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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바랜 노란 리본
10년 전, 저마다 다른 꿈을 꾸던 싱그런 304개의 꽃봉오리들이 채 피어나지도 못한 채 떨어졌다. 팽목항 주변을 떠돌던 섧디설운 울음소리는 지금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진상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 또한 지지부진하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가슴에 달거나 가방에 매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은 어느 사이엔가 슬그머니 제거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내 지갑에는 10년 전에 넣어둔 카드가 꽂혀 있다.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부터 바꾸겠습니다.” 지갑을 열 때마다 민망해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살고 있는 나의 무심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우리부터 바꾸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생명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를 열고 싶다는 바람이, 열어야 한다는 당위가 그 문구 속에 담겨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생명을 담보로 이익을 추구하... -
내 마음속 깊은 ‘보배’ 찾기
최근 흥미로운 뉴스를 전해 들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들’ 목록에 국내 모 기업 창업주의 재산을 상속한 자매가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였다. 전 세계에서 33세 미만으로 순자산 10억달러 이상을 가진 사람이 25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의 도반은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러면서도 “조 단위가 넘는 재산을 물려받는 느낌은 어떨까”라고 아쉬운 듯 덧붙인다. 우리에게는 허황한 생각이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재미있는 상상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누구는 돈이 너무 많아 문제이고, 또 누구는 돈이 너무 없어 걱정이니 말이다. 많은 돈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어 안타까운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때로는 집착한다. 엊그제는 노스님께서 병세가 악화돼 응급실에 모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에 다녀... -
총선은 국민 화합의 장이 되어야
22대 총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집으로 배달된 국회의원 후보들의 선거 홍보물을 보면 일자리 조성, 교통 여건 개선, 공무원 처우 개선, 예방접종 추진, 심지어는 스포츠단 창단, 박물관이나 전문학교 설립 등도 있다. 이들은 만능박사인가? 그럼 행정부 공무원, 선출직 시장이나 군수, 지자체 의원들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 헌법에서 국회의원은 법률안 제출, 국가 예산 심의·확정, 국내외 조약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 국정 감사나 조사 등이 핵심 역할이다. 예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니까 그런 것 같지만, 후보들의 공약들을 다 이루려면 이웃 나라 예산을 끌어와도 불가능하다.위세와 함께 수억원의 혈세를 쓰는 국회의원에겐 합당한 역할이 있다. 그들의 정치 수준은 한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좌지우지한다. 서민생활을 파탄 낸 행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비판, 검사들의 권력 독점으로 합리적인 국가운영을 무너뜨리는 현재의 통치 행위를 타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는 한국 ... -
고통이 주는 선물
‘내 인생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만나는 이마다 이런 하소연을 한다. 행복은 저 멀리 신기루처럼 깜박일 뿐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전시된 타인들의 행복한 모습은 우리의 남루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감당해야 할 인생의 무게가 태산처럼 느껴질 때 비애감도 덩달아 커진다. 고달픔, 서러움, 억울함의 감정은 무거운 추가 되어 우리를 심연으로 잡아당긴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순간 지금이라는 기적을 한껏 누리지 못한다. 행복의 신기루를 좇는 이들일수록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통은 즉시 제거되어야 할 적이다. 고통은 행복의 철천지원수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병철 교수는 고통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통에 대한 내성도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 일에 연루되려 하지 않는다. 사랑조차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진통제를 복용하... -
동일본 대지진과 죽음에 대한 단상
2011년 3월11일 나는 학업을 위해 도쿄에 있었다. 수업이 한창일 때(오후 2시46분) 갑자기 15층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살면 으레 경험하는 일상적 미진이 아니라, 굉음이 들릴 정도로 건물 바닥과 외벽이 요동치고 있었다. 일본인 동료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니, 그들도 당황한 건 매한가지였다. 이내 사이렌 소리가 이어지고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가방을 챙길 새도 없이 서둘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진 경보가 울리면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어 계단을 통해 대피해야 했다. 강의실은 11층이었고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건물이 몇번이나 크게 흔들렸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아예 난간을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다 좀 잠잠해지면 중심을 겨우 잡고 서로를 붙들고 의지하며 내려가다 큰 진동이 다시 오면 멈춰 서길 반복했다. 이러다 오늘 정말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역사 퇴행시키는 이승만의 소환
