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시대 망령 ‘셧다운제’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심야는 적막한 시간대였다. 1945년 9월8일 미 군정 치하에서 시작된 야간 통행금지 조치는 1982년 1월5일 해제될 때까지 이 땅의 밤을 더욱 깜깜한 세상으로 몰아넣었다. 시민들이 심야통행의 자유를 누린 것은 기껏해야 4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상황에 따라 통행금지의 강도는 오르락내리락했다. 대체로 0시에서 4시 사이가 통금시간대였지만, 계엄령이 선포되는 등의 상황에서는 22시, 빠르면 21시부터도 통행금지가 시작되기도 했다. 통행금지 시간대에 돌아다니다 순찰 돌던 경찰에게 잡혀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 시기의 많은 한국 영화들이 통금 사이렌에 길이 막히는 상황들을 그려낸 덕분에 그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통행금지는 아주 낯설지는 않다.

국가가 개인의 시간과 행동을 제약하면 그 효력은 단순히 그 신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신 활동과 사상에 대한 통제로까지 이어진다. 혼란기와 전시의 치안유지라는 명목으로 시행되었던 통행금지가 전쟁 이후에도 이어지는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독재정권이 체제 유지를 위한 통제장치로서 통행금지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독재정치가 사라진 지금, 한국 사회에서 누가 개인의 시간을 통제한다고 하면 언젯적 이야기를 하느냐고 타박받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맥락의 제도가 여전히 작동하는 영역도 있다. 16세 미만 청소년은 2011년 11월 이후 0시부터 6시 사이에 온라인게임에의 접속을 원천적으로 차단당한다. 셧다운제라 불리는 제도에 의해서다.

셧다운제는 청소년을 과도한 게임이용으로부터 보호하고 청소년의 수면권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도입되었다. 하지만 청소년 보호라는 사회적 책임을 위한 제도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명분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중문화콘텐츠는 기본적으로 등급 심의라는 제도를 거치며, 심의에 따라 미성년자 및 청소년들의 이용가능 여부를 부여받는다. 대부분의 사회는 이 방식을 통해 미디어콘텐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고 있으며 한국 또한 다르지 않다.

이미 등급 심의를 통해 청소년 보호를 위한 미디어 필터링 기능이 작동하고 있고, 설령 그 효과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합의해 만든 제도를 강화·보완하는 방향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 셧다운제는 그 심의 자체를 무시한 채 매체에 대한 원천적인 차단만을 생각한다. 심의 대신 차단이라는 방식은 과거 한국의 밤을 묶었던 야간 통행금지의 발상과 맥을 같이한다. 치안을 위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실질적인 밤의 안전을 추구하는 대신, 밤거리 통행 자체를 통째로 막아버리겠다는 것은 독재시대의 발상에서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한 낡은 방식이다.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 문제는 그렇기에 단순히 아이들에게 게임을 허락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 사회 구석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 삼청교육대가 있었던 덕분에 범죄가 없어졌다느니 통금이 있던 시절에는 어쨌든 도둑이 없지 않았느니 하는 통제사회에 대한 향수와 맞서는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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