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그리고 그다음의 승리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기쁘다. 마침내 저상버스가 오셨다! 2021년 12월31일 국회 본회의에 오른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이 만장일치 수준의 찬성에 힘입어 가결되었다. 20년간 계속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실이었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2001년.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노부부가 이동 중 사망했다. 서울 노원에 사는 아들과 설 명절을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 휠체어를 탄 노부부의 사고사였다. 지하철에 치여 죽은 것도, 지하철에 불이 나 죽은 것도 아니었다. 지하철을 타러 가던 중 사망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에서 이용하던 휠체어 리프트가 덜컹거리며 추락할 때, 생의 지상에 있던 그들은 지하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분노한 장애인들은 지하철에 모여 이동권 보장을 외쳤다.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해 지하철을 막았고, 저상버스 설치를 위해 시내버스를 막았고, 고향 가고 싶다는 이유로 고속버스를 막았다. 아니, 막았다는 표현은 비장애인 중심의 서술어였다. 장애인들의 시각에서 다시 말하자면, 분노한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수단을 같이 이용하겠다며 동승을 시도했다. 이들의 분노를 사회는 ‘투쟁’, ‘데모’, ‘민폐’라 낙인찍었다. 민폐뿐인 동승 시도는 20년간 계속되었다. 새천년에 시작된 장애인들의 대중교통 동승 시도가 꼬박 스무 해 지나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새 제도를 탄생시켰다. 서울이나 강원도나 차별 없는 수준으로 국가가 이동권을 보장해야 하는 책임의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국민 3명 중 1명이 교통약자임에도, 초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두었음에도, 전 국민의 이동권 보장은 오랫동안 중증장애인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사회적 배제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투쟁이 이끌어낸 이번 법률 개정은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역사에도 큰 승리로 다가왔다. 법률 개정이 있기까지 희생의 몫을 감당한 장애인들, 예컨대 오이도역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노부부, 아니 어쩌면 그 이전의 서울시에 모든 턱을 없애 달라며 사망한 김순석 열사,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장애인의 죽음과 경찰서를 들락날락한 활동가들의 고난까지 고려한다면, 승리의 무게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한 번의 큰 승리로 이동권이 완전히 보장되는 건 아니다.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특별교통수단의 지역 간 격차 해소’라는 큰 제도적 승리는 작은 승리의 조건을 새 과제로 주고 있다. 예컨대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의 경우 시내버스에 국한되어, 빨간 버스라 불리는 시외버스 등에는 여전히 적용되지 않으며, 시내버스 중에서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시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단서 조항을 안고 있다. 특별교통수단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에 자금을 지원해야 하지만, 이 지원을 위해 보조금법 시행령이 개정되어야 하고, 국가가 어느 정도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국비 매칭 비율 등은 정해진 바 없이 투쟁의 몫으로 남았다.

이동권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다가올 새 투쟁은 온 시민이 함께 이끌어가자. 평등한 이동권 투쟁은 단 한 차례 법률 개정으로 끝나지 않았고, 새 법률안의 행간 속에 숨어든 악마의 디테일을 온 시민이 감시하자. 한 번의 승리, 그리고 다음의 승리를 향해 모두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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