최근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흥행과 열린송현광장의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쟁 소식에 아연실색했다. 수구세력은 기회가 되면 언제든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헌법은 명백히 이 나라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숱한 민중의 피와 눈물을 뿌리며 여기까지 왔음에도 그들은 정의의 역사를 왜곡, 전복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 삶을 옥죄는 환경은 이승만 독재 권력이 켜켜이 쌓아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승만의 정신적 퇴행성은 이 나라를 기독교민족주의로 재건하고자 했던 점이다. 경성감옥에서 기독교를 믿게 된 그는 1904년에 쓴 <독립정신>에서 한국인들을 기독교로 교화시키고, 한국이 영국·미국처럼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 구국론과 신국 건설이 그의 존재 이유이자 필생의 사명이 되었다. 미군정의 친기독교 정책을 계승한 그는 성탄절 공휴일화... -
우리 위로 떨어지는 섬광
얼마 전 시카고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다녀왔다. 미국 전역에서 온 참가자들은 3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울림과 어울림’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모임의 첫 시간에 진행자는 참가자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후에 다섯 글자로 이 모임에 참여하며 품은 소망을 표현해보라고 요구했다. ‘날마다 기적’ ‘방향성 찾기’ ‘울림 내 안에’ ‘비움과 채움’ ‘살고 싶어서’ ‘한 박자 쉬고’ ‘한 걸음 성장’ ‘나 좀 살려줘’ ‘별을 찾아서’ ‘홀로와 함께’ ‘모름 속으로’ ‘날 놀래켜 줘’. 아주 짧은 이 표현들 속에 각자가 처한 상황과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는가.인생은 저절로 살아지지 않는다. 편안하던 일상에 금이 갈 때마다 우리는 자기 존재에 대해 묻곤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문득 낯설게 여겨질 때가 있다. 막다른 골목에 달한 듯 삶이 답답할 때, 지지부진한 일상에 지쳤을 때, 비일상적인 삶의 계기가 자기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물론 그것... -
깨달음도 다운로드할 수 있을까
나의 기억이나 생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을까? 최근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에서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인공 칩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고, 환자는 현재 무사히 회복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인공 칩은 이른바 ‘텔레파시’란 이름의 컴퓨터 칩 제품이다. 이에 앞서 뉴럴링크는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실시를 허가받았다. 인간의 생각만으로 컴퓨터 키보드나 스마트폰 같은 외부 디지털 기기를 작동시킨다는 구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상상 속 이야기였다. 이제 일론 머스크는 기어이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할 심산인 듯하다.이 기술은 이른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 Computer Interface)’에 기반한다. 혹자는 ‘뇌 임플란트’라고도 부른다.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스캐닝하고 이 신호를 외부 장치에 전달하는 ... -
비판을 되받는 황폐한 정치 언어
한국 사회가 갈수록 정신의 세력이 약화되어가는 이면에는 정치의 타락이 있다. 국민 모두를 위한 전략인 척 위장한 정치는 전술에서 편가르기와 합종연횡의 사술을 드러낸다.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도덕은 선악, 미학은 미추, 경제는 이해로 나누는 것처럼 정치는 적과 동지의 실존적 기준을 근거로 나눠진다고 했다. 적이란 한 집단의 존재 방식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낯선 집단이며, 이러한 이질성은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피아의 정치 대립으로 내전 중이다. 총포만 없을 뿐, 정치가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백성들은 깊은 내상을 입고 있다. 더욱이 내전에서 승리한 정치인들은 자신을 향한 비판마저도 총칼로 바라본다.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가 결정한 법안을 거부하는 것은 민주공화제를 무력화한 것이다. 최근 9번에 걸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민의 비판을 거부한 것과 다름이 없다. 권력을 승자의 전리품으로 인식하는 순간 국... -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대한 추위가 무섭지만 정치권은 뜨겁기 이를 데 없다. 거대 양당의 틀 안에서 달음질하는 이들도 있고,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판을 다시 짜느라 이합집산하는 이들도 있다. 출사표를 낸 이들은 저마다 경세가를 자처한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순정한 마음으로 나선 이들도 있고, 허망한 열정에 들떠 나서는 이들도 있다. 유권자들의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이다.박석무 선생의 <다산의 마음을 찾아>를 읽다가 우리 시대를 비춰주는 것 같은 한 대목과 만났다. 다산은 퇴계가 제자 이중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 주목한다. 퇴계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탄식이 자기에게도 있다고 고백한다. “나의 경우는 학문이나 능력이 텅텅 빈 사람인데도 그런 줄을 알아차리지 못함에 대한 탄식이라네.” 대학자의 겸허한 자기반성이다. 다산은 그런 퇴계의 글을 읽다가 문득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자기 재능이 부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