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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두리가 전해주는 말
문득 익숙하던 세계가 낯설어질 때가 있다. 명료하다 여기던 것들이 모호해지고, 가깝다 생각하던 것들이 멀어지고, 질서정연하다 여기던 세상이 뒤죽박죽인 것 같고, 든든하다 여기던 것들이 속절없이 흔들릴 때, 나 홀로 세상에서 단절된 것 같은 느낌에 아뜩해진다. 부조리의 경험이다. 예기치 않은 죽음과 맞닥뜨릴 때가 특히 그러하다.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 일상의 흐름을 폭력적으로 단절시킨다. 단절은 고립이다. 세상이 부빙처럼 멀어져 갈 때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죽음과의 불쾌한 대면을 애써 연기하거나 피하려 한다. 하지만 죽음의 자각은 우리 삶을 근원에서 돌아보라는 일종의 초대이다.영혼의 창에 드리운 어둠은 우리 삶의 부박함을 돌아보게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고속열차를 타고 질주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우리를 스쳐 지나간 모든 것들이 무한히 신비한 세계에 속하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선물임을 자각하게 된다. 죽음과의 대면은 역설적으로 우리 삶이 기적이... -
만행을 떠나며
여름 한 철 안거가 끝났다. 길고 긴 장마에 유난히 덥고 힘들었던 하안거였다. 결제(結制)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항상 그렇듯 시간은 속절없이 잘도 흘러갔다. 안거를 마무리하는 해제일(解制日) 무렵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분주해진다. 스님들은 저마다 다음 철 수행처를 알아본다든지, 은사 스님이 계시거나 인연 있는 절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해진다. 어른 스님들은 결제와 해제가 다르지 않음을 매번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다들 매번 안거가 끝나면 수행의 진전과는 상관없이 나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문을 나서게 된다. 해제 날 산문을 나서는 순간, 마치 자신이 구름이 된 듯 강물이 된 듯한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선원, 강원, 율원이 모두 모여서 수행 안거에 동참하는 총림은 수행기관마다 특색 있는 마무리 풍경이 그려진다. 특히 이제 막 출가해서 사미 과정인 강원(승가대학)에서 정진하는 학인 스님에게 해제일은 산문 밖으로 치자면 한 학기가 마무리가 되고 일종의 방학이 시작되... -
정의의 역사는 결코 지배될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김대중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진보세력이 계승되는 와중에 등장한 것이 뉴라이트다.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2008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발간을 통해서였다. 학문의 자유를 빙자한 식민지근대화론의 등장이었다. 반역사적인 뉴라이트 언설의 근원지다.‘대한민국 성립의 역사적 의의’의 장에서 그들은 1948년 건국 이후의 역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60년간 세계사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존중하고, 그것을 국가체제의 기본 원리로 채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인간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행복을 증진하는 올바른 방향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골고루 잘산다는 공산주의 이상은 자유와 합리적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나라의 약진은 1960년대 박정희 개발독재의 혜택이며, 근대화 기반은 일제에 의해 축적된 자본과 기술에 있었다. 경제와 군사력은 세계 5%에 속하고, 한류로 문화의 세계화도 이뤘으니... -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며칠간 좋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모임에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학교 현장이 점차 황량하게 변해가는 현실 속에서 교사의 사명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모색하는 자리였다. 방학 중인데도 많은 교사가 참여한 것은 교권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의 교육 현실 속에서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에 대한 언어적, 정서적, 신체적 폭력이 항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장에서 교사들은 자괴감을 느낀다.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은 철회된 것처럼 보인다. 많은 교사들이 현장에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다린다. 교육의 귀중한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의대 진학 열풍이 교육계를 휩쓸고 있다. 모든 질서정연한 것들을 거침없이 휩쓸어가는 쓰나미처럼, 학부모들의 조급한 열정이 교육이란 배를 파선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낮잠을 자다 사과가 떨어지는 소리를 세상의 종말이 온 줄 알고 달아나기 시작한 토끼를 영문도 모른 채 따라 ... -
산사의 소방 훈련
“불이야, 불이야!” 스님들의 고함이 연이어 울려 퍼진다. 산사의 적막과 고요가 일순간에 깨진다. 각 처소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이 방에서 부리나케 나와 불이 난 곳으로 뛰어간다. 참선하는 선원,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 계율을 공부하는 율원 대중 할 것 없이 전 대중이 모두 나온다. 10대의 어린 스님부터 주지 스님을 비롯한 어른 스님들까지 예외는 없다. 멀리 수미정상탑 근처에서 불이 났음을 알리는 연막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스님들의 손에는 곳곳에 비치되었던 소화기가 들려 있고 능숙한 동작으로 언제든지 분사할 준비를 마친다. 연막이 피어오르는 수미정상탑은 다름 아닌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장경판전 뒤! 장경판전과 수미정상탑까지 가는 길이 가파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스님들이 괴력을 발휘하면서 한달음에 내달린다. 이내 각 법당에서 화재 발생을 알리며 난타당했던 소종 소리가 멈추고, 종각에서 대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해인사 경내뿐만 아니라 가야산 전체에 흩어져 있는 암자에도 화... -
