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제작, 뭉쳐서 사는 법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공연으로 돈 좀 벌었다는 사람 찾기 참 어렵다. 뮤지컬이 잘된다지만, 소위 ‘킬러콘텐츠’ 몇 개 갖고 있지 않고서는 안정된 수익을 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요즘, 이미 흥행 검증된 작품이라도 객석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수익을 올리려면 전보다 공연 횟수를 늘려 잡아야 한다. 입장권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불안정하니, 출연료와 대관료 등 운영비를 더 들여서라도 만회하려고 몸부림친다.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서비스산업으로서 공연예술의 이런 구조적인 한계를 지적할 때 ‘비용질병’이란 말을 쓴다. 처음 제기한 사람의 이름을 따 ‘보몰효과’라고도 한다. 제조업은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임금 상승 폭을 메우고도 남는다. 하지만 노동집약적 서비스산업은 생산성 증가에 비해 임금이 더 빨리 올라간다. 비용을 절감하기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고 출연료를 깎을 수는 없지 않은가. 더 오래 대관해서라도 수익을 내보겠다고 나서는 게 만용은 아니다. 그나마 형편이 낫다는 뮤지컬이 이 정도다.

인기작의 경우 팬덤 문화가 형성된 뮤지컬이 이럴진대, 연극과 무용·음악 등 여느 공연예술은 말해 무엇하랴. 오래전부터 이에 대한 지원책이 여러 나라 문화정책의 근간이 됐다. 1960년대 연방 정부 차원의 미국 문화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인용된 이래 보몰효과의 ‘효과성’은 여전히 유의미한 걸로 간주된다,

이야기를 바꿔보자. 그럼 질병 탓만 해야 하는지, 치료 노력은 없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든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만큼 처방엔 능한 우리 문화정책이 그걸 놓칠 리 없다. 마침 이런 비용질병의 완치제는 아니더라도 면역력 높은 화이자급 백신은 될지도 모를 참신한 ‘제도’가 등장했는데, 생김새는 이렇다.

긴 이름의 ‘문예회관·예술단체 공연 콘텐츠 공동제작, 배급 프로그램’은 문체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한문연)의 올해 신규 사업이다. 사업명이 세련된 건 아니지만, 사업 내용은 친절하게 잘 녹아있다. 양질의 공연 작품 생산을 돕겠다는 뜻이다. 창작은 예술단체가, 유통과 배급은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전국의 여러 공연장이 맡는 구조다. 다 같이 이기는 게임을 해보자는 거다.

이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창작품은 전국의 ‘여러 극장’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관객’과 만난다. 인기 레퍼토리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다. 그건 곧 고질적인 환경에 노출된 공연단체에 비용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문연이 주최한 올해 첫 사업에 전국에서 모두 16개 단체(작품), 51개 기관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참고가 될 만한 최근 사례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요새 가장 주목받는 무용단은 ‘애매모호하다’는 뜻의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안무로 일약 스타가 된 김보람이 이끄는 단체다. 이 무용단과 고양문화재단·춘천문화재단·포항문화재단·천안문화재단은 최근 신작 <얼이섞다>를 함께 만들었다. 창작은 무용단이, 제작비와 배급은 문화재단 네 곳이 맡아 연말 각 지역을 돌며 관객과 만난다. ‘논두렁의 밭 매는 소리’ 등 옛 민초들의 질박한 소리에 기발한 춤을 섞은 신작은 높은 완성도 덕에 관객 반응도 뜨겁다.

이런 성공에 고무된 건 제작자뿐이 아니다. 김보람 예술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 “정말 감사한 일이다. 보통 한국에서 6개월 동안 만들어 신작을 올리면 한 이틀 공연하고 끝. 방송 댄스도 한 곡 연습하면 몇 달 공연하는데 말이다. 신작을 만들기 전부터 한 해 순회공연 일정을 잡는 유럽 시스템이 부러웠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다. 다른 단체들도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올해 ‘의정부음악극축제’ 개막작인 뮤지컬 <백만 송이의 사랑>(고선웅 연출)도 공동제작의 강점을 잘 보여준 매력적인 무대였다.

우수한 콘텐츠 확보는 예술단체와 공연장 모두 사활이 걸린 문제다. 모두 어려운 때, 모처럼 공연 현장의 활력소가 된 공동제작 지원제도가 비용질병 치료 특효약으로 두루 인정받아 ‘좋은 정책’으로 오래 남길 고대한다. 뭉치면 산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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