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무나 예술가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취약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문화란 무엇인가요? 예술은 무엇이며, 예술가란 누구인가요?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한 문장의 명료한 답을 원하는 이런 질문에 즉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의의 폭이 너무 넓어서 짧은 시간에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본질에 관한 물음’을 새삼 환기시켜주는 뉴스 하나를 접했다. 가수 겸 화가 솔비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작품이 인정을 받아 거래 시장에서 고가로 판매되는 ‘작가’(미술가)로 알고 있었는데, 여전히 시비를 거는 부류가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상을 탔다. 즉시 ‘진짜 미술가’를 자처하는 몇 분이 이거 별거 아니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참가비를 내면 ‘누구나’ 참가 가능한 그 아트페어의 구조와 유명인에 덧씌운 언론 플레이 등의 소산임이 이분들이 내세운 그게 별거 아닌 이유였다.

미학자 논객 진중권은 그분들의 그런 발상의 뿌리를 ‘전공 여부’에 두고 SNS에 “미대 나온 걸 신분으로 이해하는 게 문제. 작가는 신분이 아니라 기능입니다”라는 멘트를 날렸다. 솔비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탤런트 구혜선도 “우린 모두 예술가이기에, 참된 동반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그분들의 ‘갑론’에 ‘을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특정 분야의 설전이긴 하지만, 솔비와 관련한 이런 논쟁의 테마는 ‘예술가는 어떻게 되는(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이 주제에 관하여 ‘누구나와 아무나론’을 통하여 경험담과 견해를 소개하면 이렇다. 이 주제는 개인의 꿈과 욕망, 제도, 관습과 편견 등이 얽혀 있는 나름 복잡한 세계이다.

내가 맡은 재단에도 그 흔한 문예아카데미라는 교양강좌 프로그램 중, 작가를 꿈꾸는 창작 지도 과정이 있다. 오래전부터 중견 작가 이순원이 ‘선생님’인데, 학생 대부분은 어릴 적 문학소녀(대부분 학생은 여성)의 꿈을 잃지 않고 작가가 되고 싶거나 제대로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전공불문자’다.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꿈이 있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열린 교실이란 얘기다.

이런 자발적 참여자들 가운데 글솜씨를 벼려 등단이라는 등용문을 통과한 사례가 적잖다. 이 이순원 문하에서 저명한 등단 코스를 통해 8명의 작가가 탄생했다. ‘누구나 예술가’의 기적이다.

예술현장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부류를 만나다 보면 이런 사례도 있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창작지원금을 정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굴지의 지원기관들로부터 경쟁을 통해 확보한다. 이때 필요한 게 ‘예술인증명’이다. 일단 엄격한 자격기준을 통과해야 본선 심사에 오른다. 예술인 자격 심사는 예술가가 ‘아무나’ 될 수 없는 제도다. 한정된 예산에서 분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관습과 편견이 작동할 때가 있다. 코로나19 창궐로 문화예술계가 어려움에 처한 지난해, 우리 재단은 예술가의 참신한 기획아이디어를 선정하여 상금 형식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예의 예술인증명만 되면 누구나 지원하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데 한 건에서 결과를 놓고 시비가 일었다. 선정자 중 ‘비전공 아마추어’가 있다며 주변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법리검토까지 거쳐 그 대상자는 구제됐지만, 이미 자격기준을 갖춘 예술가라도 같은 부류의 전공자가 아니면 배척하는 관습과 편견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솔비의 사례와 견줄 만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문화예술정책은 ‘누구나 예술가’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예술가의 개념 규정을 폭넓게 하고 있다. 이는 매우 불가피한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동안 주요 공급처인 전공자 중심의 예술가 생태계는 대학 예술학과의 축소와 인원 감소로 인해 애를 먹고 있다. 반면 일반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생활예술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지역 창작 아카데미를 통한 작가 등단사례처럼 예술가가 되는 경로가 다양해졌다.

예술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제 간단명료하게 답할 수 있겠다. 누구나, 아무나 될 수 있다고.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한데, 그건 예술가로서 본인의 확고한 자의식이다.

그 자의식의 바탕은 험난한 여정을 통해 예술 소비자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열정과 자신감이다. 제도와 관습, 편견, 시스템은 그다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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