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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의 묵언
  • [김택근의 묵언]혁명하기 좋은 때
    혁명하기 좋은 때

    6·3 대통령 선거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나라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모두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민심이 흉흉하다. 들여다볼수록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지구촌에서는 일찍이 소멸된 이데올로기가 오로지 이 땅에서만 춤을 추고 있다. 서민들의 눈물까지 삼켜버리는 불평등이 곳곳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또한 사회 전반에 ‘차별’이라는 폭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음습한 토양에서 생겨나 급속하게 번진 진영 논리가 국민들을 편싸움에 내몰고 있다.지난 3년 동안 정치 자체가 실종됐다. 술과 주술에 취한 권력은 몇번이나 제 살을 물어뜯었다. 그때마다 대한민국은 휘청거렸고, 용산에 모인 무리는 끝내 엽기적인 친위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의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분연히 일어나 불법, 위선, 거짓에 맞섰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리에서 은박지를 온몸에 감고 밤을 새웠다. 국민들은 키세스 시위대에 눈시울을 붉혔다. 어떤 포효보다 우렁차게 대한민국을 ...

    2025.05.20 20:43

  • [김택근의 묵언]총구에 스며든 민주주의 “죄송합니다”
    총구에 스며든 민주주의 “죄송합니다”

    나라가 대체로 평온하다.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키고 나라가 쪼개질 듯이 패를 나눠 싸웠지만 을사년 봄은 그런대로 화사하다. 과거에는 지배자의 흉기였던 헌법도 민주주의 성곽으로 튼실하다. 초헌법적인 왕을 꿈꾸던 자는 거꾸러졌다. 세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폭주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미국 시민들도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분명 특별함이 있다. 그 특별함에 들어있는 피와 눈물 또한 특별하다.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이른바 자생적 민주주의 국가이다. “중국은 아직 ‘못하고’ 있고, 인도는 영국에게 ‘배워서’ 하고, 일본은 패전 후 맥아더 장군이 ‘시켜서’ 하고 있다.”(김대중) 세계가 한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단시일에 이뤄낸 나라라고 상찬한다. 하지만 단시일에 가난을 물리치고 독재정권을 무너뜨림은 엄청난 일이었다. ‘역사적인 일’들이 끊이지 않았고 희생이 뒤따랐다. 우리 현대사의 압축 성장에는 민초들의 피눈물이 스며 ...

    2025.04.22 20:33

  • [김택근의 묵언]이 땅의 봄은 헌재에서 피어난다
    이 땅의 봄은 헌재에서 피어난다

    하늘을 이고 있는 산들이 불타고 있다. 거대한 화염이 태양을 가렸고, 시뻘건 화마는 동물들 비명마저 삼켰다. 집채만 한 불더미가 날아다녔다. 천년 동안 기도가 끊이지 않았던 고찰도, 마을을 지키던 당산목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산청, 의성, 울산, 안동, 하동 지역을 굽어보던 산들은 영묘한 자태를 잃고 검은 숨을 내뱉고 있다. 저 숲들은 왜 우리 시대에 사라져야 하는가.이리저리 불덩이를 던지는 바람은 무자비했다. 언론은 뜨거워진 바다에서 발생한 덥고 건조한 ‘마른바람’이 몰아쳤다고 한다. 마른바람! 비가 오지 않는 마른장마, 눈이 오지 않는 마른강치(강추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마른바람이 이토록 무서운 줄은 몰랐다. 지금 남녘을 휩쓸고 있는 바람에 어떤 것이 들어 있길래 이리 난폭한 것인가. 분명 만물을 일으켜 세우는 봄바람이 아니다. 봄바람은 보이지 않아도 보였다. 봄 언덕에서 맞던 바람은 풋내가 나면서도 달큼했다. 바람 그 속에는 야릇한 설렘이, 분홍빛 속삭임이 들어 있었...

