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불복종

박종성 논설위원

국가는 소수에서 다수의 지배체제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변모해왔다. 현대 민주국가는 자의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를 확립하면서 공정성과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정의로운 국가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이나 규범의 빈틈 사이로 피해가 발생한다. 피해가 감내할 수준을 넘어서면 국가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저항의 형태는 무장투쟁, 습격과 같은 폭력적인 방식도 있고 집회, 시위, 소송, 가두행진, 불복종과 같은 비폭력적인 수단도 있다. 집회나 시위, 가두행진 등은 권력행위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만 불복종은 국가의 법을 거부하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시민의 불복종>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말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은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 불의한 정부가 또 불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요구한다면 나는 법을 어기라고 말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박종성 논설위원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행동에 나섰다. 자영업자단체들이 거리 두기에 대한 반대 시위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피켓을 들고 손실보상을 요구하는가 하면 정부에 대한 반발의 표시로 불을 끄는 소등시위에도 나섰다. 국가가 금지하는 시간외영업도 감행했다. 아예 정부 정책에 반대해 “24시간 영업하겠다”고 불복종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경우까지 나왔다.

그들은 왜 불법을 감행하는가. 코로나19 방역 성공은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참여에 달려 있다. 참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유의 제한이라는 불편을 감수하고 거리 두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득 감소를 감내하며 정책을 따르는 중소상인들의 협조다. 코로나19 초기 ‘성공적인 K방역’은 자영업자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 이어지고 있는데도 정상복귀는커녕 더욱 창궐하고 있다. 무원칙한 거리 두기 영업제한에 자영업자들의 인내도 한계에 달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법을 지키려다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보상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다. 정부도 집중되고 두꺼운 보상을 말했다. 말뿐이었다. 정부가 지금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해 쓴 예산은 66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 천문학적인 자금 가운데 직접 자영업자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8조원에 불과하다. 국가는 절박하지 않은 곳에 돈을 뿌리며 ‘88% 재난지원금 논쟁’을 벌였다.

어떤 이는 자영업자들이 엄살을 부린다고 말한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쓰면 될 것 아니냐”고 한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은 은행에 가게나 집을 맡기고, 그것이 모자라면 신용대출을 받았다. 제1금융권에서 2금융권, 대부업체, 사채시장에까지 손을 벌렸다. 사정이 열악할수록 금리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이들이 얼마나 쪼들리고 있는지는 빚 증가를 보면 알 수 있다. 2020년 소상공인의 빚은 50조원(19.3%) 늘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에는 6조8000억원(2.8%) 증가에 불과했다. 2021년에는 더욱 늘었을 것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지난해 급등한 금리는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자 부담은 자영업자의 목을 조일 것이다. 전기·가스 요금도 오는 4월 인상된다. 부동산 공시지가를 올리면서 이에 연동되는 건강보험료 등 각종 세금 부담도 커진다. 실손보험료도 20% 가까이 인상된다. 오르지 않는 것이 없다.

대선 후보들은 자영업자들에게 돈풀기를 약속하고 있다. 여당 후보는 피해 자영업자가 아닌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지급을 강력하게 주장한 바 있다. 야당 후보는 밑도 끝도 없이 50조원, 10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여당 후보도 10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묻고 더블로 가’ 이게 나라인가 놀음판인가. 진지한 고민이 없다. 나라 곳간의 형편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살펴 최선의 방안을 찾겠다는 진정성이 없다. 일단 반발하니 ‘떡 하나 주는 척하고 시간을 벌자’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코로나19 관련 법을 어겨 재판에 회부된 사람이 수천에 이른다. 그들은 법 위반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대신 ‘영세한 자영업자에게 가혹하고 불공평한 법’이라며 원망한다. “인간은 ‘부정한 법’에 불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마틴 루서 킹의 말이 떠오른다. 일부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법이 과연 ‘정당한 법’인가. 누가 이들을 범법자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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