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시대, 통합의 정치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세계는 여전히 혼돈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둘러싼 일촉즉발의 위기는 자칫하면 3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야만적인 전쟁이 일어난다면 도대체 철학과 예술과 종교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약육강식이 판치는 세상, 이를 제어할 힘이 인류에게는 정녕 없는 것일까. 지구는 분열과 정복의 상처로 신음한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한국 사회 또한 정신분열증으로 피폐해지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그 증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군사정권의 이념인 반공과 멸공을 소환하며 피의 역사를 망각한다. 상대방을 선의의 경쟁 상대보다는 전투의 적으로 보는 환각에 둘러싸여 있다. 언론은 그들의 3대 준칙인 침소봉대, 부화뇌동, 아전인수의 와해된 언어를 무기화한다. 권력을 향한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의 행태는 간과 쓸개마저 내던져버린 비논리의 삶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거대한 정신병동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다.

전근대적인 주술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드는가 하면, 종교나 국가의 독단적 신념을 배제한 주체적이며 자율적인 근대적 시민성조차 확립하지 못한 모습도 보인다. 교육은 국민국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고 있다. 그 폐해는 비판적 이성의 마비로 판단력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영토상의 남북문제, 젠더상의 남녀문제, 정치상의 세대문제는 이 사회의 분열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

제 코가 석 자인 대학마저 분열증세를 앓고 있으며 사회적 비판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어느 대학의 이사장은 자신이 사회의 인재를 기르기 위해 대학을 세웠는데 학과의 교수마다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고 한다. 지성의 전당은 연줄과 이해관계로 분열된 지 오래되었다. 학문은 먹고사는 도구가 되었다. 이상을 향한 가슴을 압도한 머리가 대학을 지배하는 바람에 이해타산에 가장 밝은 사람들의 텃밭이 되었다. 기업의 하청기지가 된 대학은 인간을 기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외적 지식을 벗겨내고 내 안에서부터 스스로 ‘그렇다’라고 확신하는 앎이 있는가. 교육과 정보를 통해 내가 소유한 지식은 고작해야 세계 지식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판단이 옳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무엇에 기대어 상대방의 의견이 무조건 틀렸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돌고 돌아 언젠가는 나 이외의 견해도 옳은 날이 있지 않을까. 깊은 성찰 없이 편 가르는 분열의식이 이 사회의 모든 관계를 파편화한다. 왕이 된 개인주의가 극대화될수록 시장자본주의의 황금어장이 된다.

어떤 경우 정신분열은 개인에게는 진화의 징표이기도 하다. 한 세기 전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성자들이 반열에 오르기 전 여러 질병을 앓고 있음을 고찰하고 있다. 우울증과 간질병으로부터 환각과 망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과정을 통과한 그들은 깨달음이나 구원에 이르러 통합적 시각과 전일적 감각을 얻게 된다. 석존이나 예수의 방황을 떠올리면 된다. 완전한 인격체인 부처는 <법화경>에서 자신이 주재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나의 자식이라고 한다. 대비(大悲)의 마음으로 세상을 하나로 본다.

정치가들에게 이러한 통과의례를 거친 성자의 인품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표가 될 자격은 모두를 품는 인격이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확충되면 우주를 삼킬 수도 있다. 이웃은 곧 나다. 좋든 싫든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공존한다. 잠시 개별화된 폭포수의 물방울은 대해로 합류한다. 모든 강줄기를 품은 대해의 마음을 가진 자가 대정치가다.

다양한 계층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백성의 의식주의 품격을 지켜주는 것이 제일의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관계 속의 인간은 높은 차원을 지향한다. 공동체의 비전이다. 한류의 마중물이 된 <겨울연가>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되고 억눌린 일본 부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욘사마’가 변화무쌍한 세태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북극성 목걸이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거친 삶을 항해하는 백성들은 자신들이 의지할 북극성을 갈구한다. 따뜻한 연대, 양보의 대타협의 강을 건너 하나의 세계를 이룰 통합의 정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의 정신분열증을 치유하는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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