    2025.03.25 21:10

  • [김택근의 묵언]김삼웅의 붓칼
    김삼웅의 붓칼

    김삼웅 선생이 생애 처음으로 소설책을 펴냈다. 바로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이다. 선생은 평전작가이며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소설 한 편 쓰는 것은 오래된 소망이었다. 소설 주인공은 단재 신채호이다. 어떤 허구도 경계하며 이미 <신채호 평전>을 출간했지만 다시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단재에게 날아갔다. 김삼웅은 단재를 늦게 알아서 죄송하고, 그래도 알게 되어 행복하다고 술회한 바 있다.신채호는 지식인과 언론인의 전범이고, 학자의 전형이었다. 양명학과 노장사상까지 사설(邪說)이라 내치며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던 유생들이 막상 나라가 망하자 일제의 은사금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섰다. 저명한 선비들이 공맹의 가르침을 일제에 바치고 일신의 영화를 챙겼다. 무려 700명이 넘었다. 하지만 단재는 엄동에 홀로 푸른 송백이었다. 김삼웅은 신채호의 삶을 이렇게 정리했다. “전근대의 철문을 연 계몽주의자, 치열한 항일구국 언론인, 담대한 애국문사, 주체적 민족주의...

    2025.02.25 21:06

  • [김택근의 묵언]나훈아와 남진, 그리고 어른
    나훈아와 남진, 그리고 어른

    은퇴 무대에서 나훈아가 왼팔을 들었다. “니는 잘했나?”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12·3 내란사태를 입에 올렸다. 작심했던 모양이다. 얼핏 들으면 정치권을 싸잡아 개탄하는 양비론처럼 들리지만 새겨보면 왼쪽을 향한 조롱이다. 내란을 획책한 대통령을 단죄함이 어찌 왼쪽·오른쪽 문제인가. 그럼에도 자신의 노래인생을 정리하는, 어쩌면 생의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왼쪽을 힐난했다. 가황이라 불리는 나훈아가 정치적 발언의 파장을 모를 리 없다. 아마 은퇴를 하기 전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자신의 어머니도 형제가 싸우면 둘 다 팼다고 했다. 어머니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훈아는 만인의 어머니가 아니다. 결국 나훈아는 왼쪽이 싫었던 것이다. 나훈아는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다음 공연에서 다시 독설을 날렸다. “안 그래도 작은 땅에서 경상도니 전라도니 XX들을 하고 있다”고 호통쳤다. 정치인들을 향해선 욕을 퍼부었다. “나보고 뭐라고 하는 저것들,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지 얻...

    2025.01.14 20:29

  • [김택근의 묵언]주여 어디로 임하셨나이까
    주여 어디로 임하셨나이까

    예수 오신 날입니다. 간밤 예수께서는 어디로 내리셨을까요. 그냥 사람의 마음으로 헤아려보면 내릴 곳이 마땅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늘에는 주술사들의 삿된 주문이 떠돌고, 땅에는 음모의 살기가 자욱합니다. 더욱이 거룩한 날에도 친위쿠데타를 옹호하는 무리가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저들이 감히 십자가를 들고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계엄령 선포가 하나님의 나라를 살리는 일이라고 악을 쓰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을 선동하는 사탄을 향해 그저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코 ‘십자가 군병’이 될 수 없건만 저들은 알지 못합니다. 어쩌다 그리스도교가 아스팔트 위로 끌려나와 극우세력의 뒷배가 되었을까요. 이상한 것은 이런 포악한 행태를 다른 교회들(특히 대형교회)이 방관하고 있다는 겁니다. 긴 침묵은 암묵적 동조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들이 숨기는 게 참 많고, 결국 그들 역시 예수를 팔아먹는 장사꾼들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성서를 벗어나 세상...

