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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고시, 이러다 다 망한다
‘7세 고시’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유행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려고 보는 시험이란다. 7세는 늦다며 ‘4세 고시’도 생겼다. ‘초등 의대반’과 ‘초등 특목반’도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초등학교 전부터 사교육이 기획한 ‘입시 경쟁’에 내몰린다. 아동학대나 마찬가지다. 지난 13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보면 6세 미만의 아이 중 절반가량이 사교육을 받았고, 영어 사교육 비용으로 1인당 월평균 154만원을 썼다. 이 정도면 사교육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다.초중고 사교육 바람도 꺾이질 않는다. 같은 날 통계청이 밝힌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사교육비는 3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학생 수는 8만명이 줄었는데 총액은 오히려 2조원이나 늘었다. 학생 10명 중 8명이 사교육을 받았고 월평균 59만원을 썼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에 학부모 허리가 휜다.... -
‘회복과 성장’, 그리고 한계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는 요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화두는 ‘회복과 성장’이다. 지난 10일 국회 연설에서는 ‘공정 성장’과 ‘잘사니즘’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성장의 기회와 결과를 함께 나누어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기본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 위원회’를 설치한다고도 했다. 성장을 둘러싼 우클릭 비판에 ‘분배’를 더해 응답한 셈이다.성장해야 분배할 수 있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성장한다고 분배가 그냥 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껏 성장에 목매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자본주의에서 성장은 정언 명령이다. 정부와 기업은 늘 구조적인 성장 압력을 받는다. 은행 이자를 갚고 투자자 수익을 보장하려면 기업은 매년 더 많은 이윤을 내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으로 고용 수요가 줄어 실업자가 느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문제는 성장 후 분배다. 성장의 결실이 필요한 곳으로 돌아갈까?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
‘탄핵 혼돈’ 넘어 체제 전환 꿈꾸자
12·3 불법 계엄 이후 혼돈 상태를 보면 마음이 답답하고 복잡해진다.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이 사태가 종식되지 않을 거라는 조짐이다. 대통령 구속으로 이 난동이라면, 대통령 파면은 어떨까? 조기 대선을 치른다고 해도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 확정 전에 치르는 대선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모두, 사태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사태의 시작이다.정치적 양극화가 만든 진영의 골이 깊고 넓다. 이제는 진실이 아니라 어느 편이냐가 중요하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이 불법 계엄으로 나라를 일거에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리고도 관저에서 구치소에서 버티는 것도,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국회에서 관저 앞에서 감싸고 받드는 것도 다 기댈 진영이 있어서다. 극우 진영이 이들을 지지하고 이들은 극우 진영을 선동한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와 법원 난입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범죄를 정당화하는 음모론... -
새해, 광장에서 새로운 세계를 소망한다
‘12·3 불법 계엄’ 사태에 맞서 열린 ‘2024 광장’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이다. 무엇보다 청년 여성이 대거 참여했다. 시위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촛불과 정형화된 깃발 대신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기발한 문구의 깃발이 광장을 수놓으며 참여자의 정체성을 알렸다. 장엄·비장한 민중가요와 경쾌·발랄한 K팝이 중장년과 청년을 하나로 연결했다. 위기를 넘는 방식이 달라졌다. 광장은 즐기며 저항하는 축제의 장이었다.음식과 음료 값을 미리 계산해 집회 참여자에게 제공하는 선결제 물결은 해외까지 퍼졌다. 앳된 목소리로 떡집에 전화해 가장 싼 떡 10개를 결제했다는 소식이 겨울 광장을 덥혔고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1980년 광주 양동시장의 주먹밥이 부활했다. 지난 21일 윤석열 체포를 내걸고 용산으로 트랙터를 몰고 가던 ‘전봉준투쟁단’이 남태령에서 경찰 차벽에 막히자 설렁탕, 닭죽, 핫팩 등 후원 물품이 몰려왔다. 선결제가 ‘배달 선결제’로 진화했다. 광장은 연대의 장... -
2024년 가자지구, ‘소녀가 온다’
한 해의 끝자락,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때다. 창문 아래 빈 의자에 신문에서 오려낸 빛바랜 사진 세 장이 놓여있다. 모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진이다. 하나는 라파의 난민촌 사진이다. 한 소녀가 쪼그려 앉아 물 한 컵으로 설거지를 한다. 앞에 놓인 빈 냄비 세 개에 무엇이 있었을까? 뭘 먹기는 했을까? 소녀는 무표정하다. 무표정한 얼굴 속에 감추어진, 그 또래가 감당해서는 안 될 경험을 생각해본다. 다른 두 사진을 보니, 이스라엘이 소개령을 내린 칸유니스에서 사람들이 한밤중에 피란길에 나섰다.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짊어진 보따리가 단출하다. 짐이 줄어든 만큼 삶이 파괴되었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는 다른 손으로 물 한 통을 움켜잡고 있다. 이들도 표정이 없다. 그 무표정함 속에 숨겨진 절망과 분노를 가늠해본다. 내가 사는 수녀원 뜰에서 재잘대며 마음껏 뛰노는 이곳 아이들의 모습과 겹치면 어느 한쪽이 비현실처럼 보인다. 혼란스럽다.가자지구 보건부는 전쟁 발발 1년째인 지난 1... -
