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녹

이파리로 가득한 숲속에서

나무는 얼굴이 어디일까 생각한다

바람의 힘으로 사랑에서 떨어질 수 있다면

이파리들은

나무가 쥐고 있는 작은 칼

한 시절 사랑하다 지는 연인

누군가 보자기가 되어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

떨어지기 위해 물방울이 시작하는 일

두세해 전 얼었던 마음이

비로소 녹고

어디선가 ‘남쪽’이라는 꽃이 필 것도 같은

박연준(1982~)

“나무는 얼굴이 어디일까”. 참 재미있는 생각이다. 얼굴은 앞과 뒤를 구분하고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이다. 이 시는 세상에 ‘사랑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바람의 힘”과 같은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 수 있지만, 사랑은 “안간힘을 쓰”며 바닥까지 떨어져도 흐르는 물방울처럼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얼었던 마음”도 녹이고 왜곡된 시선을 바꾸는 게 진정한 사랑이다. 제목이 시사하듯, 사랑은 녹을 걷어내고 초록에 둘러싸여 꽃을 활짝 피우는 일이다.

이 시는 시집 <베누스 푸디카>에 실려 있다. 베누스 푸디카는 비너스상이 취하고 있는 ‘정숙한 자세’를 뜻하는 미술용어다. 한 손으로 가슴을, 다른 손으로는 음부를 가리는 자세를 말한다. 여성의 몸 주요 부위를 가리면 예술이 되지만, 노출하면 외설이 됐다. 내가 가리면 스스로 부끄러운 것이요, 타인의 요구라면 억압이다. ‘에덴동산’에서 보듯, 애초에 부끄러움은 없었다. 뭇시선을 받으며 서 있는 비너스상보다 편견으로 바라보는 당신이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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