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시절 나는 미국 외교 정책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경험과 역사, 세계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이해에 의해 인도되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미군을 전투에 투입할 때 우리는 중대한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을 때에만, 그리고 분명한 목표와 승리를 위한 계획, 갈등에서 벗어날 길이 있을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와 함께 우리 임무를 설정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미국의 핵심 국가 안보 이익에 분명히 초점을 맞춰야 한다. … 이것은 다른 나라들의 재건을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 시대의 종료에 관한 것이다.”
한 사람이 한 연설이라고 해도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각각의 주인공은 스타일과 정책이 극과 극으로 대비되는 미국 대통령들이다. 전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9년 10월23일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강행 의사를 밝히면서, 후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아프간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각각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군사 정책 독트린을 담고 있는 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라고 불린 데 반해 취임 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쳤던 바이든 대통령의 독트린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2월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어 올해 5월1일까지 아프간에서 철군하겠다고 약속하는 바람에 자신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는데, 실제로 아프간 철군은 두 사람이 공유한 목표였다. 그리고 아프간전에서 미국이 저지른 실수의 책임 역시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유한다. 9·11테러의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아프간을 침공한 이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거듭됐지만 공화당 정권도, 민주당 정권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공화당은 아프간 철수 작전에서 드러난 바이든 정부의 판단 착오와 실수를 맹공하고 있고 미국 내 여론도 이에 동조하고 있지만 종전 자체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호의적이다.
상극처럼 보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지만 해외 파병과 군사 개입에 관한 독트린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미국이 20년 전 9·11테러가 정착시킨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고 대응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시끄럽고 소란스럽지만 미국의 대전략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간에 쏟아붓던 국력을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는 데 돌릴 수 있게 됐다. 미국이 존재론적 경쟁자로 지목한 중국에서부터 러시아, 핵개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이란과 북한, 그리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사이버 위협과 테러리즘까지, 미국이 초점을 맞춘 상대들이다. 반면 동맹국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발을 뺀 아프간에서 벌어진 혼란과 국제적 위협은 미국의 리더십과 신뢰도에 생채기를 안겼다. 미국 입장에서 아프간전 종전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프간전 종전에서 미국이 얻은 역량과 타격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에 따라 바이든 독트린의 성패와 국제 질서의 판도가 가닥을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