    2024.12.24 21:02

  • [김택근의 묵언]김진숙, 그가 다시 길 위에 섰다
    김진숙, 그가 다시 길 위에 섰다

    2021년 2월, 백기완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 여섯 글자를 썼다. “김진숙 힘내라.” 앞으로는 노동자가 억울하게 죽는 일, 해고되는 일은 없게 하라는 마지막 당부였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당시 그는 암과 싸우면서도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34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공권력에 의한 불법연행과 폭력을 인정하고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실로 피맺힌 호소였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김진숙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 대신 공돌이, 공순이로 살아야 했던 노동자, 그들에게 가해졌던 학대와 착취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를 요구했다. 수백명의 시민과 노동자가 함께 걸었고, 언론은 그의 행적을 비상하게 추적했다. 도보행진을 마치고 김진숙은 청와대를 향해 외쳤다.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한 ...

    2024.11.26 20:57

  • [김택근의 묵언]대통령의 허수아비 춤
    대통령의 허수아비 춤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백척간두의 위기인데도 김건희라는 이름 속으로 모든 현안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성난 민심은 여러 비리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 부인을 노려보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 간신이 들끓고, 정치브로커들이 위험한 칼춤을 추며 권력을 조롱하고 있다. 갈피를 못 잡는 권력의 빈자리를 노려 까마귀들이 몰려와 용산 하늘을 덮고 있다. 바람결이 음산하건만 대통령은 그 바람에 나부끼며 허수아비 춤을 추고 있다. 임기가 반이나 남았는데도 대통령 권위가 증발해버렸다. 퇴임을 앞둔 김철홍 인천대 교수가 대통령 훈장을 거부했다. 김 교수는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며 “나라를 양극단으로 나누어 진영 간 정치적 이득만 챙기는, 사람 세상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고 한탄을 쏟아냈다.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요즘 백성의 소리다. 폐망 직전의 구한말에도 그랬다. 고종이 임금의 권위를 잃고 아무한테나 상을 내리자...

    2024.10.29 21:18

  • [김택근의 묵언]농정에도 멸구가 붙어있다
    농정에도 멸구가 붙어있다

    수확을 앞둔 논들이 벼멸구의 침공에 초토로 변했다. 흡사 폭탄을 맞은 듯 군데군데가 움푹움푹 꺼졌다. 추석 전에는 황금색으로 출렁이던 들녘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중국에서 바람을 타고 건너온 벼멸구는 가장 먼저 호남 들녘을 유린했고, 그 피해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임실지방은 70%가 넘는 논이 멸구 서식지로 변했다. 임실군 오수에서 농사를 짓는 최영록 생활글 작가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서울에서 추석을 쇠고 내려와 보니 자신의 논이 온통 붉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새벽 들판에서 가슴을 쳤다.“이 노릇을 어쩐다냐. 그냥 논바닥과 농로에 주저앉아 하늘이나 원망하며 몇 시간이든 통곡이라도 할거나? 보느니 처음이고 듣느니 처음이다. 혹자는 30년 만의 재앙이자 재난이라고 한다. 그 더웠던 여름날 논두렁 풀을 깎고 풀약을 친 게 억울하다. 에이, 풀이고 농약이고 다 내비둬버릴(내버려둘) 것을, 하...

    2024.10.01 21:03

  • [김택근의 묵언]밀정은 있다
    밀정은 있다

    두 쪽으로 갈라진 광복절 기념행사는 생각할수록 엄중하다. 지난 26일 국회에 불려간 독립기념관장 김형석은 친일역사관 논란에도 1945년 8월15일을 광복절로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문수는 인사청문회에서 “일제시대 때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국적이 있느냐”며 당시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했다. 또 “(1919년 건립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정식 정부가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일은 1948년 8월15일”이라고 강변했다. 국무위원이 되겠다는 사람이 나라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 요즘 친일역사관을 품은 자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활보한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 행각은 이제 노골적이다. 일본에 퍼주고 굽신거리고 손을 비빈다. 국민들은 낯이 뜨거워 하늘을 볼 수 없다. 친일역사관을 지닌 자들은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바꾸고, 한국에서 추방된 독재자 이승만 망령을 환국시켜 건국의 아버지로 앉히려 한다....

    2024.08.2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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