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와 자산가격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한 국가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일정기간 동안 이루어낸 경제활동의 성과를 기록한 것이 국민계정이다. 국민계정을 구성하는 5대 국민계정통계 중에서 국민대차대조표는 특정 시점에서 국민경제 또는 각 경제주체가 보유하고 있는 유·무형 실물자산과 대내외 금융자산·부채를 모두 기록한다. 즉 국민경제의 실물자산과 순금융자산 등 국부(國富) 또는 순자산의 변동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계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민순자산은 1경770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9.2배를 기록했다. 20년 전인 2000년에는 이 비율이 5.8배였다. 규모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국민순자산 즉 국부는 5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동안 명목 GDP가 3배 증가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다소 의아한 일이다. 순자산이라는 게 결국 현세대와 과거세대가 창출한 소득 중 소비되고 남은 부분들이 축적된 결과라는 차원에서 보면, 순자산과 GDP는 증가 속도가 비슷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축적된 자산의 시장가치 변동이 일정하다는 단서가 필요하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최근 매킨지(McKinsey)에서 글로벌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10개국의 국민대차대조표를 집계해 글로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서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글로벌 GDP 대비 글로벌 순자산의 배율은 6.1배였다. 10개국 중에서 미국이 4.3배로 가장 낮고, 중국이 8.2배로 가장 높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1970~1999년 동안에는 순자산의 증가가 GDP 증가와 궤를 같이했으나, 2000년 이후 순자산의 증가는 GDP 증가 속도를 빠르게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주로 자산가격 상승 때문이다. 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 10개국의 경우 순자산 증가의 77%는 자산가격 상승 때문이고, 저축과 투자는 28%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료 부족으로 동일한 기간을 비교할 순 없으나 2009~2020년 말까지 국민순자산 증가의 64%는 자산가격 상승이, 36%는 저축과 투자가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글로벌 대차대조표로 돌아가서 가계부문을 주목해 보자면, 거의 모든 순자산 증가는 주식가치와 부동산 가격 상승의 결과로 나타났다. 가계부문 순자산 증가의 90%가 주식가치와 주택가격 상승 덕분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대동소이하다. 가계 순자산 증가의 15%만이 순저축의 결과이고, 나머지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금융자산 가격효과 덕분이다.

이와 같이 높은 순자산-GDP 배율의 이면에는 낮은 자본생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자산의 운용 수익은 감소하고, 가치평가는 상승했다. 전통적으로 자금을 새로운 생산적인 투자로 유인하고 경영자들로 하여금 자산의 운용을 개선하도록 이끌었던 재무적 유인들은 감소했다. 그 대신에 투자자들은 가치평가에 의한 이득을 추구할 유인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듯 저축과 투자보다는 자산가격 상승에 의한 부의 축적은 부의 집중을 한층 심화시킨다.

국민순자산의 증대가 전통적으로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 대신 가치평가의 상승으로 이루어지는 건 순자산 증가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부에서는 고령화의 진전, 상위소득계층의 높은 소비성향, 지속적인 저금리 그리고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확대 등이 근본적인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지속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만일 그렇다면 많은 경제학 교과서들이 다시 쓰여야 할 것이다. 반면에 역사적으로 GDP와 같이 움직였던 순자산의 증가 흐름이 상호 괴리되는 것은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의 신호이며, 결국은 조정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한발 더 나아가자면, 생산적 자산에 대한 투자보다는 높은 주택가격이 성장의 엔진이고, 부의 증가가 기왕에 존재하는 부의 가격 상승에 의해 형성되는 경제가 과연 건강한 경제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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