용산이 입을 열면 남한은 몸을 떤다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했다. 러시아 하원은 북·러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 조약’을 비준했다. 대북전단과 오물풍선, 대북·대남확성기 방송, 평양 상공 무인기와 차원이 다른 국면이 전개되며,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가파르게 고조된다. 군사적 완충장치를 모두 없앤 터라 전쟁 위기감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평화가 절실하다.평화는 힘으로 지킬 수 없는 것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하는 ‘힘에 의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지금 전쟁 중인, 주변국 군사력을 압도하는 이스라엘과 러시아를 보라. 평화인가? 늘 경비가 삼엄한 주한 미국대사관을 보라. 평화인가? 힘에 의한 평화는 불안과 파괴의 일상을 가져다줄 뿐이다. 윤 대통령은 평화는 구걸로 지킬 수 없다고 하지만, 힘으로만 지킬 수 없는 게 또한 평화다. 힘은 한쪽이 키우면 다른 쪽도 키운다. 평화가 아니라 불안이 자란다. 평화에 힘이 필요하다면 대화는 더 필요하다. 대화는 구걸이 아니다.“통일, 하지 맙시다.” 최근 임종석 전... -
농촌, 아픈 우리 손가락
지난 6월 말 북한산에서 손을 다쳤다. 평소 자주 다니던 익숙한 길이었는데 발이 꼬이면서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졌다. 다른 데는 괜찮은데 오른손 중지와 약지가 몸에 깔려 접질렸다. 자고 나니 손가락이 많이 부었다. 병원에 가니 당분간 손가락을 쓰지 않으면 괜찮아진다고 했다. 근데 그냥 뒀더니 시간이 갈수록 더 불편해졌다. 자고 나면 손가락이 뻣뻣해져 굽혀지질 않는다. 손가락을 천천히 힘껏 당겨야 겨우 주먹을 쥘 만큼 굽혀진다. 안 되겠다 싶어 다른 병원에 갔더니 인대를 다쳤는데 재활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다. 거기서 일러준 대로 재활운동을 하고 나면 손가락이 조금 편해진다. 그런데 금방 다시 뻣뻣해진다.손가락이 아프니 ‘몸의 중심은 머리나 심장이 아니라 지금 가장 아픈 곳’이라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요즘은 다친 손가락이 내 몸의 중심이다. 시간과 신경을 가장 많이 쓴다. 그러면 몸이 편안하고 그러지 않으면 불편하다. 어디 몸만 그럴까. 우리 사회도 가장 아픈 곳을 중심에... -
빗방울달, 타오름달이 가고 거둠달이 왔다
책상에 놓인 달력을 보니 7월은 ‘빗방울달’, 8월은 ‘타오름달’로 되어 있다. 이번 여름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폭우와 폭염의 여름이 지나간다. 서울과 제주 등 전국 곳곳이 역대급 폭염으로 열대야 최장 기록을 다시 썼다. 가축은 100만마리 이상, 어류는 대량으로 폐사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인도와 파키스탄 등 세계 곳곳이 여름을 앓았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더울 확률이 점점 커진다. 폭염의 일상화로 여름이 재난의 때가 되고 있다.기후재난으로 세상이 요동치는데 지금 정부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서 한다. 지난 7월30일 환경부는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 등에 대비해 댐 14개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기후위기 대응댐’이라는데 실제로는 ‘기후위기 역행댐’이다. 댐 건설 과정에서 배출될 온실가스와 파괴될 자연생태계만 생각해도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댐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 철거한다. 극한 호우 시대에 댐은 홍... -
불법파견,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
지난 6월24일 일어난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폭발화재 사고는 ‘사회적’ 참사다. 개인 탓이 아니라 사고의 개연성이 있는 구조나 관행(아리셀은 불법파견)을 사회가 방치해서 일어났기에 ‘사회적’이다. 사회적 참사는 사고가 나도록 방치한 사회를 고발하고 반성을 촉구한다. 우리 사회는 반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는 반복한다. ‘유령노동’ 현실 앞, 안전은 사라져당장 40명이 사망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38명이 사망한 2020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가 떠오른다. 당시에 지목된 문제점은 대략 이렇다.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 스프링클러와 방화 셔터를 잠가 놓았다, 화재경보기를 꺼놓았다, 대피로와 방화문을 폐쇄했다. 위험물질 리튬에 대해 교육하고 정기적으로 비상 대피 훈련을 했다면, 대피로가 있었다면, 작업장과 리튬전지 보관 장소를 분리했다면, 아리셀에서 한순간에 23명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사의 뇌관은 모두 고질적인 안전불감... -
금강, 자연 그대로 흐르라
집에서 가까운 정릉천에 청둥오리가 산다. 봄이 되자 겨우내 보이지 않던 오리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수컷밖에 보이질 않더니, 5월 하순쯤 되자 그동안 알을 품느라 보이지 않던 암컷들이 새끼를 데리고 엄마가 되어 나타났다. 엄마 오리는 연신 고개를 돌려 주위의 안전을 확인하고 먹이가 있는 쪽으로 새끼 오리들을 이끈다. 간혹 다른 오리가 새끼들 쪽으로 접근하면 서슴없이 다가가 거침없이 밀어낸다. 엄마 주위를 맴도는 주먹만 한 크기의 새끼들은 앙증맞기 짝이 없다.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오리 가족을 바라본다. “어머, 어쩌면 좋아.” “와, 쟤네 좀 봐.” 사람들은 새끼들이 뒤뚱거리는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엄마를 재바르고 야무지게 따라가는 모습에 감탄하며 모두 무사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험한 세상에 갓 태어난 작고 여린 생명에 대한 애틋한 마음일 테다.얼마 전 금강의 세종보에 다녀왔다. 이 지역은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은 곳과 얕은 곳이 섞여 있어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가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