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찍는 백반기행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오랜만에 광주 갈 일이 있었다. 지역에 가는 일은 신난다. 꼽아두고 있던 밥집을 가볼 수 있는 까닭이다. 한 만화가가 전국의 밥집을 주유하는 TV프로그램을 찍고 있는데, 나는 마음으로 찍는 백반기행을 하고 있다. 매일 담그는 김치를 주는 익산의 황등반점도 가보고 싶고 전주의 미가옥에 가서 콩나물국밥에 온 내장을 풀어버리고 싶고, 부산의 옛도심 중앙동에 있는 섬진강재첩국에서 ‘재칫국’(그들의 호칭이다)을 먹고 싶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광주는, 허다한 밥집의 전쟁터인 이 호남의 도시는, 어디 한 군데 골라 가기가 미안하다. 광주의 밥집은 어지간하면 한 가락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집들 중에도 빼놓지 못하는 곳이 여수왕대포다. 번듯한 건 하나도 없다. 인터넷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찾아가려면 그 옆 가게 주소를 찍어서 가야 하는, 금남로 가까운 양동시장의 닭전 구석에 있는 기묘한 밥집인 거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밥을 먹을 때 술을 마시며, 술을 밥 삼아 마시며, 술을 마실 때 밥을 안주로 한다. 막걸리 왕대포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격에 올라 있어서, 짠지 한 쪽에 마시더라도 이미 그것이 술이면서 밥인 형식이 된다. 코로나19로 오래 가지 못하다가 광주에 간 김에 아짐에게 전화를 넣었더니 반색을 한다.

“서울 손님이오? 아, 머달라꼬 온다 그라요. 먹을 것도 없는데.”

구불구불, 양동시장을 구경하고 가려는데 문득 익산 신귀백 형의 당부가 기억난다. “전라도에서는 고기 한 칼 끊어가는 게 예의요.”

양동식육점에서 한우 암소 양지머리 한 덩어리를 쑥 잘랐다. 도축 후 예냉하지 않은 따뜻한 앞사태 육회거리를 살 수 있는, 광주다운 시장의 정육점. 그 고기가 식기 전에 얼른 달려서 아짐을 보았다. 어디 노조 아저씨들 예약을 받았노라고, 나는 횡재한 것이다. 따로 메뉴도 없는 이 집에서 잘 얻어먹을 수 있는 건 대폿집 좋아하는 한 팀이 있어서 뭔가 아짐이 안줏거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인 것이다. 뜨끈한 계란말이에 갓 삶은 앞다리 수육과 생굴에 묵은 김치를 먹었다. 갈치값이 하늘을 찌를 때도 값을 올려 받지 않는 먹갈치 구이도 먹었다. 기차시간을 맞춰 나오려는데 성의로 드린 한 칼 고기값이라며 기어이 묵은지를 내민다.

“나가 줄 것이 김치밖에 더 있간디. 미안해서 그래, 고마워서.” 이 아짐의 집에 갈 때는 사실 큰맘을 먹어야 한다. 헤어질 때 눈물바람이시기 때문이다. “은제 또 보나, 은제. 나 장사 잘하고 있을탱게 또 오소, 서울 양반.”

나도 괜히 울컥하는 게 있어서 괜히 옆 튀밥집에서 일없이 강냉이를 사서 씹으며 돌아섰다. 밥집의 미래는 아직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 그래도 아짐의 왕대포는 사라질 것이다. 누가 이것을 물려받겠는가. 아참, 동네 노인들이 배고파 찾는 집이라 오전이나 이른 점심에는 국수를 판다. 3000원인지, 4000원인지. 물론 담근 묵은지를 푸짐하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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