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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 [사유와 성찰]세상이 장터로 변할 때
    세상이 장터로 변할 때

    오늘은 기독교인들이 성금요일이라 일컫는 날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기억하는 날에 ‘거룩한 성(聖)’자를 더한 것은 그의 죽음의 숭고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십자가형은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잔인한 처형 방식이다. 사형수는 장시간의 고통을 견뎌야 하고, 완벽한 고립감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옷까지 벗겨진 채 십자가에 달림으로 그들은 인간적인 품격조차 박탈당했다. 사람들의 눈에 고스란히 노출된 그들의 몸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았다. 십자가 아래에 있는 이들은 조롱과 모욕을 가함으로 처형당하는 이들과 자기들을 구별했다. 인간의 잔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장에서 죽어가는 한 인간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조롱거리로 삼는 순간 인간의 소외는 절정에 이른다.무지가 열정과 결합하면 폭력이 된다. 폭력은 자기 속에 깊게 자리 잡은 두려움의 이면인 경우가 많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폭력은 생명에 대한 부정이기에 거기에는 아름다움이 없다. 적나라한 폭...

    2025.04.17 20:09

  • [사유와 성찰]옳은 말들을 추방한다
    옳은 말들을 추방한다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일인 올해 4월4일까지, 나는 ‘말’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 그 기간 동안 사회의 혼란과 더불어 언어의 혼탁도 절정에 달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언어는 여전히 극단의 경계를 맴돌고 있다.높은 학벌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들이 거짓과 교묘한 말로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 법률가, 학자뿐만 아니라 진리와 사랑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야 할 종교인, 정론을 펼쳐야 할 언론인들조차 부끄러움 없이 불순하고 뒤틀린 언어를 쏟아내고 있다.나는 의문을 품는다. 이들이 정말 문장을 잘못 읽고 그릇된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자신들의 진영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논리를 조작하는 것인지. 윤석열을 변호하던 이들의 언변을 들으며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 된다고 하려니, 당신들도 참 힘들겠구나.”하늘이 열리고 ...

    2025.04.10 21:30

  • [사유와 성찰]‘대한민국 헌법’을 읽고 나서
    ‘대한민국 헌법’을 읽고 나서

    헌법 제정에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그것은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보호막이다. 내심 승인하는 이유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졌거나 태어나보니 이미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한 성현의 경전에 비추어 현실은 여전히 미완성인 것처럼, 헌법 내용도 이 나라에 완전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헌법은 정치적 대결의 산물이다. 하도 급하게 만들다보니 문장이 산만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이 땅을 떠나지 않는 한 금과옥조로 받들며 살아야 한다. 오랜만에 정독하며 나름 깨달음을 얻었다.무엇보다도 헌법은 시대정신이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한 것은 식민강권통치와 독재체제에 맞서 흘린 피와 눈물로써 헌법이 쓰인 것을 보여준다. 부당한 총칼 아래에서 굴복하지 않는 저항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현행 헌법에 명기된 대통령 직선제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

    2025.04.03 21:02

  • [사유와 성찰]봇도랑에 물이 차면
    봇도랑에 물이 차면

    어둡고 으스스하다. 춘분 절기에 접어들었지만 냉기가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습관적으로 뉴스에 눈길이 간다. 뭔가 새로운 소식이 있지 않을까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탄식과 울분에 찬 언어가 난무한다. 진영을 막론하고 희망 섞인 예측을 쏟아내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날 선 감정들이 부딪치며 내는 굉음에 귀가 먹먹하다. 광장을 지날 때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려오는 날 선 언어에 저절로 낯이 찌푸려진다. 증오와 선동, 냉소와 저주의 언어를 들을 때마다 채찍에 맞은 듯 가슴이 아리다.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심연이 입을 벌려 우리를 삼키려 한다. 그 심연의 이름은 적대감과 분열이다. 아름다움, 사랑, 자유, 진리, 가족 등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들이 풀어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극복된 혼돈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혼돈은 공포감을 자아낸다. “역사의 호는 길지...

    2025.03.20 21:37

  • [사유와 성찰]믿는 것과 아는 것
    믿는 것과 아는 것

    평소 뜻이 잘 통하는 가까운 지인이 하소연을 쏟아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어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정치에 관심을 두더니, 극우 성향에 깊이 빠져 가정의 평화를 해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가짜뉴스를 믿고 태극기 집회에 나가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다. 걱정이 많은 딸은 어머니와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선거 부정 같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어머니는 한마디도 수긍하지 않았다. 딸은 어머니가 평생 구독해 온 보수 성향의 신문이라도 읽어 보고 판단하라고 권했지만, 어머니는 그 신문들조차 이미 ‘종북 좌파’가 됐다며 반박했다.결국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극우 유튜브 채널의 신봉자가 되어버렸다. 그곳에서 보고 듣는 사람들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어떤 사안의 사실관계를 면밀히 판단한 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믿을 만한 사람, 혹은 믿고 싶은 사람이 말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즉, 믿는 것과...

