유전자를 지닌 존재임을 드러내는 신호이니 잘 포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집단생활을 해온 우리 사피엔스에게 외모와 지능은 생존과 번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성향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똑똑하고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다니!’라고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이런 현상에 대한 어설픈 이해로부터 인간의 능력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싹틀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지능과 외모가 ‘우연적’으로 ‘타고난’ 것임을 간과하면서 오해가 생긴다. 쌍둥이 연구에 따르면 지능의 유전성은 대략 57~80%이고 외모 중 신장(키)의 유전성은 대략 80%이다. 즉, 어떤 큰 집단에서 나타나는 개인들의 키 차이 중 80% 정도는 유전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현대 행동유전학이 밝혀낸 진실이지만, 수십만년 동안 수렵 채집을 하며 지냈던 사피엔스의 뇌에는 낯선 사실이다. 우리 뇌는 타인에 대해 우리가 선호하는 속성(지능이나 외모)들이 우연에 의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태어난 이후에 그가 성취한 것인지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런 특성을 그저 좋아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타고난 지능과 외모가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감지하게끔 진화했을 수도 있다.

한편, 지능과 외모를 그 사람의 능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무엇이 능력인가’에 관한 반쪽짜리 진실만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유능함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다. 하지만 사회심리학 연구가 보여주는바, 사람들은 유능함만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얼마나 따뜻한가, 도덕적인가도 평가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다. 예컨대 똑똑해 보이지만 타인을 해할 수 있는 나쁜 성격이 감지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똑똑함으로 나(우리)를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게 유능하지 않아도 착하기 때문에 나와 우리 집단에 더 큰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주변에 너무도 많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 담론이 유능함에만 주로 초점이 맞춰진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물론 우리는 대개 지능과 노력이 함께 빚어낸 ‘성과 자체’를 평가하긴 하지만, 그 결과조차도 우연하게 타고난 차이에서 시작된 것임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타고난 지능으로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경험하는 ‘과정 자체’를 어떻게 북돋을까에 대한 더 큰 고민이다. 공정한 사회를 향한 정치인들의 비전은 개인의 능력이냐 구조의 불평등이냐의 틀을 넘어 우연적 존재로서의 인간 조건을 깊이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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