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겪었다고

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먼저 겪었다고

장대비 모질게 쏟아져 쏟아져서

따뜻했던 꽃들 식은 끄트머리에

손 마디마디가 까질 듯 쓰라린데

누워 식은 꽃잎들 누워서도 꽃답네

도르르 말리는 저릿한 품 애써 내주며

나중 내리는 꽃잎들 다독거리네

먼저 겪었다고.

한영옥(1950~)

며칠 전, 소나기 한줄기 지나가곤 그만이다. 연일 햇볕 쨍쨍 내리쬔다. 그늘막에 들어선 사람들도, 담장 위로 고개 내민 능소화도, 나무 그늘로 대피한 비둘기도 무더위는 버겁다. 가끔 먹장구름 앞산에 걸려도 끝내 비가 오지 않는다. 서해 건너 수해와 남녘의 국지성 호우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지만 북상하지 못한다. 여름이 여름다워 좋긴 하지만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사이 입추도 지났다. 한결 선선해진 새벽이 그나마 위안이다.

이 시에선 장대비 쏟아진다. 무슨 꽃인지 알 수 없지만 모진 장대비를 견디지 못한 꽃잎들 바닥에 쏟아져 나뒹군다. 시련이다. 먼저 핀 꽃잎들 먼저 떨어지고 나중에 핀 꽃잎들 나중에 떨어진다. 꽃 진 자리 “까질 듯 쓰라”리다. “누워서도 꽃답”게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먼저 진 꽃잎들, 언제 떨어질지 모를 꽃잎들 애처로이 바라본다. 애련이다. 이미 겪어봐 그 고통 잘 아는지라 더 안쓰럽고 안타깝다. 마침내 꽃잎들 떨어지면, “저릿한 품”으로 안아주며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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