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의 침몰, 녹색성장의 귀환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문제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다. 얼마 전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위원회(안)’는 2개의 안이 ‘탄소중립’이 아니라는 비판을 가장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2030년 NDC’가 빠진 것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미리 못 박아 두지만 요즘 유행어가 된 ‘2050 탄소중립’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다. 기후위기 대응 목표는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 기온상승을 1.5도로 제한하여 기후재앙을 막는 일이다. 온실가스는 대기로 배출되면 수십년 잔류하며 온난화 작용을 한다. 그래서 파리기후변화협약의 핵심은 ‘누적’ 온실가스 감축과 ‘2050 넷제로’까지 ‘감축 경로’의 지표인 2030년 NDC다. 2050년 전에는 슬렁슬렁 감축하다 2050년에 기적의 기술로 탄소중립을 달성해도 1.5도 제한에 실패하면 기후재앙은 피할 수 없다. 지금 NDC를 제대로 정해서 줄이지 않으면, 2050 탄소중립은 무의미하다.

탄중위는 왜 NDC 없는 시나리오를 발표했을까? 탄중위는 시나리오 발표 때 국회에서 NDC를 논의 중이며 정부는 NDC 초안 작업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여당은 탄중위에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논의한다며 2030년 NDC를 시행령에 넣자고 했다. 탄중위는 정부의 NDC 작업을 바라만 보면서, 여당과 NDC 떠넘기기를 한 셈이다.

탄중위가 왜 이럴까? 규정상 ‘심의기구’인 탄중위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하지 않고 심의한다. 시나리오는 다른 곳에서 ‘작업’한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정부는 “전문가로 구성된 기술작업반”을 운영하여 “기술작업반 시나리오(안)”를 마련했다. 탄소중립 초안은 ‘컨트롤타워’라는 탄중위 출범 전에 만들어졌고, 탄중위는 이 ‘안’을 심의해서 ‘위원회(안)’를 도출했다.

MB 정부의 녹색성장 귀환으로
지금 그린워싱의 법제화 국면
탄중위는 결국 정부의 들러리
‘1.5도 제한’에 복무하지 않는
법과 위원회는 존재 이유가 없다

이 안은 “45개 국책연구기관, 10개 분과, 72인”의 기술작업반이 반년간 집중해서 만든 자료를 최대 4번의 ‘분과별 심의’로 만들었다. 아무리 “압축적이고 밀도 있는 논의”라 해도 그 한계는 너무나 뚜렷하다. 정부가 가져온 초안에 NDC는 없었고, 탄중위는 분과별 심의만으로 NDC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심의기구라서 만들 권한도 없지 않을까? 탄중위는 ‘탄소중립사회’라는 새집을 짓기는커녕 누군가 마련해준 헌 집의 벽지 바꾸기에도 급급한 신세다.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실현 가능한 2030년 감축목표”를 내놓겠다고 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권고 준수가 아니라 정부가 판단해 결정하겠다는 속내를 비쳤다. 여기에 화답하듯 지난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을 의결하며 2030년 NDC를 ‘2018년 대비 35% 이상’으로 하고 구체적인 목표는 시행령에 넣기로 했다. 야당은 IPCC 권고 수준의 NDC를 주장했지만 여당이 무시했다. 의결된 법안에 따르면 2030년 탄소 배출량은 IPCC 권고보다 1억t가량 늘어난다. NDC를 줄였으니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지금부터 계속해서 늘어난다. 2050 탄소중립과 무관하게 국제적 기후위기 대응 목표인 ‘1.5도 제한’에 역행하는 짓이다. ‘기후 악당국가’답다.

대통령, 정부, 국회, 산업계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정부가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 이후 인간의 삶에 자연이 보내온 청구서다. 이 청구서는 ‘2010년 대비 최소 45%’의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한다. 우리가 무시하면 청구서에 벌금이 추가되어 고통만 늘어난다.

더 큰 문제는 애초의 탄소중립기본법이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으로 변신한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 법안에 ‘녹색성장’이 무려 167번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의 귀환이다. 녹색성장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이미 훤히 드러났다. 그래서 현 정권의 실체도 훤히 드러났다. “우리는 공동의 안녕이 아니라 자본에 복무한다.” 자본은 성장을 추구하고 성장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린다.

이 법이 제정되면 탄중위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된다. 존재 근거를 이 법에 둔 탄중위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얼마 전 IPCC는 현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1.5도 상승 시점이 10년가량 당겨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평균하면 2030년대 중후반경이다. 혹시나 하며 헛발질할 때가 아니다. 탄중위는 ‘35% 감축안’이 들어오면 받지 않을 수 없다. 영락없는 정부의 들러리다. 우리는 지금 그린워싱의 법제화를 보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의 지상 목표인 ‘1.5도 제한’에 복무하지 않는 법과 위원회는 존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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