    2025.03.13 20:57

  • [사유와 성찰]타락한 극우 종교의 정치화
    타락한 극우 종교의 정치화

    한때 개발독재 체제 아래 신음하던 민중의 눈물을 닦아주던 종교가 기독교다. 하나 교회는 권력에 순응하며 개인의 성공은 이끌었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외면했다. 이후 대중을 자본으로 보는 시장신학, 경영기법이 도입된 기업교회, 예수의 이미지와 말씀을 상품화한 천국경제가 뒤를 이었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을 추동하는 자본의 신을 숭배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발터 베냐민이 “기독교 자체가 자본주의로 변형되었다”고 한 말 그대로다. 욕망긍정의 신학이다. 일부의 극우 기독교인들은 이제 이 나라를 정교일치의 국가로 만들고자 광장으로 나온다. 혐오와 증오의 얼굴로 적을 찾으며, 온갖 욕설과 저주로 맑은 하늘을 오염시킨다.정치의 사법화에 이어 정치의 종교화가 진행 중이다. 전자는 그나마 제도가 받쳐주지만 후자는 예측불허다. 극우 기독교는 ‘선지자’ 이승만이 추구했던 기독교가 통치하는 신정국가 창출을 목표로 한다. 현재 한국은 체제전쟁 중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공산국가의 노예를 해방시...

    2025.03.06 21:11

  • [사유와 성찰]우리는 선택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선택 앞에 서 있다

    국어사전은 삼세판을 ‘더도 덜도 말고 꼭 세 판’이라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지만 삼세판의 심리를 오롯이 드러내지는 못한다. 우연이 작동할 가능성이 많은 단판 승부는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 승자는 안도하지만 패자는 쉽게 승복하기 어렵다. 경쟁이 치열하고, 사회적 긴장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배제의 논리가 기승을 부린다. 우리 사회에 삼세판의 여백은 사라지고 사회적 낙인찍기가 만연하고 있다. 낙인찍기는 어떤 사람의 특정한 행동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의 존재에 대한 단정적 평가이기에 가혹하다. 낙인찍힌 사람들은 모든 삶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 같은 암담함을 느낀다. 그 폐쇄된 어둠은 일쑤 자기 비하 혹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배우 김새론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혹하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적 사건이다. 우리 사회를 ‘오징어 게임’의 실사판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살벌한 세상이다.낙인을 찍는 이들은 자기가 낙인찍은 이들과의 소통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2025.02.20 20:49

  • [사유와 성찰]집단 망상의 광기서 깨어나라
    집단 망상의 광기서 깨어나라

    신라의 원효 스님이 <금강삼매경론>을 해석할 때 이런 비유를 들었다. 어느 날 환술사가 뛰어난 환술로 호랑이 한 마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환술로 만든 호랑이가 너무나도 생생해 그는 환술 호랑이를 실물이라고 믿게 되었고, 마침내 그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 인간의 망상을 경계하는 이 비유는 지금 우리 시대의 교묘한 거짓 선동과 그에 사로잡힌 극단적 확증편향을 떠올리게 한다.12·3 비상계엄 이후 사람들의 상심한 마음이 선연하게 보인다. 경계를 뛰어넘어 차별 없는 연민과 사랑을 화두로 품고 있는 수행자의 눈에 멍들고 찢겨 상처 난 마음이 내지르는 절규가 아프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슬프다. 그러나 이런 상실의 시대를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리석은 망상에 사로잡힌 윤석열과 그의 추종자들이 후퇴시킨 민주주의 회복이 시급하다. 비 온 뒤에는 땅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야 하고, 소를 잃고 나서는 외양간을 ...

    2025.02.13 21:26

  • [사유와 성찰]새만금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해야 한다
    새만금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해야 한다

    시에서 새만큼 비유되는 동물이 있을까. 시인 정지용은 ‘유리창’에서 요절한 자식을 그리며,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읊는다. 육신을 벗은 영혼을 영원한 천국으로 실어나르는 새는 신의 심부름꾼과도 같다. 또한 그들은 인간의 열망처럼 무한한 자유를 향해 비상을 한다. 그러면서도 날아간 흔적이 없다. 욕망을 초월한 자의 모습이다. 과연 우린 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은 가벼운 몸으로 수백 수천 리를 날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는 자동항법장치를 내재하고, 대기구조, 풍향과 풍속, 자기장, 별의 위치를 이용한다. 새들을 모방한 비행기는 자유자재한 그들의 비행술에 비하면 초보에 불과하다. 인간보다 더 오랜 생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자연을 더 깊이 이해하는 그들이야말로 지구의 원주민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들을 유해한 동물로 취급하고 박해한다. 세계적으로 항공기와 조류충돌의 약 99%는 공항반경 13㎞ 안에서 발생한다. 무안공항은 반경 1㎞ 이내에 습지보호...

    2025.02.06 21:16

  • [사유와 성찰]지옥에서 벗어날 용기
    지옥에서 벗어날 용기

    희망의 조짐과 절망의 조짐이 교차하는 나날이다. 역대 최대 규모라는 LA 산불은 사람들이 애써 일군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킨 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가 초래할 지구적 재앙의 서곡인가 싶어 아뜩해진다. 그 혼란의 와중에도 빈집에 들어가 약탈을 감행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고, 약탈자 가운데는 소방관의 복장까지 갖춰 입은 이들도 있다 한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다. 재난 속에 피어나는 인정의 꽃도 있다. 기쁨은 개별적이지만 고통은 보편적이다. 많은 자원봉사자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미국의 작가 리베카 솔닛은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라는 부제가 붙은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자연이 한번 손을 대면 전 세계가 친구가 된다”고 말한다. 타자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이야말로 분열된 세상의 치유제가 아닐까?15개월간 지속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의 전쟁이 잠정적 휴전 ...

    2025.01.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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