원전 수명연장 철폐를
핵발전소(핵전)는 과학과 자본의 총아다. 수백만개에 달하는 부품이 자본 힘으로 조립되고, 청정한 무공해와 안전 불패라는 신화를 두른 에너지로 둔갑한다. 과연 그럴까. 핵전은 가장 비자본적 산업이다. 원료인 우라늄 채굴과정의 환경 훼손, 막대한 원전 건설비용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공동체 파괴, 핵폐기물 처리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과 후대로의 전가 등을 생각하면,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는다는 자본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무엇보다 신비한 자연을 파괴한 죄과는 흘러넘친다. 자연의 품에서 꺼낸 우라늄을 강제 분열시켜 얻은 열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동안 발생한 독성물질인 방사능은 지구 속을 돌고 돌며 자연계나 인간을 병들게 한다. 방사능이 중화되는 기간은 길게는 수백만년 걸린다. 붕괴된 후쿠시마 핵전을 식힌 방사능 오염수는 바닷물에 희석되고 있지만, 삼중수소 등 복잡한 이름의 방사능들이 먹이사슬을 거쳐 지금도 인류의 몸속에 쌓이고 있음은 ... -
이름을 안다는 것
이름은 전조라는 말이 있다.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한다. 좋아하는 음식 이름을 들을 때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지고 입에 침이 고인다. 싫어하는 음식 이름을 듣는 순간 낯이 찌푸려진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그리움이 물안개처럼 번져오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음 가득 불쾌함이 몰려오고 몸이 굳어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구별을 위한 기호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개별성에 눈을 뜬다는 말이다. ‘고양이’라는 일반 명사는 어떤 동물 종을 지칭하지만 ‘톰과 제리’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톰’은 우리에게 특별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이름은 늘 어떤 맥락과 함께 떠오른다. 특정한 장소에 대한 기억은 그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누군가와 더불어 피어난다.아기들은 태어난 지 18개월 무렵부터 맥락과 이름을 연결하는 인지적 능력이 커진다 한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객관적 무정물로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 -
백중, 죽음이 삶에게 건네는 위로
매년 이맘때쯤 절집에서는 백중 기도를 시작한다. 이날부터 매주 한 번씩 총 일곱 번의 법회를 열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불자들은 여름 안거 마지막 날, 그러니까 음력 7월15일에 맞추어 일곱 번째 법회를 열고 여름 안거 수행을 마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동시에 방생(放生)으로 포획된 동물을 살리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법회를 통해 그 공덕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준다. 백중이라는 애도 기간은 유족들이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망자를 떠나보내는 진짜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절집에서는 백중을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하안거 해제일에 마지막 법회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날 여러 스님 즉 ‘백중(百衆)’이 모여 여름 안거 중의 그릇된 행동을 스스로 참회하고 서로 경책하는 자자(自恣)를 하고, 아울러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간 수행이 성취된 바를 알린다는 의미에서 ‘백중(白衆)’이라고도 한다. <우란분경(盂蘭盆經)&... -
공화국을 허무는 지도자의 분노
분노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난해한 감정이다. 하나는 자신과 주위를 해치는 화염, 다른 하나는 진보적인 역사를 창출하는 힘이다. 대표적으로 전자는 인간을 극한의 고통에 몰아넣는 전쟁이며, 후자는 억압된 자들이 새 질서를 세우는 혁명이다. 같은 분노인데도 어째서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까. 대개 종교는 이를 해로운 감정으로 본다. 불교에선 열반과 해탈을 방해하는 3독심, 즉 탐욕과 성냄과 무명에 속할 정도로 중대한 번뇌다. 자신의 참된 심성을 가리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기독교의 7대 죄악에도 분노가 들어 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또한 <화에 대하여>에서 이성의 통제를 떠난, 보복하고 싶은 욕망인 악덕으로 보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불급이 없는 중용에 따른 분노의 표출은 온화한 인격과 통한다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위협적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진화의 본능으로 보기도 한다. 나는 분노의 발생 원인과 대상에 따라 그 가치가 정반대가 된다고 본다.... -
하늘만은 남겨두자
만국기가 펄럭이던 운동회 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흥분상태였다. 달리기와 줄다리기, 기마전과 오자미를 던져 박을 터뜨리는 게임도 즐거웠지만 잠을 설치며 그날을 기다리도록 한 것은 역시 평소에는 먹어볼 수 없었던 군것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투명한 병에 담긴 주황색의 음료는 가히 천국의 맛이었다. 내 눈을 온통 사로잡은 것은 크고 작은 풍선이 줄줄이 매달린 풍선 뽑기였다. 알록달록하고 큼지막한 풍선을 차지하고 싶었지만 내 몫은 늘 아주 작은 풍선이었다. 그때마다 내 눈길은 큰 풍선을 뽑고는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친구들을 향하곤 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 풍선 뽑기에 동참할 수 없던 아이들도 풍선 놀이에 슬쩍 참여할 수 있었다. 풍선을 들고 다니다 시들해진 아이들이 단단한 매듭을 끌러 풍선을 풀어놓으면 푸스스스 소리를 내며 제멋대로 날아가는 풍선을 함께 따라다니며 깔깔거렸다. 60년 전 저편의 풍경이다.풍선은 일종의 꿈이다. 중력을 거슬러 상승하려는 ...